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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쇄

시 쓰는 여행가

by 지유



오래전에 떠나보낸 날들을 불러본다

어떤 하루는 답하였고

어떤 하루는 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날은 데려올

방도를 모른 채

그리워할 뿐 버릴 수는 없었다


그때로 돌아가지 못하고 생을 견뎌왔으니

사는 게 견디는 일임을

아는 게 사는 일이었다


이끼처럼 낮게 번진 슬픔으로

눅눅해진 어느 하루도

빛을 들이고 바람을 부르는

포쇄를 떠올리면 괜찮아졌다


포쇄라는 말은 갓 쪄낸 햇감자

포슬하게 눈이 부신 햇살이거나

흰 손수건이 얼굴을 스치는 기분 같아서


구겨진 마음을 꺼내

바람을 바르고 햇빛에 펼치면

풀 먹인 빨래처럼 반듯해졌다


마음속에 어떤 말 하나를 품고 살면

살아지거나

살만했다


*포쇄 : 책이나 옷 등의 습기를 햇빛과 바람에 말리는 건조 행위


사진 출처. 모두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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