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1. 요양병원에서_시간에 녹다

by 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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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봄이 스치는 삼월, 살을 에는 바람 사이로 포근한 볕이 내리쬐는 날들이었다.

점심을 먹고 시간이 오후로 접어들 때면 요양병원 병실은 창가로 내리쬐는 햇살에 프리지아 꽃잎 같은 노란빛으로 가득 찼다. 그럴 때면 낮게 깔려있던 병실 안의 우울한 느낌도 조금 가시곤 했다. 시계를 보니 오후 두 시가 가까웠다. 툭. 툭. 툭. 툭. 나는 소리가 나는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할아버지가 나타나셨다. 훅하고 거센 바람이 불면 휙 하고 쓰러질 것 같은 아주 노쇠한 할아버지였다. 나는 할아버지 옆으로 달려가 팔을 잡고 부축해드렸다. 그리고 창가에 누워있는 할머니 옆으로 천천히 할아버지를 모셔다 의자에 앉혀드렸다. 할아버지는 잠시 숨을 고르시더니 손을 들고는 바람이 고목을 스치는 듯한 소리로 “고맙소.”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미소 지으며 “별 말씀을요.”하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오늘도 오전에 한동안 “아빠. 아빠.” 하며 한동안 애타게 허공을 향해 할아버지를 부르셨다. 처음 할머니의 그런 모습에 당황한 나를 보고 간호조무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빠가 아니라 남편 분 찾는 거예요. 오후 되면 꼭 오시거든요.”

할아버지는 손목에 끼고 오신 검은 비닐봉지 안에서 카스테라 빵 하나와 딸기 요거트를 꺼냈다. 내가 도와드리려고 해도 할아버지는 괜찮다며 천천히 손을 저었다. 천천히 빵 봉지를 뜯고 요거트 마개를 뜯는 모습은 마치 공들여 올리는 기도나 의식을 보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깜빡 잠이든 할머니의 팔을 살살 주무르며 조용히 할머니를 불렀다. 옅은 잠에서 깬 할머니는 옆에 있는 할아버지를 보며 “아빠.” 하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는 카스테라를 조금 뜯어 요거트에 적셔 할머니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할머니는 어린 아이 마냥 입을 오물거리며 맛있게 드셨다.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를 흐뭇한 얼굴로 보며 “맛이 좋소?” 하고 물었다. 할머니는 아이처럼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한동안 할아버지는 느린 동작으로 작게 떼어낸 카스테라를 요거트에 적셔 할머니의 입에 넣어주고 흐뭇하게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동안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간식을 먹이셨고 할머니가 다 드시고 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을 꼭 잡고 창가로 내리는 따뜻한 빛을 쪼이며 한동안 조용히 앉아계셨다.


실습하는 열흘 동안 나는 매일 할아버지가 같은 시간에 할머니를 보기 위해 위층 남자 병동에서 아래층 여자 병동으로 내려오시는 모습을 보았다. 차가운 병실 바닥에 천천히 따스한 빛이 차오를 쯤 이면 어느 새 나도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때쯤이면 왼쪽 창가 침대에서 손을 잡고 계시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따스하고 애틋한 시간이었다.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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