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0. 깨진 유리창_나의 조각들

by 서하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빛을 받아 번쩍였고 그 날 선 단면이 내 앞의 공기층을 가르는 순간, 나는 몸을 뒤로 젖히며 눈을 감았다. 잠시 동안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으나 곧이어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다. 피 묻은 환자복, 피로 얼룩진 병원 복도 바닥 그리고 유리 조각을 휘두르고 있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할아버지의 발밑에 깔려있던 할머니는 다행히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겨졌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휘두르고 있는 할아버지 주변을 선생님들과 원을 만들어 다른 환자들이 다치지 않게 진을 쳤다.



“보안요원 불러 빨리!” 선생님의 외침에 나는 저 끝 스테이션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 응급 전화를 눌렀다. 곧이어 지원 부서들에서 전화가 왔다. “실제 상황이에요?” 느긋한 대답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 같았다. “네, 실제 상황이에요. 환자가 복도 유리창을 깨고 유리 조각을 휘두르고 있어요. 빨리요!” 곧이어 건장한 남자 직원들이 우르르 올라와 환자가 있는 복도로 갔다. 건장한 남자 직원들을 보자 할아버지는 유리창 조각을 든 손을 바닥으로 순순히 떨구고 유리 조각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니, 나는 아무것도 안했어.” 갑자기 할아버지는 순한 양이 되어 자신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피범벅이 된 보호자를 찾았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휘두른 주먹에 입술이 크게 터졌고 광대뼈와 광대뼈 아래쪽 뺨이 퉁퉁 부었다. 할머니의 턱 끝에서 피와 눈물이 섞였다. 나는 할머니를 달래며 눈물과 피를 닦았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천천히 자초지종을 설명해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뇌종양으로 수술 후 뇌수종이 생겨 입원하신 분이었다. 하지만 수종의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두개 내 압력이 증가하며 성격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상태는 더 악화되어 망상으로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어느 새 할머니가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고 있고 자신의 재산을 빼돌리려고 다른 가족들과 할머니가 계획을 짜고 있다고 믿었다. 그 즈음,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한 시간 동안 다섯 번도 더 자신의 통장을 보여 달라고 소리를 지르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통장을 보여줘도 할아버지는 다른 돈들은 다 어디 갔느냐며 존재 하지 않는 돈의 행방을 물으며 할머니를 의심했다.

그 날 오전에도 돈 문제로 한바탕 말싸움을 하다가 사태가 일어난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주먹으로 때리고 밟다가 다른 사람들이 말리자 핸드폰으로 창문을 깨고 깨진 창문 유리조각으로 사람들을 위협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며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상처를 봉합하는 중에도 나는 계속 할머니의 눈물을 닦았다.



담당간호사였던 나는 깨진 유리창 부근에 환자들이 접근하지 않도록 펜스를 치고 할아버지의 다른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고 사건 보고서를 작성했다.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밥을 먹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머리가 아파 약을 먹고 싶었지만 늘 가지고 다니던 비상 두통약도 그날따라 가방에 없었다.


인계가 끝나고 진이 다 빠져버린 몸을 이끌고 집에 가려는데 선임 간호사 선생님의 제안으로 근처 카페에 들렀다. “힘들었지? 수고 했어. 많이 놀랐겠다.” 선임 간호사 선생님이 따뜻하게 위로해주시며 커피와 쿠키를 내 앞에 놓아주셨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따뜻한 커피에 그래도 마음이 차츰 안정되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데 햇빛을 받아 번쩍 하던 나를 향한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생각났다. 눈을 떴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자꾸만 떠오르는 이미지를 지우려 했지만 잠시 뿐이었다. 살짝 잠이 들었다가 무언가에 놀라 발작하듯이 깼다. 결국 서랍에 넣어두었던 수면제를 꺼냈다. 서서히 끊으려고 사흘 동안 안 먹고 버텼지만 그날 밤은 어쩔 수 없었다.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고 물을 꿀꺽 삼켰다. 이어폰을 꽂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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