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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단 Aug 22. 2024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야, 너두 할 수 있어_07

과음까지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니 속을 달래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난 것은 며칠 전에 우연히 지나가다 본 콩나물국밥이었지만 막상 집을 나서자 빗방울이 떨어지길래 마침 문을 활짝 열어놓은 한식 식당에서 대강 한 끼를 때우기로 했다.

황태 해장국이라도 있었음 했지만 먹을 만한 메뉴는 백반이 최선이었다. 화려해 보이는 한상 차림에는 각종 반찬과 소고기뭇국이 나왔지만...

속을 달래줄 것을 기대하고 뜬 한 숟가락에 난 인상을 쓰고 말았다.

짜도 너무 짰다. 물을 탔지만 무까지 아낌없이 배인 짠기는 쉽게 희석되지 않았다.

콩나물 무침, 가지나물, 도라지 무침, 꺳잎나물... 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들이었지만 하나같이 간이 세도 너무 셌다. 

시뻘건 양념으로 범벅된 게장은 젓가락을 댈 생각도 하지 않았고 결국 모든 반찬에 물을 부어 씻어먹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음식 남기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최선을 다 해봤지만 그릇을 비우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찌어찌 억지로 반 이상을 씹어넘기고 돌아오는 길에 불쾌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남길걸... 콩나물국밥 먹으러 갈걸... 

이미 수저를 놓고 나온 지 한참 됐는데도 입안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인공조미료의 맛 때문에 그 맘은 더 커져왔다.


어제 먹은 태국 음식도 달고 짜고 맵고... 너무나 자극적이었는데 태국 음식이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먹으면서도 내 몸에 죄책감이 들었고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가끔 한 끼 정도는 괜찮아... 하고 넘겼는데 오늘 아침까지 연타로 이어지는 '나트륨 폭격'은 내 속을 폐허로 만들고 쓰레기통으로 만들어버리는 기분이었다. 

심하게 말하자면... 이건 내게 음식이 아니라 독약이었다. 

정성은 인정해요, 사장님... ㅜㅜ


어쩌면 내 입맛이 특이한 거고 유난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근처에서 현장 일을 하시는 걸로 보이는 중년 남자 여러 분이 들어오셨고 그분들은 단골인 듯 사장님과 익숙한 인사를 주고받으며 나와 같은 메뉴의 백반을 맛있게도 잘도 드셨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나는 말리고 싶었다.

"생로병사에 출연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당장 그 젓가락 놓으세요!" 


운동을 시작하기 전, 나 역시 '식단'에 대해 개념 자체가 없었다.

'탄단지' 나 '칼로리'는 급식이나 구내식당에서나 쓰이는 용어일 뿐, 나의 일상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운동을 제대로 배우고 시작하면서 '몸을 만드는 것에 운동이 3이라면 식단이 7'이라는 트레이너의 말에 각성을 하게 되었다.

일단 나 같은 경우는 먼저 체중을 좀 늘린 후, 지방을 빼면서 근육을 만들어야 하는데 패스트푸드나 단 음식을 통해서가 아닌 '클린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고기를 거의 먹지 않던 식생활에서 식물성 단백질을 늘리는 것과 더불에 육식을 조금씩 추가하기 시작했고, 설탕과 밀가루, 튀긴 음식 등은 자제하려 노력했다. 

과식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었고 불가피한 외식이나 매식 등에 이미 충분한 염분이 있기에 직접 해 먹는 음식에는 간을 안하거나 최소화했다.

평생 소울푸드였던 떡볶이는 명절처럼 분기별로 한 번이나 먹을까, 그것도 옆에서 맛을 보는 정도에 그쳤다.

물론 내가 아직까지 포기하지 않고 먹는 것들 중에 클린 하지 않은 것들도 많다.

맥주와 와인, 그리고 가끔 먹는 크로와상과 까눌레와 같은 베이커리류? 

하지만 가끔의 일탈일 뿐, 주 식단은 샐러드, 방울토마토, 삶은 달걀, 굽거나 삶은 고구마, 두부, 콩류, 견과류, 과일, 치아바타나 호밀빵, 오트밀, 땅콩버터 등으로 특별히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 시간도 절약되고 간편하고 무엇보다 먹다 보니 맛있었다.

한참 운동을 하고 오면 물도 맛있는데 뭔들 맛있지 않으랴.

그 덕에 건강한 근육질의 몸도 얻었고 각종 건강 위험군자 수치도 줄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배달음식과 무분별한 외식을 일삼는 친구들에게 '좋은 말씀'을 전하고 싶은 맘에 조언 혹은 잔소리를 늘어놓을 때가 있다. 

20-30대에게는 말해도 듣지도 않고, 무슨 얘긴지 와닿지도 않기에 입도 뻥끗 안 하지만 내 또래는 남일 같지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내 이런 애정과 관심이 가끔은 싸늘한 핀잔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일찍 죽을래. 너나 좋은 거 많이 먹고 오래 살아."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는 게 문제라고...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지, 죽으려고 먹는 건 아니지 않냐고...' 

아프지 않고 덤으로 감정까지 안정되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살기 위해...' 

내 입으로, 내 몸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자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여행에서 돌아온 최근 집밥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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