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간호사!” 날카롭게 부르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소리의 근원지인 것 같은 1호실로 얼른 뛰어 들어갔다. “여기!” 소리치는 할아버지의 침대 가까이로 갔다. 나는 재빨리 할아버지의 상태를 살폈다.
“진통제 좀 놔줘! 진통제.” 할아버지는 내 유니폼이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꽉 붙잡고 말씀하셨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급격한 신체적, 정신적 상태 변화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시계를 보았다. 오후 다섯 시 반이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고작 진통제가 들어간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또 사력을 다해 진통제를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할아버지의 얼굴이 통증의 크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에게 처방된 진통제는 일반적 통증에 쓰이는 주사제였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대장암이 온 몸에 전이된 분이셨다. 암성 통증을 진정시킬 수 있는 더 강한 진통제가 들어가야 했지만 이틀 후 월요일이 되어야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가 생겨 일단 일반 병실에서 할 수 있는 처치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할아버지를 잠시 달랜 후 자리로 돌아와 간호기록을 확인했다. 회진 기록을 보니 주치의는 그래도 진통제간 간격이 적어도 세 시간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잦은 진통제 주사가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것을 감안해서 그래도 관대하게 내린 결정임은 알았지만 말기 대장암이 전신으로 전이된 환자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약한 처방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에게 전화하기 전 미리 할 말을 생각했다. 환자가 호소하는 통증의 간격이 오늘 오전에는 두 시간 간격이었지만 지금은 한 시간이 채 안되게 줄고 있고, 현재 활력징후는 양호하다고. 미리 진통제 오더를 내주신 건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이 진통제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부득이하게 연락드리게 되었다고. 다행히 전화를 받은 주치의 선생님은 짜증을 내지 않았다. 주치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른 종류의 더 강한 진통제를 근육 주사로 놔달라고 말을 했다. 마약성 진통제만큼은 아니지만 더 강한 진통제를 군말 없이 처방해준 것이 고마웠다.
나는 처방대로 주사제를 준비해 환자에게 갔다. 할아버지는 이불을 꼭 끌어안고 끙끙거리고 계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추가 약이 들어갈 예정이라고 설명을 한 후 주사를 놓았다. 주사를 놓기는 했지만 약효가 나는데 까지 또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었다. 죄송한 마음에 할아버지께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30분 안에 약효가 날거라고 설명 드렸다. 할아버지는 누워계신 채로 연신 머리를 숙이시며 나한테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하셨다.
날 보는 할아버지의 눈에 어느 순간 눈물이 고였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식은땀으로 손이 축축했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이 도움이 될까 고민하는데 할아버지가 먼저 입을 떼셨다. “미안해, 소리 질러서.”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아니에요. 미안해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 아프시니까 그런 거 알아요.” 되려 사과하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조용히 가야하는데 너무 아파서 그럴 수가 없어.” 울먹이며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너무 아프셔서 말씀하실 수밖에 없다는 거 알아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씀 하셔야해요. 잘하셨어요.”
“있지, 나중에 혹시 나라를 위해서 싸우게 될 기회가 생기면 싸우지 마. 그냥 도망가. 영광이고 뭐고 하나도 없고 나중에 몸만 병신 돼서 고생이나 죽어라 하다가 가는 거야, 나처럼. 죽어라고 고생만하다가 이렇게 끝나네, 결국.”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결국 눈물이 흘렀다. 옆에 계시던 부인 분이 병실 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옆에 놓여있는 휴지를 뽑아 할아버지의 눈물을 닦아드렸다. 내가 감히 그 고통을 이해한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해 보지도 않았고, 그렇게 아파보지도 않았는데 덜컥 얼마나 힘드실지 안다고 위로를 건넬 수가 없었다. 내 언어의 한계와 능력의 부족함을 느끼며 할아버지의 눈물만 닦아주고 있었다.
“그래도 고마워. 귀찮을 텐데 와서 이렇게 주사도 더 주고 노친네 이야기도 들어주고 그래서. 참 고마워. 그래도 내가 우리 박 간호사는 기억할거야. 내가 마지막 인사는 이렇게 갈음할게.”
할아버지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죄송해요. 제가 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요.” 고작 꺼낸 말이 그거였다. 내일 하루만 더 지나면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실 거고 그 곳에서는 좀 더 집중적인 통증 완화 치료를 받으실 수 있으니 조금만 더 버텨주시길 바랐다. 다음날은 오프이고 전동 예정인 월요일은 나는 이브닝 출근 예정이라 아침 일찍 전동가실 환자분께 인사드릴 수 있는 시간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좀 더 자주 1호실로 들어가 할아버지의 상태를 살폈다. 주사가 들어간 지 30분 정도가 되자 약효가 있는지 할아버지는 잠시 까무룩 잠이 드셨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지 않아 깨졌고 나는 퇴근하기 전까지 두 번 더 진통제를 놔드렸다. 그리고 가기 전 할아버지께 인사드렸다. 아쉽게도 월요일은 오후 출근이라 전동 가시는 길을 배웅을 못해드릴 것 같다고. 하지만 그쪽 병동에 가셔서 호스피스 치료를 받으시면 통증은 훨씬 덜 하실 거라고, 기도하겠다고 그렇게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는 애써 미소를 지으시며 고맙다고 조심히 가라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셨다.
월요일 오후, 출근하고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호실에 가 보았지만 예정대로 할아버지는 전동을 가시고 난 후였다. 시트만 덩그러니 놓인 빈 침대에서 시선을 떼고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 바쁘게 일을 했다. 그 후로 가끔 할아버지 생각이 날 때면 컴퓨터 시스템에서 호스피스 병동을 클릭해 할아버지의 이름이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그 곳에서는 훨씬 덜 아프신지 궁금했지만 달리 물을 방도가 없었다. 그저 속으로 화살기도만 할 뿐이었다. 신이 있다면 제발 마지막까지 환자가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게 해달라고. 부디 환자의 머리 한 번 쓰다듬어 달라고. 환자를 위해 가족들이 하는 기도에 십초만이라도 귀 기울여 달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할아버지는 찾아보는 빈도는 점점 줄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할아버지가 생각나 또 호스피스 병동을 클릭했다. 몇 안 되는 환자의 목록을 훑고 또 훑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없었다.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