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또 주삿바늘을 뽑았다. 두 시간 동안 벌써 세 번째였다. 보호자인 할머니가 뛰쳐나오는 걸 보자마자 병실 처치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얼른 알콜솜으로 피가 나는 부위를 막았지만 할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면서 몸서리를 쳤다. 달려온 다른 선생님들과 나는 최대한 할아버지를 진정시키면서 피가 나니 일단 지혈을 해야 한다고, 아프게 하는 일 없을 거라고 최대한 달랬다. 어제 오후 한 시 경 갑자기 시작된 발작으로 처치실에서 집중 관찰하고 있는 중이었다. 며칠 전부터 안절부절 못하고 헛소리를 하는 증상이 있어 예상은 했었지만 한 차례 발작 후 할아버지는 더 안절부절 못하셨고 헛소리를 계속 하셨다.
처음 할아버지가 입원을 하셨던 날을 기억한다. 한밤중에 내가 입원을 받았기 때문에 더 각별하게 보는 환자이기도 했다. 처음 입원하셨을 때보다 크게 호전되어 회진할 때 주치의 선생님의 질문에 정답을 말할 때면 박수치며 같이 웃는 날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악화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헛소리와 고열이 반복되었고 식사도 안 하시려고 했다. 두부 CT에서는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게 주치의의 설명이었다. 주사도 자꾸 손으로 뽑아서 그 위에 붕대를 감고 억제대까지 적용했지만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꼼지락 꼼지락 손을 빼서 주사를 뽑았다. 침상 근처에 누군가가 오면 발길질을 하며 할퀴려고 손을 뻗었다. 다가오는 사람이 가족이든 의료진이든 상관없이 거친 행동은 계속 되었다.
욕을 하며 눈에 노기를 가득 담고 발길질을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많이 놀라신 것 같았다. “어디 불편하시거나 아픈데 있으세요?” 내가 묻자 할아버지는 대답대신 욕을 한바가지 하셨다. 그러면서 발길질을 해서 나는 할아버지의 머리 쪽으로 몸을 돌려 피했다. “왜 그래. 선생님 더 힘들게.” 할머니께서 말씀하시자마자 할아버지는 이번에는 또 할머니에게 욕을 하며 할퀴려는 듯 손을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 나는 할머니가 다칠 까봐 얼른 할머니를 내 쪽으로 가까이 당겼다. 언뜻 할머니를 본 순간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는 걸 알았다.
“정 떼려나보네. 떠나려고 이제. 진짜 떠날라보네.”
순간 할머니가 생각났다. 나의 할머니. 한 번도 내 곁을 떠나실 거라 생각해본 적 없으나 가장 먼저 내 곁을 떠나신 우리 할머니. 내가 처음으로 영원한 이별이 어떤 건지를 알려주셨던 할머니. 할머니도 떠나시기 전에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셨고 헛소리를 하셨다. 애써서 밥을 먹여드리면 “퉤.”하고 뱉어내셨다. 한동안 간병하는 주변 가족들을 힘들게 하셨을 때, 가족 중 누군가가 했던 말이 귓전을 울렸다. “정 뗄라카는갑다.”
병마와 싸우는 환자는 힘들다. 그 환자를 옆에서 지켜보고 간병하는 사람들도 힘들다. 서로 간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아주 힘들고 긴 싸움을 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힘든 싸움에서 이기는 상황이 더 많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병이 더 고통스러울수록, 환자가 나이가 많을수록 그 싸움에서 질 확률이 더 높다. 환자는 생을 놓아야하고 가족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 잔인한 이야기이지만 사실이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만 한다.
병마와 싸우느라 지쳐 날카로워진 환자들로 인해 상처받은 가족들을 볼 때면 다른 때보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더 신경이 쓰였다. 보호자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환자에게 맞지 않도록 피하게 하거나 감싸는 것만큼 마음의 상처를 최대한 덜 받게 하는 것, 서서히 받아들이게 하는 것도 어려운 과제였다.
몇 번의 경험을 거쳤지만 그렇다고 쉬워지지는 않았다. 매번 똑같이 어렵고 힘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불현듯 떠오를 때도 있다.
그런 경험이 계속 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조금씩 바뀌었다.
부모님께 먼저 전화를 걸고,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동생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친구들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 주변을 잘 정리해 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조금 더 일찍 떠난다해도 최대한 덜 아쉽도록. 그리고 좀더 사랑만을 남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