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05. 4월 전쟁설

오늘 내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이유

by 서하

2017년 0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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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너무 빠르다. 하루하루는 더딘데 일주일은 쏜살같다. 빠른 와중에도 느리게 남는 시간들이 있다. “걱정 마. 우리 박 선생이 간호부장 되는 거 보고 죽어야지.” 했던 문 씨 할아버지가 퇴원을 하셨고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퇴원 자리를 치우러 병실로 들어섰다. 투명한 창 너머에 푸른 나뭇잎이 햇볕을 받아 반짝였고 병실은 조용했다. 나와 매일 티격태격 하는 권 씨 할아버지는 누워서 TV를 보고 계셨다. 뉴스의 헤드라인은 ‘4월 전쟁설’이었다.


침대를 정리하는데 갑자기 권 씨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박 선생.”

“네?”

정리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도망가, 멀리 멀리.”

“가긴 어딜 가요.”

나는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두고 대답했다.


“한창 예쁘고 좋을 나이잖아. 전쟁 나서 죽으면 어쩔껴. 도망 가. 지금 죽으면 안 돼.”


매일 내게 장난을 거시던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묵직한 무언가가 담겼다. 한국에서 최고 수준의 병원이라는 3차 대학병원에서도 총상 환자,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은 환자는 본 적이 없었다. Phantom pain(환상통)이 진짜 어떤 건지는 전공책이 아니라 이곳에 와서 보고 배웠다.


첫 병원을 그만 두고 이 곳에 합격한 후 , 유공자 병원은 환자 텃세가 심하다고 각오하고 가야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권 씨 할아버지는 내가 처음 출근한 날 처음 보는 사람을 어떻게 믿냐며 Vital sign(활력징후) 측정도 거부하셨다. 그래서 나는 거수경례를 하고 출신 대학교, 이전 근무지, 이름, 간단한 자기소개로 ‘신고’를 했고 그제야 할아버지는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이후로도 몇 번의 크고 작은 신경전을 거친 후에야 나는 환자에게 간호사로서의 내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접근 권한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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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도망가라고 하는 할아버지는 불과 십대 중반의 나이에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셨던 분이고, 내 나이의 몇 배 되는 시간을 전쟁 후유증을 안고 살아오신 분이시다.


“그렇게 가르치시면 안 되죠. 나도 최선을 다해 지켰으니, 너도 최선을 다해 지켜줘. 그렇게 가르쳐 주세요.”

“막상 겪어보면 도망가고 싶을거여.”

“그렇겠죠.”

“겪어봐서 하는 말이여. 도망가라니께. 나중에 진짜 전쟁나면 내 말 들을 걸 땅을 치고 후회하지 말고.”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하여간 말 드럽게 안 들어.”


그랬던 어느 날이 있었다.

그렇게 날들은 바랬는데 전쟁설은 아직 유효하다. 어느 새 팔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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