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금강의 첫 물을 만나고 왔다. 전라북도자치도 장수군에는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이 있다. 뜬봉샘에서 출발한 물줄기는 장수와 진안을 적시며 무주와 금강으로 흘러간다. 금강의 천 리 물길은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 서해로 흘러든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시작한 반짝이는 샘물이 산맥을 적시고 곡식을 살찌우며 흘러, 넓고 깊은 바다에까지 다다른다.
뜬봉샘은 금강의 발원지이면서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라는 계시를 받은 곳이다. 금강 하천과 조선의 건국이 시작된 매우 중요한 장소라 할 수 있다. 여행작가협회의 동료 작가들은 전라북도자치도와 로컬콘텐츠연구소의 초청으로, 이성계의 조선건국 발자취를 따라 임실과 진안에 이어 장수 뜬봉샘에 다녀왔다.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물뿌랭이마을)에 있는 뜬봉샘 생태공원 탐방로를 따라 1.5km를 올라가면, 신무산에 위치한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을 만날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성계가 나라를 얻기 위해 산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으려고 신무산 중턱에 단을 쌓고 백일기도에 들어갔었다. 기도에 들어간 지 백일째 되는 새벽, 단에서 조금 떨어진 골짜기에서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그 무지개를 타고 휘황찬란한 봉황이 하늘로 오르는데, 하늘에서 “새 나라를 열라.”는 계시가 들렸다. 이성계는 황급히 샘물로 제수를 준비하여 하늘에 감사 기도를 올렸다. 이후 봉황이 떠올랐다고 샘의 이름을 ‘뜬봉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뜬봉샘을 찾아 오르는 생태공원 탐방로 초입에 기둥에 동그랗게 구멍이 난 벚나무가 있다. 오색딱따구리가 가장 약한 벚나무를 골라 자로 잰 듯이 정교한 구멍을 만들었다. 영리한 오색딱따구리는 비가 올 때 지붕 역할을 할 수 있는 굵은 나뭇가지 바로 아래로 구멍의 위치를 정했다. 벚나무 아래에 오색딱따구리가 쪼아낸 나무 밥이 그득하게 쌓여있었다.
알을 낳고 먹이를 물어다 주며 새끼를 키웠을 구멍에는 숭고한 생명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첫눈, 첫사랑처럼 ‘첫’ 자가 들어가는 말들은 설레면서도 소중하다. 금강이 시작되는 첫 샘을 찾아 나선 길목에서 어떤 풍경과 이야기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조금 더 오르니 접시꽃 나무라고도 불리는 백당나무가 보였다. 샘에서 내려오는 물의 기운이 좋아서일까? 서로 다른 모양의 흰 꽃을 달고 있는 고당나무, 백당나무, 때죽나무가 나란히 꽃을 피워 흰 꽃 군락지를 이루고 있었다.
7월이면 산등성이에 수국이 만발한다고 한다. 초록 사이로 소담하게 피어날 산수국 덕분에 샘을 찾아 오르는 길이 더없이 고울 것 같았다.
이어서 만난 자작나무 숲에는 나무의 옹이마다 눈동자가 있어 우리를 지켜보는 듯했다. 하늘로 쭉 뻗은 은빛 기둥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라고 팔 벌리며 맞이한다. 이성계도 그런 신비롭고 영험한 기운에 끌려, 그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기도를 올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성계는 고려 말기의 명장이자 조선 왕조의 창업 군주다. 뛰어난 활 솜씨와 용맹함, 탁월한 지휘력으로 홍건적과 왜구를 막아내 구국의 영웅이 되었다. 고려의 장수로서 오랜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그런 그가 1392년에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했으니, 그에게는 조선 건국의 명분과 왕권을 공고히 해야 하는 염원이 있었다. 그런 간절함에 신무산에 들어가 엄숙하고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고,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이에 왕이 되라는 계시를 받았다.
석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깊은 산속 샘물 옆에서 홀로 기도를 올리는 일은 무척이나 외롭고도 힘든 일이다. 건국에 대한 사명감과 정적을 숙청하면서까지 이루어야 했던 업적의 무게를, 산길을 오르는 내내 헤아려보았다.
뜬봉샘이 있는 신무산은 신선이 춤추는 산이라는 뜻이다. 물뿌랭이 전망대에 이르면 물뿌랭이마을이 아늑하게 내려다보이고 마당처럼 평평한 자리가 나온다.
