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정지가 필요한 순간
2015년 11월 2일. 처음 병원에 입사한 날,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에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분명히 대학교를 다니며 4년간 이론 공부를 하고 1000시간의 실습시간도 이수했는데 신규간호사로 처음 담당 병동으로 간 날,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계속 했다.
물품 장부를 보며 잘 모르는 기구들 이름에도 익숙해져야 했고, 물품 숫자가 안 맞으면 피를 비롯한 온갖 체액에 젖은 거즈들이 가득한 의료폐기물 통에 머리를 집어넣어 헤집어야 했다. 그 많은 주사제 약물들과 경구약의 적응증, 용량, 부작용을 외우고, 매일 아침 정규 드레싱은 케이스마다 어떤 물품을 어떻게 사용해서 어시스트를 해야 하는지, 레지던트 선생님들마다 드레싱 스타일은 어떻게 다른지, 활력징후와 혈당검사는 몇 시에 나가야 하고 어느 정도 이상일 때 notify(보고)를 해야 하는지, 진단명별 처치 방법은 어떤지 등등 이것들 말고도 수 십 가지를 한 번에 다 외워야했다. 한 번의 실수도 절대 용납이 안되는 분위기였다.
똑같은 질문을 두 번 할 때는 크게 꾸중을 들을 각오를 해야 했고 세 번 물어보는 건 상상도 못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 생각하면 너무 겁이 나서 패닉이 될 것만 같은 막막함이 느껴졌다. 환자 한 명의 오더를 거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렇게 느려서 어떻게 그 환자들을 다 볼 거냐고 꾸중을 들으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멍청이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신규간호사들이 처음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 정맥주사 놓기. 대체 언제쯤 익숙해질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더군다나 투석환자들이나 만성 신장질환으로 건강한 혈관을 찾기 어려운 환자들에게 주사를 놓을 때는 땀이 삐질 삐질 났다. 입사하고 일주일 되었을 때, 정맥주사를 놓는데 주사 내관을 뺄 때 잘 못 눌러 피가 울컥 울컥 나오는 바람에 보호자 분이 “주사도 못 놓는 이런게 다 있어!” 라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그 한 번의 실패에서 놓여나는 것이 힘들었다. 퇴근하고 집에서 쉴 때도 보호자 분이 했던 말이 귓전에 생생했다.
가만히 생각해봤지만 역시나 연습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 이후로 정맥주사를 잡아야 하는 환자가 생기면 무조건 내가 놓겠다고 했다. 그렇게 익숙해질 때까지 수십 번 손에 카테터를 잡고 손끝으로 느껴지는 혈관의 느낌, 주사가 들어갈 때의 각도에 집중했다. 1년이 지나자 별 생각 없이 하루에 다섯 명이면 다섯 명, 일곱 명이면 일곱 명 한 번에 잘 놓게 되었다.
입사한 지 한 달이 좀 넘었을 때였다. 환자에게 투약할 약물 용량을 계산하는데 갑자기 내 옆으로 4년차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내 손에 머문 시선이 느껴지며 갑자기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갑자기 목이 타고 펜을 쥔 손에 식은땀이 났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한 번 더 계산을 하고 약물 용량을 알맞게 뽑아서 수액에 믹스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4년차 선생님이 내 등을 가볍게 치며 말씀하셨다.
“숨 쉬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후’ 하고 다시 숨이 트였다. 그 전까지는 나도 잘 몰랐다. 내가 많이 긴장을 하면 숨을 잘 쉬지 않는 다는 사실을. 내가 숨을 쉬고 나자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 잘하고 있어.” 라고 해주셨다. 그 한마디가 너무 감사해서 4년차 선생님 담당 방의 일이라면 내가 더 많이 도와드리려고 했다. 하지만 능력치가 부족해 그리 도움이 못된 게 사실이지만.
그 후로 처음 해보는 처치를 할 때나, 응급 상황이 오면 스스로에게 되뇌곤 했다.
“숨 쉬어.”
그리고 나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정 못하겠으면 도움을 청하면 돼. 그리고 혼나고 배우면 돼. 괜찮아. 첫술에 배부를 수 없어. 괜찮아.’ 라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너무 긴장돼서 어쩔 줄 모를 때마다 그렇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이 나를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됐다.
절대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지나면서 병동에 후배 간호사들이 들어왔다. 바짝 묶은 머리, 긴장된 입꼬리, 수첩과 펜을 항상 들고 다니며 부리나케 받아 적는 습관, 작게 불러도 얼른 달려와 대답하는 모습, 그리고 긴장으로 목이 타는 걸 알기에 종이컵에 물이라도 뽑아서 주거나 작은 음료수라도 주면 고맙다고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서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 불과 얼마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짠했다. 그래서 내가 후배 간호사들에게 뭔가를 알려줄 기회가 생기면 최대한 여러 번 설명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혹시나 시도 해보고 안 되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하라고 했다.
누구나 처음은 힘들고 당황스럽고 무섭다. 그리고 잘하고 싶기 때문에 더 긴장되고, 그 상황에서 실패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더 비관적이게 된다. 잘하고 싶어서, 민폐 끼치지 않고 싶어서 그런 거다. 숙련된 기술을 가지기 까지 일정량의 연습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어떠한 왕도가 없다. 어떤 날은 신들린 듯이 잘 되고 어떤 날은 잘 되던 것도 하나도 안되는 날이 있다. 오랜 시간동안 연습하면서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하고 그런 자기 자신을 다시 일으키는 연습만이 오직 자신의 기술을 키울 수 있을 뿐이다.
마음이 급해서 도중에 ‘나는 안 되나봐.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봐.’ 하며 자기가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미친 듯이 바쁜 임상에서는 내가 나를 놓기도 전에 내 프리셉터나 다른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나를 더 주눅들고 만들어 내가 포기하게 만들고 말지만. 숙련가 하나를 키우는 데는 누군가의 도움도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 사람이 시간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더 그 상황에 익숙해지고, 더 노력해볼 수 있도록 뒤에서 지켜봐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와주는. 그 누구도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다.
아직도 하루하루 새로운 것들이 많은, 할 것이 많아 벅차 엄두가 나지 않을 때,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올 때면 조용히 말한다.
“숨 쉬어.”
그리고 또 묵묵히 해나가는 거다. 이제는 안다.
언젠가는 또 능숙하게 해내는 내 모습에 놀랄 거라는 걸.
살아있는 동안은 아마 계속 어려운 것들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고 때론 도망가기도 하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길 위에서 나는 때론 눈물을 흘려도 분연 매진 할 것이다.
이제는 나름의 믿음이 생겼다.
나를 가장 울게 만든 것이, 나를 가장 웃게 할 것이라는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