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시는데 춥지는 않으셨어요?” 며칠 째 계속 병문안을 오시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는 점잖은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셨다. 침대에 앉아계시던 할머니는 트레이에 담긴 주사기를 보고 주사가 꽂힌 팔을 선뜻 내어주셨다.
“아까 회진 때 설명 들으셨죠? 오늘부터 일주일 정도 항생제 주사 아침, 저녁으로 맞으실 거예요. 항생제 들어갈 때 아프실 수 있어요. 아프면 말씀해주세요. 최대한 천천히 놔드릴게요.” 혹시나 항생제 주사로 인한 혈관통이 있을까봐 미리 말씀을 드렸다. “아이구, 우리 선생님이 놔주는 건 하나도 안 아파.” 하시며 할머니가 웃으시는데 웃는 모습이 참 고우셨다. 매번 볼 때마다 사람이 참 때 묻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웃음이었다. 게다가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몸이 많이 힘드실 법도 한데 할머니는 짜증 한 번 내지 않으셨다. 내가 환자여도 늘 웃고 긍정적인 태도로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환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하시는 분 중 한 분이셨다.
“안 아프게 잘 부탁드립니다.” 할아버지가 당부하셨다. “네, 최대한 안 아프게 잘 해드릴게요.” 내가 대답하자 할머니가 살짝 나무라는 듯 할아버지의 손등을 살짝 때리는 시늉을 하셨다. “그래도 남편 분께서 매일 와서 간병도 해주시는게 좋아보이세요.” 내 말이 끝나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셨다. 나는 순간 내가 무언가 실수를 했나 싶어 당황했다. 그런 나를 보고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부부가 아니라우.” 할머니의 말에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죄송해요. 매일 병문안도 오시고 사이도 너무 좋아보이셔서…….” 나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사과드렸다. “아니에요. 그럴 수 있지 뭐. 우리는 아주 오랜 친구에요. 국민 학교 때부터 친구였어.” 할머니도 할아버지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셨다. “우와, 국민 학교 때부터요?” 나는 두 분을 번갈아보았다.
할머니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육십년이지.” 라고 말씀하시며 할아버지를 보며 웃으셨다. “우와, 그렇게 오랫동안 곁에 있는 친구가 있으시다니 부러워요.” 나는 경외에 찬 눈으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병실에서 나왔다. 그 후로도 계속 할아버지는 꾸준히 병문안을 오셔서 할머니의 말동무도 되어주시고 할머니의 차도를 묻기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브닝 출근을 하고보니 할머니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보니 협진의뢰가 나면서 담당 과 병동으로 할머니는 전동을 가신 후였다. 나를 볼 때마다 매번 환히 웃는 얼굴로 반겨주시는 할머니께 인사도 못 드렸다는 게 두고두고 아쉬워 며칠을 문득 할머니를 떠올리곤 했다. 아직도 할아버지는 매일 병문안을 가시겠지 하는 생각도 떠올랐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을까. 저녁 식사 시간이었지만 너무 바빠 오늘도 저녁은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환자 섭취량, 배설량 체크를 하러 병실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야, 그 할머니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대.” 스테이션에서 다른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게 들렸다. “누구?” “왜 있잖아. 며칠 전에 다른 병동으로 전동 간, 머리 하얗고 뽀글뽀글 머리에 귀여운 할머니.”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왜? 어쩌다 돌아가셨대? 그렇게 안 좋지 않으셨잖아.” “하이포(저혈당성 쇼크; hypoglycemic shock) 와서 오늘 새벽에 갑자기 돌아가셨대.” 내 안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밥은 먹고 일하냐며 내게 요구르트를 건네주시던 할머니의 손이 생각났다. 중절모를 쓴 키 큰 할아버지의 느린 걸음과 인자한 미소가 생각났다.
60년을 향하던 발길을 잃은 할아버지의 마음이 어떨까 싶어 먹먹했다. 60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봤던 내 마음도 이런데 오랜 친구를 잃은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도 이제껏 많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 중 다수와는 멀어졌지만 아직도 서로의 순간순간을 같이 공유하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 내가 언젠간 그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걸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가 가끔 마음속으로 하늘에 계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하는 혼잣말을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속삭이고 싶지 않다.
이별을 지켜보아야하는 병원이 싫다. 어느 날 어느 골목에서 예고 없이 튀어나올 죽음으로 아플 것이 싫다. 나는 이곳에 오래 있을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