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8. 전하지 못한 인사

잘 계신가요, 저는 잘 있습니다

by 서하

“박 선생님, 저녁은 드셨어요?” 까만 얼굴로 배시시 웃을 때면 개구쟁이 일곱 살 아이 같아보였다.

“네, 먹었어요. OOO님은 저녁 드셨어요?” 물어보면 “네~ 먹었지유.” 대답하시곤 또 배시시 웃으셨다.


무표정으로 일을 하다가도 할아버지가 건넨 인사에 대답을 할 때면 꼭 웃곤 했다. 위암으로 수술 후 경구섭취가 어려울 때면 입원하시는 분이셨다. 분기별로 한 번씩 오시는 할아버지를 모두가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늘 웃는 얼굴로 주치의와 간호사들을 맞아주셨고 늘 깍듯이 대해주셨다. 간호사들이 밥을 잘 못 먹고 일을 한다는 걸 아시고는 본인이 밥을 드시기가 힘드셔도 꼭 간호사들이 일과 중에 밥을 먹었는지 못 먹었는지 신경을 써주셨다.


어느 날은 같은 병실에 입원한 다른 환자분이 내게 “입원했더니 밥도 안주고 피만 뽑아가고 고생만 죽어라 시키고 앉아있어!” 라고 소리를 지르는 걸 보시고는 할아버지가 버럭하셨다. "지가 필요해서 입원해놓고 왜 간호사한테 화풀이야 화풀이는. 알아서 얼마나 챙겨주고 마음써주시는데. 지가 하겠다고 입원해놓고 어디다대고 성질이야 성질은." 할아버지가 화를 내시는 것도 처음 봤지만 괜히 나 때문에 맘 상하실까봐 내가 놀라서 할아버지를 달랜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한테는 생각해주시는 마음 정말 감사하다고, 하지만 제가 잘 대응하겠다고, 큰 위안이 되었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재차 말씀 드렸다. 내 입장을 생각하고 마음써주는 환자가 있다는 것만으로 정말 큰 위안을 받은 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늘 그렇게 웃고 건강하실 줄 알았다. 늘 내게 밥을 먹었냐고, 오늘은 더운데 어떻게 출근했냐고, 밖엔 비 오는데 어떻게 집에 가냐고 물어봐주실 줄 알았다. 내가 피를 뽑는 건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매번 말씀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할아버지는 낮에도 잠만 주무셨다. 혹시 어디 아픈 곳이 있나 해서 물어보면 할아버지는 반쯤 뜬 눈으로 고개를 절레 절레 저으셨지만 걱정이 된 나와 다른 선생님들은 주치의에게 다른 때와는 다르다며 다른 정밀검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상태를 본 주치의 선생님도 다른 때와는 좀 다르다는 걸 느꼈는지 정밀검사를 오더 했고 검사를 시행했지만 특별히 나온 결과는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점점 더 무기력해졌고 하루에 세 네 번씩 나가던 산책도 한 번도 나가지 않고 계속 누워서 잠만 주무셨다. 가끔 눈을 뜨고 계실 때도 그 웃음 많던 얼굴에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다. 내게는 그러신 적은 없었지만 다른 선생님들께 듣기로는 vital sign(활력징후)을 재려고 하면 짜증도 내신다고 하셨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본인 앞으로 나온 식판에 손도 대지 않으셨다. 안된다고 꼭 드셔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손수 밥을 떠서 입 앞에 대어드려도 할아버지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밥상 저리 치우라고만 하셨다. 생전 짜증이라고는 안내시던 분이 보인 모습에 나와 다른 선생님들은 당황하면서도 속이 상했다. 수액만 늘어갔다. 하지만 또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이뇨제를 쓰며 섭취량과 배설량을 예의 주시했다. 시간이 지나도 모두의 기원이 무색하게 아무런 호전이 없었다.


아무래도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는 주치의 말에 보호자 분께 연락을 했다. 할아버지의 부인 분이 오셔서 옆에서 먹고 자고 하시며 할아버지를 돌봐주셨다.

그 사이, 나를 각별하게 생각해주시던 환자분 한 분이 또 명을 달리하셨다. 그리고 그 쯤, 나는 간호사로서의 내 삶을 마무리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사직 날짜를 받아놓고 하루 하루 날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끝을 간절히 기다리면서도 할아버지의 호전을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어느 새, 병원에서의 마지막 날이 왔다. 마지막 나이트 근무를 하며 새벽 내내 스테이션과 병실을 오갔다. 할아버지의 수액이 잘 들어가는지, 소변은 잘 나오는지, 열은 없는지 확인 했다. 다행이 별일 없이 잘 지나가는 듯 했다.


데이 근무 선생님께 인계가 끝나자마자 할아버지의 보호자분이 나오셔서 얼른 와보라고 소리를 치셨다. 나는 헐레벌떡 뛰어갔다.

“이거 좀 걷어봐.”

할아버지는 허공에 손을 저으며 헛소리를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양 어깨를 두드리며 “OOO님, OOO님.” 하고 불렀다. 할아버지는 허공을 헤매던 눈동자를 돌려 나를 쳐다보셨다.

“눈앞에 뭐가 보이세요?”

할아버지는 대답은 하지 않으셨지만 다시 허공을 보고 혼을 휘저으시다가 다시 나를 보셨다. 나는 활력징후를 측정하고 의식수준을 사정하기 위해 할아버지께 물었다.

“OOO님, 여기 어디에요?”

“OOOO병원.”

“그럼 오늘 몇 월 몇 일 인지 아세요?”

“9월... 8일?” 어제 날짜였다.

“지금 아침이에요 밤이에요?”

“아침.”

“저는 누구예요?”

할아버지는 방긋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 박 선생님이지!”

정말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다. 내가 웃고 있지 않다가 웃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했던, 보람보다는 좌절이 더 많았던 와중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버티게 만들어줬던 그 웃음이었다. 울컥했다. 내가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인 줄 아시는 것처럼 웃어주시는 그 모습에 멍한 정신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코 끝이 찡해지는 걸 간신히 참고 “지금 어디 아프시거나 불편하신데 있으세요?” 라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늘 그랬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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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님.” 내가 할아버지를 부르며 손을 잡고 두 눈을 마주했다. 까만 눈동자가 나를 보았다. “꼭 언제든지 아프면 아프다고 말씀하시고, 밥도 조금이라도 더 드시려고 노력해보세요. 꼭 더 나아지셔야 해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할아버지를 살짝 안아드리고 병실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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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사흘 후, 오후 두 시. 나는 일본 시부야에 있는 한 카페 창가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사거리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켜지는 순간, 사방에서 동시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쏟아지는 광경을 질리는 줄 모르고 보았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지?’ 지나가는 저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삶의 이유가 있는지, 행복한지 묻고 싶었다. 한숨을 쉬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왔다. 같은 병동에서 근무하던 친한 후배였다. 동생은 내게 여행은 잘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잘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동생은 내게 오늘 새벽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동생의 문자를 보고 숨을 멈췄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동생은 마음이 착잡하다고, 슬프다고 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바로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어 미안했다. 나만큼이나 동생도 상실감이 클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끝을 지킨 동생이 부러웠다. 끝까지 같이 있어드리지 못한 죄책감이 물밀려 들어왔다. 도대체 이제까지 나름 버틴다고 버틴 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다시 한 번 나 자신에게 물었다. 또 한 번 신호등에 초록불이 켜졌지만 사람들이 쏟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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