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여행가
막다른 골목 안 우물이 있던 집
뚜벅뚜벅 걸어간 파란 대문 옆
담장 위로 어울리지 않는
호기심처럼 능소화가 피었었지
해마다 능소화는 기척 없이 피어서
준비 없이 생리혈을 보듯
허둥거리게 했지
꽃과 눈물은 언제나 느닷없어라
느닷없는 것들은 어찌해 볼
여지도 남기지 않았지
비겁하게 밉살맞게
꽃만 그런가
헤어지자는 말이나 금방
죽을병도 그렇지
그 후로 오랫동안
육개장은 먹지 못했지
붉은색은 가슴을 철렁 이게 하니까
폐경의 여자는
나무마다 철렁이는 붉은색 혓바닥을
노려보다가
파란 대문 옆 담장을 나와
우물은 돌아보지도 않고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
겨울 속으로 걸어가네
뙤약볕에 속절없이 녹아내리던
꽃보다 제 모습 그대로 낙하하는 이파리가
비장하게 다음 생을 끌어올 테니
계절과 계절이 헤어질 결심을 하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