달빛이 환한 정월 대보름이나 8월 대보름에, 신선들이 신무산 중턱에 내려와 달빛 아래서 춤을 추는 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달빛에 반사되어 더 하얗게 빛나는 자작나무와 반짝이는 눈망울 같은 초록 이파리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 안에서 둥글게 춤을 추는 정령들의 모습은 신비롭고도 몽환적으로 보인다.
이성계는 신무산의 신성하고 영험한 기운에 기대어 기도를 올리고 지혜를 구하고자 산을 올랐을 것이다.
산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도심에서는 들을 수 없는 낯선 새소리가 들려왔다. 그중에는 뻐꾸기 소리도 있었다. 검은등뻐꾸기는 ‘홀딱 벗고’ ‘홀딱 벗고’라고 운다는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귀를 기울이니 정말 ‘홀딱 벗고’라고 들렸다. 빙그레 웃음이 나면서도 이 숲에서만 들을 수 있는 진기한 소리로 느껴졌다.
샘을 찾아 오르는 멀고도 가파른 길이 해설사의 살가운 설명에 지루하지 않았다. 사계절 그곳을 오른다는 해설사는 신무산과 뜬봉샘에 이르는 길목의 숲을, 그곳에 서식하는 꽃과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등줄기로 땀이 촉촉하게 배어 나오고 숨이 찰 무렵, 1 급수 지표종인 옆새우가 산다는 나무 표지판 너머로 뜬봉샘이라 적힌 커다란 표지석이 보였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돌로 벽을 쌓고 커다란 바위로 뚜껑을 덮은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이 보였다. 노란 꽃이 피어있는 애기똥풀 풀숲 사이로 마치 은폐라도 한 듯 숨어있었다.
샘 앞 돌 곽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있다가 끝없이 솟아 나오는 샘물에 밀려 저절로 흘러갔다. 두 손을 오므려 샘물을 떠보니 초여름 한낮인데도 손이 시릴 정도다. 정신이 번쩍 났다. ‘이곳이 바로 이성계가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은 곳이구나.’ 생각하며 짤막한 기도를 올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키 큰 나무 사이의 구름조차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전라북도에는 이성계의 조선 건국과 관련한 장소가 여러 곳 남아 있다. 이번 여행에서 뜬봉샘 외에 두 군데를 더 방문했다. 이성계가 자신과 한 나라의 운명을 걸고, 왕권을 공고히 하고자 간절한 기도를 올린 장소들이다.
가파른 산길을 숨차게 올라야 만나는 임실 성수산 상이암, 탑산 뒤를 돌아 마이산 봉우리 아래 숨어있는 진안 은수사, 신비롭고 다정한 숲길을 한참 동안 걸어야 만나는 장수 신무산 뜬봉샘이다.
이곳은 모두 쉽사리 닿을 수 없는 깊숙한 산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왕이 되라는 막중한 계시를 받은 곳이다. 이성계가 위대한 업적을 이루려는 큰 뜻을 하늘께 고하고, 고려말 고통받는 백성을 구하고자 오랫동안 애쓰던 마음이 담겨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뜬봉샘에서 다시 마을로 내려오니 ‘천주교 수분공소’가 보인다. 1986년 병인박해 때 피신한 천주교 신자들이 수분마을로 모여들면서 설립된 곳이다. 장수는 물론 우리의 천주교회사에 의미 있는 공간으로 인정을 받아 한국 근대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교당 앞 댓돌 위에 조르르 앉아 있는 여행작가들에게 마을 주민이 옛날이야기 들려주듯이, 수분공소의 역사를 설명해 주었다.
유교를 숭상하던 시대였음에도 박해를 피해 마을로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을 보듬고 받아준 곳이다. 뜬봉샘에서 시작된 태조 이성계가 나라의 운명과 백성을 위하는 길을 고민했던 마음이 마을까지 스민 듯했다.
물뿌랭이 마을에서 키운 시래기로 끓인 된장국과 쑥떡, 나물 등으로 정성껏 차려주신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자 마을 주민이 차 옆에 나란히 서서 배웅을 해주었다. 마지막 한 사람이 버스에 오르고 버스가 떠날 때까지, 초여름 땡볕 아래 한참을 서서 두 손을 흔드는 모습은 왠지 뭉클했다.
언젠가 이곳에 찾아와, 금강의 첫 물줄기이자 봉황이 떠오른 자리 뜬봉샘과 신들이 춤추는 신무산을 좀 더 찬찬히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계가 그랬듯이, 꼭 이루고 싶은 소원도 빌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멀어지는 신무산과 뜬봉샘을 아련하게 뒤돌아보며 돌아왔다. 뜬봉샘의 맑고 시린 샘물 같은 햇살이 우리를 향해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