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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단 Sep 12. 2024

왜 때문에 우루루 크루?

#야 너두 할 수 있어_08

이전 글에서도 전한 바 있지만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계기는 사소하면서도 특별 혹은 특이한 것이었다.

간단히 다시 언급하자면 한참 운동에 빠져 있을 당시, 외딴섬에 고립되어 '할 수 있는 게 달리는 것뿐'이라서 얼결에 시작하게 됐을 뿐...

지금처럼 러닝이 유행도 아니었고 '펀러닝'이란 말도 들어본 바 없었을뿐더러 러닝화 품귀 현상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을 시절이었는데 그래봤자 고작 일 년 반 전이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유행에 민감하고 빠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하튼 그렇게 '사소하면서도 특별한 계기'로 우연히 달리기 시작하여 매력에 빠지게 되기까지의 이유 중의 하나가 '존버를 즐기기'였다.

아무리 운동을 좋아하는 헬스인, 소위 헬창들도 유산소라면 질색을 하고 간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유산소, 특히 달리기는 운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힘들고 지겨운'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달리기를 하다 보면 바로 이 '힘들고 지겨운' 것을 즐기게 되고 어느새 '힘들고 지겨운' 것이 괴로움이 아닌 하나의 사실, 거기서 더 나아가 놀이로 승화되는 시점이 온다.

그렇다고 뛰기 시작할 때부터 놀이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직도 뛰기 시작하여 어느 구간까지는 지겹고 힘들다. 가끔은 '그만 뛸까?'라는 유혹이 들 때도 있고 실제로 멈춰버리는 경우도 가끔 있다. 

하지만 그러한 고독 그리고 유혹, 잡념과 싸우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이겨냈을 때의 성취감 같은 감정이 바로 나를 계속 달리게 해주는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누군가와 같이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이 모든 과정은 오로지 나 혼자, 땅바닥에 닿는 내 발바닥과의 교류 만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삼삼 오오 혹은 열 명 이상의 러너들, 소위 크루들이 몰려 달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솔직히 그들을 볼 때마다 내심 무시하는 마음도 있었다.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혼자 뛰어야 제 맛이지!' 


그러던 올여름, 런던의 쾌적한 날씨는 달리기를 하기에 너무도 '뷰티풀' 하고 '판타스틱' 한 날들이었기에 서울로 돌아온 나는 금단 현상에 시달려야만 했다.

하필 역대급 무더위가 날 맞이하고 있었고 운동이 아니라 생존이 위협받는 듯한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더위를 핑계로 며칠을 꼼짝 않고 칩거하니 몸이 뒤틀리기 시작했고 이내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결국 비상벨이 울렸다. 

움직여! 뛰어! 


그렇게 나는 무기력과 우울증의 지옥문 코앞까지 갈 뻔하다 집 앞 짐(Gym)의 구원을 받아 다시 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웨이트를 하고 트레드밀에서라도 뜀박질을 하니 차츰 몸에 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달리다 보니 기계가 아닌 내 힘으로 땅을 밟고 서는 진짜 달리기가 그리워졌다. 

그때 우연히 당근에서 달리기 크루 모집을 보았고 이 살인적인 날씨에도 사람들이 모여 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날 바로 광화문 앞에서 경복궁 근처를 달리는 코스의 모임에 끼었다. 


밤의 광화문 - 이쁘니까 낙서금지

일단 '밤의 광화문'은 정말 예뼜고 동네가 아닌 시내에서 달리는 기분 또한 신선하고 특별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달린다는 것 역시 생각과는 달리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물론 함께 뛰는 사람들과 속도(페이스)와 코스를 맞춰야 한다는 제약이 있지만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이 하는 는 ' 순간의 에너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확실히 덜 힘들고 더 많이, 더 오래 달릴 수 있다. 

왜 그렇게 우루루 몰려다니며 달리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렇다고 항상 우루루 달리고 싶은 건 아니다. 

혼자 달릴 때의 '고독과 고통'은 역시나, 여전히 맛있다. 


'따로 또 같이' 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은 대부분 혼자 있으면 외로워 같이 있고 싶고, 같이 있으면 괴로워 혼자 있고 싶다. 

하지만 달리기처럼 인생도 즐길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달리면 혼자라 즐겁고, 함께 달리면 함께라 즐거운... 끝. 


함께 달려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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