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여행가
북해도에 눈이 오면 붉은여우가 마을로
내려오는 상상을 합니다
차창 밖으로 끝도 없이 이어진 자작나무의
눈부신 몸통을 오래도록
바라봤지요
눈 쌓인 자작나무 숲에 서면
여우의 눈을 닮은 옹이마다
떠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이 죽순처럼
돋아납니다
도로까지 내려온 사슴과 눈이 마주쳤을 때
우리는 서로 그윽이 바라보다
사슴은 풀숲에 무심한 얼굴을 묻었고
나는 천천히 유황이 흐르는 냇가를 걸어왔지요
우리는 각자 공기 속으로 흩어졌지만
자작나무 군락과 사슴이 세상의
숨을 멎게 하던 짧은 그
순간에
어느 생의 한 토막이 불려 와
나는 삽작 아래 쌓인 눈을 쓸며
길을 내고 있더랍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나는 사라지고
옹이 속 얼굴에 말을 걸 수 있을까요
그 얼굴을 두고 돌아올 수 있을까요
길을 가르던 바람이 손을 내리면
눈보다 더 흰 자작나무 숲
에서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나의 눈시울은 왜 따뜻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