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 사이에서
처음 대학병원에 입사해서 근무하며 느낀 것은 대학병원의 환자 중증도는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내 부서는 중환자실이 아닌 병동임에도 내 듀티 때 봤던 환자 분이 다음날 출근하면 안 계시는 경우가 허다했다. 상태가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가신 경우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결국 expire(사망)인 경우에는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벌판에 서있는 기분이 되곤 했다.
그날도 순식간에 스테이션이 소란스러워졌다. 스테이션 바로 옆 처치실로 환자 베드를 뺐다. “얼른 C-line(중심정맥관) 준비해.” 라는 레지던트 3년차 선생님의 오더에 시술 준비를 위해 모두 분주하게 움직였다. 침대에는 아주 작은 체구의 연로하신 할머니 환자분이 누워계셨다. 할머니는 침대에 누워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계셨지만 정신없이 움직이는 의료진들 사이에서 할머니의 목소리는 거의 묻혀 들리지 않았다. 자꾸 움직이셔서 vital sign(활력징후)도 잘 측정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는 버둥거리는 할머니 옆으로 가 힘드시겠지만 잠시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시면 얼른 끝날 거라고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냥 나 좀 가만히 냅둬! 살리지 마!” 라고 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잔뜩 찡그린 얼굴에 가득 진 주름으로 할머니가 이제까지 살아오신 세월을 가늠할 수 있었다. 나보다 거의 네 배는 더 긴 시간을 살아오신 분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경험도 많이 하셨을 것이고 꾸준히 지속되어 온 노화도 겪으시면서 언젠가는 자신의 삶이 끝이 나리라는 것도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환자가 원하는 대로 가만히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이건 꼭 하셔야 돼요. 그래야 필요한 주사제도 들어가고 무엇보다 다른데 힘들게 주사 잡느라 여러 번 찌르지 않아도 돼요. 지금은 일단 혈압만 먼저 잴게요. 죄송해요.” 나는 선임 간호사 선생님께 빨리 활력징후도 못 재냐고 꾸중을 들을까 두려워 할머니에게 매달리다시피 설명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좀체 가만히 계시질 않으셨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선생님이 측정이 잘 되지 않으니 할머니의 팔을 잡고 있으라고 하셨다. 나는 얼른 반대쪽으로 가서 할머니의 어깨와 팔을 잡았다. 잠시 가만히 계시는 듯했던 할머니가 갑자기 내 유니폼 어깨부분을 거세게 붙잡아 당기셨다. 그 작은 체구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악력이 느껴져 나는 놀란 눈으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할머니와 나의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흐릿한 동공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제발 나 좀 죽게 내버려달라고 하잖아.”
힘이 쭉 빠졌다. 그 날 어떻게 퇴근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주 오프 날 집에 내려가서 엄마와 밥을 먹으며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이 보였는지 엄마는 내 밥그릇에 반찬을 올려놓아주며 말했다.
“힘들지? 그래도 힘든 만큼 보람도 있을 거야.” 나는 엄마의 말에 하얀 밥이 소복이 쌓인 밥그릇을 물끄러미 한참 쳐다보았다.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참 그리웠던 집 밥인데 나는 목이 메어 밥을 뜰 수가 없었다.
“엄마,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내가 환자를 낫게 도와주는 사람인지 그냥 천천히 죽어가는 걸 도와주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 내 말을 듣고 엄마는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일주일 후, 오랜만에 먼저 병원에 입사하신 학교 선배를 처음으로 학교가 아닌 바깥에서 만나는 날이었다. 선배가 “많이 힘들지? 알아, 한창 울면서 다닐 때야.” 라고 건넨 위로 한마디에 나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고속터미널 안 카페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선배도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자신의 신규 간호사 시절이 생각나 결국 같이 우셨다. 나는 또 선배한테 울어서 죄송하다고 사과드리며 울었다. 둘이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자 그제야 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어차피 참을 수 있는 울음도 아니었다.
선배한테 엄마한테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했다. 내가 뭔지 모르겠다고. 뭣 모르고 선서하고 공부할 때는 내가 선택한 길의 무게가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고. 내가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이 맞긴 한 건지 모르겠다고.
내 이야기를 듣고 선배는 천천히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나서 입을 뗐다.
“아직 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또 일하는 과 특성에 따라 다르지. 지금 네가 있는 파트는 병원 내에서도 중증도가 가장 높은 파트이기도 하고. 알잖아, 신장은 망가지면 회복이 없고 악화를 늦출 방법 밖에 없다는 거.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일하는 파트의 특성인거지.”
생각해보니 그랬다. 내가 일하는 과의 특성을 고려해서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선배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 우울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외과 병동에서 일할 기회도 생겼고 그곳에서는 수술 후 회복해서 웃으면서 퇴원하는 환자들, 외래 진료 날이면 병동에 한 번 들러서 내 안부를 묻는 환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떤 파트는 겉으로 드러난 외상을 치료하고, 어떤 파트는 내부의 보이지 않는 문제를 치료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경우도 있고 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 입원할 때는 단순 검사를 위해 입원했다가 검사 과정 중에 예상치 못했던 중증의 문제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고 입원할 때 울면서 입원했다가 수술도 잘 되고 치료도 잘 되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호전되어 퇴원하는 경우도 있다.
내과와 외과 둘 다 경험한 나로서는 둘 다 힘들었다. 어느 하나도 어렵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간에 최대한 환자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해 환자의 가장 가까이에서 밤에도 낮처럼 일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건 똑같다.
밤에도 병원 안은 대낮처럼 환하다. 나는 안다. 밖이 아무리 깜깜해도 저 안은 낮처럼 밝다는 것을. 그리고 쉴 새 없이 일이 계속 된다는 것을. 오늘도 급성, 만성 질환 환자들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밤낮없이 근무하시는 모든 의료진분들께 마음속으로나마 조용히 감사와 경외의 인사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