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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Nov 30. 2024

이토록 다정한 이별이라니

절기상 소설이 오고, 오늘은 폭설로 시작하는 첫눈이 내렸어요.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오듯 사람의 수명도 한정적입니다.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어요. 죽음 뒤의 세계는  어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죽음에 대한 다른 시선을 전해주는 전시가 있어서 다녀왔어요.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1관에서 열리는 기증 특별전 '꼭두'입니다.


국립민속박물관 1층 기획 전시실 1관에서 전시 중인 '꼭두'는 동숭아트센터 대표이자 꼭두박물관 관장인 김옥랑 옥랑문화재단 이사장이 기증하여 열게 된 특별전입니다.


1부 낯섦, 마주하다

2부 이별, 받아들이다

3부 여행, 떠나보내다

라는 주제로 

죽음이란 미지의 곳으로 떠나는 여행의 시작으로 바라보는 전시입니다.

영혼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길의 길동무로 '꼭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시 설명에 의하면, 살아있는 자들이 죽은 이와 죽음이라는 여행을 같이 할 수 없어 꼭두를 만들었대요.

전통 장례식에서 망자를 묘지까지 운반하는 도구를 상여라고 하는데, 상여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기 전에 잠시 머무는 공간이라 생각했답니다.


꼭두새벽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아주 이른 새벽을 말하지요.

꼭두는 가장 빠른 시간이나 가장 윗부분을 뜻합니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라는 뜻도 있답니다.

유래가 무엇이든 이 세상의  인간과 이 세상이 아닌 초월적 세상을 연결하는 존재로 통한대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사와 같은 의미라고도 하고요.



여행의 동반자인 꼭두를 상여의 네 귀퉁이에 꽂아 장식했어요. 꼭두는 대부분 나무로 만들었는데,

상여가 제 할 일을 마치면 꼭두와 함께 소각했습니다. 다행히 꼭두가 재사용되면서 오늘까지 남아있는 작품을 전시를 통해 보게 됐네요.


입구에 들어서면 죽음에 관한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는 문구로 여행이 시작됩니다.

전시된 꼭두는 죽음에 이른 망자를 맞아 돌봐주고 시중을 들어주는 시종 꼭두, 망자를 즐겁게 하려 악기를 연주하고 재주를 부리는 광대와 악동 꼭두, 망자를 저승으로 안내하고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호위 꼭두 등이 있습니다.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꼭두는 험악한  얼굴 표정을 짓거나 익살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또 무거운 무기나 악기를 들고 있어요.

색감도 화려하고 표정도 살아있어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마치 목각 예술품처럼 정교하기도 하고 나무 인형처럼 정감이 느껴졌어요.




꼭두와 함께 봉황, 용 등을 상여에 장식했었습니다. 꼭두와 봉황, 용까지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이승과 저승을 잇는다고 생각했어요.

봉황의 날개와 볏이 불꽃처럼 하늘로 날아가 영혼을 인도한다고 믿었답니다. 봉황은 상여의 앞과 뒤에 장식했습니다.


용이나 봉황은 신비한 힘을 가진 상상의 동물이에요.

용이 새겨진 용수판을 상여에 장식하면 나쁜 기운을 막는다고 믿었어요. 봉황과 마찬가지로 상여의 앞과 뒤에 용이 그려진 용수판을 장식했습니다.





그렇게 꼭두와 봉황, 용으로 장식된 상여 사진입니다. 아름답고도 화려해서 상여에  태워 망자를 떠나보내며 얼마나 정성을 들여 배웅했는지 상상이 되더군요.

이토록 다정한 이별이라니, 남겨진 이의 슬픔을 덜어줄 것도 같았어요.


어쩌면 꼭두는 망자를 위해 죽음의 여행길에 짐을 들어주기보다는 남겨질 이를 더 위로하고자 만든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죽은 이는 이승을 떠나 잠들겠지만 남은 이의  슬픔은 뼈를 깎는 아픔처럼 마음에 새겨질 것 같아요.


꼭두 전시를 보는 내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어머니가 아프기 전에는 모진 말도 많이 했고, 퉁명스럽게 대했습니다. 낡은 물건을 버리지 않는다고 화도 여러 번 냈고요.

어머니가 담낭암 말기 진단을 받고부터 이별이 가까워지는 게 느껴집니다. 어머니는 점점 조그맣게 쇠약해지는 중입니다.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어머니에게 다정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어머니를 웃게 하려고 농담도 자주 하고, 지나간 시절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어머니의 등과 뺨을 쓰다듬기도 하고, 뜨거운 물을 대야에 담아와 발을 씻겨드리기도 했어요.  발가락 사이에 로션을 바르고 마사지를 해드리니 시원하다며 얼굴이 잠깐 환해지셨어요.

어느 날은 어머님 숟가락에 생선이나 나물을 얹어 드리기도 했고요.


이 모든 일들은 어머니와의 시간이 줄어드는 게 안타까워서예요.

점점 야위어가는 어머니 모습이 꺼져가는 불꽃을 보는 것처럼 슬프기도 합니다.  얼굴을 돌리고 몰래 눈물을 훔치는 일이 잦아졌어요.


꼭두를 만들던 옛사람도 죽음을 앞둔 이를 보며 못해준 일들이 마음에 걸렸겠지요.

고운 옷을 못해준 게 마음에 걸려 화려한 무늬를 입히고, 오래 아팠던 게 마음에 걸려 물구나무서는 개구쟁이 모습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꼭두 깎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쇠약해지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마음속 슬픔의 대패밥이 한 겹 한 겹  쌓여갑니다.


"우지 마라 우리 상주 눈도 붓고 목도 쉰다

두고 가는 나두 섧다 우지 마라 우리 상주"


상여를 매고 가며 부른 타령 같은데, 노랫말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목이 매이더군요.

망자가 떠나면서도 남은 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 애틋했어요.

어머니도 분명 자식 걱정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떠나시겠지요. 나와 형제들을 닮은 꼭두를 만들고 싶어 집니다. 가시는 길에 재주도 부리고 악기도 연주하며 위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꼭두에게서 배울 점은 혼자가 아니라 모두 같이 잘 살자. 낯선 것에 마음의 문을 닫지 마라. 위로와 치유의 삶을 살면서 죽음을 잊지 말라고 일깨운다고 하더군요.


전시를 보고 알게  된 꼭두의 교훈을 삶의 직조에 씨줄과 날줄로 곱게 엮어 보렵니다. 죽음에 대한 의미를 다시 돌아보며 저도 위로받았습니다.


* 2025년 3월 3일까지 전시된다고 하니 시간이 되시면 국립민속박물관에 들러 보고 오실 것을 권해드려요.



#꼭두#이별#죽음#상여#김선수 #지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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