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시작한 뒤로 생긴 습관이 몇 가지 있다.
유난히 피곤하고 지치는 날이면 퇴근하면서 “수고했어. 잘했어.” 혼잣말을 하는 것, 자주 멍 때리는 것, 집에서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집 밖으로 나가 목적지 없이 걷는 것.
매일 집 근처 카페에 갔다. 1층에서 음료를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가 커다란 창가 앞의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는 멍하니 창밖을 응시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기 보다는 어떠한 의도가 없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투명한 창을 통해 매끈하게 뻗은 나뭇가지와 푸른 나무 이파리들을 보는 것도 좋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저 사람은 어떤 일을 할까? 저 사람은 행복할까? 저 사람에게 사는 이유를 물어보면 답해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게임 화면에서처럼 사람들의 머리 위에 말풍선이 띄워져있어 직업, 행복도, 삶의 목표 등이 써있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도 했다. 그러다 아무 표정없이 걷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꽤나 지친 하루를 보냈나보다 하는 생각에 등을 토닥여 주고 싶었다.
그러다 어떤 때는 작은 자취방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지갑과 가방만 들고 길을 나섰다. 어떠한 목적도 없이 오로지 걷기만을 위해 걸었다. 걷고 또 걷고 눈에 닿는 모든 시야와 모든 도시의 소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어폰도 꽂지 않은 채로. 그냥 가고 싶은 방향으로 막 걸었다. 커다란 언덕을 오르고 싶으면 올랐고 끝이 저 멀리 있는 것 같은 계단도 그냥 올랐다. 걸음걸음의 중간에 나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렇게 걷다가 어느 순간 ‘충분해. 돌아가도 돼.’ 하는 생각이 들면 그때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면 씻고 침대에 누워 아릿한 발바닥과 종아리를 주물렀다. 노곤한 몸을 누이고 나면 이불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누군가가 내가 잠들 때까지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있었으면 하면서.
집에 있으면 가끔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사람 한 명이 살 수 있는 작은 자취방이어서기도 했지만 방에 잠시 앉아있다보면 커다란 창이 있는 공간이 간절했다. 집 근처에 커다란 창이 있는 카페는 다 알아두고 시간이 날때면 그 카페들을 찾아갔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한참동안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리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있어도 도무지 질리지를 않았다. 오히려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바깥의 세계를 더 갈구했다. 마치 카페를 나가도 도달할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있는 것처럼.
언제 생겼는지, 왜 생겼는지 모를 습관들로 한동안 숨을 틔우고 살았다. 혼잣말을 하고 몇 시간을 멍하니 앉아있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병원을 그만두고 충분히 쉬는 동안에야 지난 내 습관들에 대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창은 투명하지만 동시에 닿을 수 없는 일정의 거리감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커다란 창을 통해 세상을 보면서 나 혼자만 이 세계에 발붙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끼면서도 타인들과 이야기 하거나 접촉이 없이 홀로 있고 싶었다. 완전한 차단도 완전한 개방도 아닌 반투과성의 공간이 그때의 내겐 절실했다.
자꾸 걸었던 이유는 걷기가 뇌파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적당한 운동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가 걷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나를 온통 갉아먹는 기분이 들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간호사로 일하는 동안 아프기도 참 아팠다. 장염에 걸려 수액을 맞으면서 나이트 근무를 하던 날 아픈 몸으로 밤을 새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픈데 밤새면서 일해야 할 정도로 돈이 없냐. 쯧쯧.” 하는 환자분의 말에 마음은 더 오래 아팠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 하루 세 시간이상 자지 못해 아무도 없는 집에서 결국 기절했다. 뒤로 꽈당하고 넘어졌는데 내가 기절한 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종종 그렇게 입원하는 환자들을 문진할 때, "넘어지신 후에 의식을 잃으셨어요? 얼마동안 잃으셨어요?" 라고 물어보곤 했었다. 가끔 환자들은 "얼마동안이었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했는데, 그 때는 그 대답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내가 겪어보고 나서야 공감할 수 있었다. 아픈 내 자신과, 이토록 이기적인 내 자신에게도 짜증이 났다.
머리 뒤에 혹을 단채로 근무하던 중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아 퇴근하자마자 응급실로 향했다. CT상에는 별 이상은 없지만 외상 후 한두달까지는 출혈이 생길 수 있으니 다른 증상이 있으면 언제든 빨리 검진을 받으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 이후, 한동안 고민하다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정신의학과 선생님은 지리멸렬하게 들렸을지도 모르는 내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잘 들어주셨다. 그 날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에서 “균형이 깨졌다.”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내 행동에 변화가 있다거나 내 몸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걸 살피는데 참 둔했다. 문제가 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았지만 애써 무시하고 '괜찮아지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살아보니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혹은 개인의 ‘먹고사니즘’을 위해 노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우선이 되어야한다. 내 몸의, 내 마음의 변화를 살피고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들을 줄 알아야한다.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걸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매일 쓰는 다이어리로 나의 경향을 파악한 후에는 한결 쉬워졌다.
다 행복하려고 하는 일이다. 지긋지긋한 삶이지만 막상 끝이 왔을 때 눈물 나도록 아쉬울 수 있는, 어느 미지의 시점에서 끝이 날 소중한 삶이다. 잃기 전에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