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또 약을 퉤하고 뱉었어요. 아주 그냥 매번 약 먹일 때마다 죽겠어.” 나이트번 선생님께 인계가 끝나자마자 신경외과 환자분의 간병인 분이 나와서 말씀하셨다. 간병인님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헛소리와 공격적 행동을 보이는 *섬망 환자를 간호하는 것은 나한테도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였다.
*섬망(delirium) : 섬망은 혼돈(confusion)과 비슷하지만 심한 과다행동(예를 들어 안절부절못하고, 잠을 안자고, 소리를 지르고, 주사기를 빼내는 행위)과 생생한 환각, 초조함과 떨림 등이 자주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출처 : 네이버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정보)
간병인님이 어르고 달래어 취침 전 약을 어렵게 입 안에 넣었더니 할아버지가 “퉤.”하고 뱉으며 “어디서 새파랗게 눈을 뜨고 있는 나를 죽이려들어! 내가 니 수작질을 모를 줄 알아? 에라이, 천벌 받을 년.” 라고 또 욕을 한바닥 하셨다고 했다. 간병인님의 손바닥에는 촉촉하게 젖은 분홍색의 작은 알약 하나가 올려져있었다. 밤 동안의 섬망 증세를 막아줄 중요한 약이었다. 나는 간병인님을 달랜 후 그 약을 들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이불을 양 손으로 움켜쥔 채 큰 눈을 부릅뜨고 나와 간병인님을 노려보고 계셨다.
“김OO님, 지금 혹시 몇 시예요?” 나는 환자에게 지남력을 주기 위해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부릅뜬 눈으로 “말세야, 말세. 시퍼런 것들이 아주 작정을 했어.” 와 같은 맥락에 맞지 않는 대답만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두 눈을 응시했다.
“김OO님, 지금 몇 시에요?”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한 번 더 묻자 그제야 할아버지는 대답하셨다. “대낮이여. 아침부터 사람들 다 잡아갔어.” 할아버지는 팔까지 휘휘 저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내 시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아니에요. 지금은 밤 열한시 이십 분이고 여기는 병원이에요. 앞에 환자 분들 보이시죠? 그리고 지금 창밖도 깜깜하잖아요. 지금은 밤이고 자기 전에 약 드시고 주무셔야 할 시간이에요.” 알아들었나 싶어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눈만 끔뻑거리고 계셨다.
“제가 약 드시는 거 도와드릴까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나를 가만히 보고 계셨다. 좋은 신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으나 아까처럼 욕을 하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조금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물이 담긴 컵을 할아버지 입 앞에 갖다 놓아드렸고 할아버지는 물을 마셨다. “네, 잘 하셨어요. 약 입안에 넣어 드릴 테니까 물이랑 같이 꿀꺽하시면 돼요.” 할아버지가 입을 살짝 벌렸고 나는 얼른 약을 입안에 넣고 물 컵을 드렸다. “이제 꿀꺽 삼키시면 돼요.” 나는 안도하며 꿀꺽 삼키는 시범을 보였다. 하지만 순간, 내 얼굴로 분사되는 물에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나의 얼굴과 목을 타고 물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입에 머금고 있던 물을 뿜은 것이었다. "아이구, 아이구 어떡해!" 옆에서 보시던 간병인님이 놀라 휴지로 내 얼굴을 닦아주셨다. 나는 괜찮다고 하며 얼굴과 목을 닦으면서 물과 함께 어딘가로 뿜어져 나왔을 약을 찾고 있었다. 약은 바닥에 떨어져있다. 다행히 병동에 여분이 있는 약이라 떨어진 약 대신 구비되어있는 약을 가지고 왔다.
숨을 크게 쉬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 썩을 년, 삼 대가 망할 년. 얼른 썩 꺼지지 못해? 마을 여자들이랑 아이들 다 끌어다가 어디다 감췄어? 어? 다 잡아 죽이려는 거 알아. XXX부대로 끌고 갔냐?” 할아버지는 나의 분노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계셨다. 나는 숨을 몇 번 더 크게 고르고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말했다.
“김OO님. 여기는 지금 병원이에요. 마을이 아니에요. 그리고 전쟁 중도 아니에요. 다들 안전해요. 아까 따님이 전화도 하셨어요, 별 일 없으시냐구요. 다 안전하니까 걱정 안하셔도 돼요.” 나는 할아버지의 두 눈을 마주하고 또박 또박 천천히 말했다. 제발 좀 내 진심이 닿길 바라면서.
갑자기 할아버지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금세 빨개진 눈시울로 본인의 눈가를 누르며 말했다. “내가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없이 사느라 너 공부도 많이 못시켜주고 좋은 옷도 잘 못 사 입히고. 없는 집에서 없이 살게 해서 면목이 없다. 못난 애비 실컷 원망해라. 미안해.”
따님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이제 할아버지는 내가 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조금 전에는 분노와 살의가 가득하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 보니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착각이 만들어 낸 세계가 다른 상황도 아니고 전쟁 상황이라니. 과거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아직도 되풀이 되는 것은 얼마나 힘든일일까.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힘들 것 같았다. 근데 나도 힘들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할아버지 발치에 앉았다.
“애비가 못나서 미안해.” 금세 눈시울이 붉어진 할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한 두 방울 흘렀다. 커다란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데 왠지 모르게 너무 속상했다.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아 그냥 잠시 조용히 발치에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가 우는 모습은 마치 아이가 우는 모습 같기도 했다.
“아빠.”
내 말에 할아버지가 나를 보았다.
“나는 있지, 아빠가 최선을 다해서 나를 키워준 거 알아. 전쟁 나가서 나라도 지키느라 애썼고 또 무사히 돌아와서 우리 가족도 지켜줬잖아. 나는 아빠 원망 안 해.”
말을 하면서 며칠 전 보았던 할아버지의 따님 얼굴을 떠올렸다. 할아버지의 커다란 눈과 볼이 통통한 얼굴을 그대로 닮은 따님이었다. 지금 내가 딸인 척 이러고 있는 걸 알게 된다면 혹시나 화를 내진 않을까 싶었지만 어느 새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빠, 고마워. 그러니까 나는 아빠도 편안했으면 좋겠어. 피곤하잖아, 그치?”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약 먹고 푹 자고 일어나면 머리도 덜 아프고 괜찮을 거야.”
나는 다시 할아버지의 입에 약을 넣어드렸고 다행히 할아버지는 약을 꿀꺽하고 삼키셨다. 나는 일부러 소등 후에도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잠시 옆에 앉아있었다. 어느새 할아버지는 아이처럼 이불을 덮고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복도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에 비친 할아버지의 얼굴에 선명한 눈물자국이 보였다.
간병인님이 수고했다고 내 등을 쓸어내리는 게 느껴졌다. 간병인님도 수고하셨다고 쉬시라고 인사를 드리고는 조용히 병실을 나왔다. 급격히 피로가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집으로 가는 길에 졸지 않기 위해 음악을 크게 틀고 밤길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