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처음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이 머물던 향으로 남아 날 감쌌다.
해마다 겨울이 오기 전이면, 이곳에 오곤 했다. 낡은 간판과 비스듬한 나무 계단,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며 문 앞 풍경을 흔든다.
익선동 골목 깊숙한 곳에 숨은 작은 카페,
‘루블랑 84‘. 이름이 아직도 그대로다.
문을 밀고 들어서면 따뜻한 공기와 구운 사과 향, 커피 내음이 먼저 반긴다.
“안녕하세요. 오셨네요.”
익숙한 바리스타 사장님의 미소가 문가의 찬 바람을 잠재운다. 가볍게 고개 숙여 목례하고 늘 앉던 창가 자리로 향한다.
“똑같이 부탁드릴게요.”
그가 즐겨 마시던 따뜻한 블렌딩 핸드드립, 시나몬을 살짝 얹은 것.
그는 늘 말하곤 했다.
“이 커피는 누가 뭐라 해도 다가오는 겨울을 닮았어.
따뜻한데 쓸쓸하고, 조용한데 향이 오래 남아.”
그 말은 아직도 식지 않고 기억이란 사진첩 한켠을 천천히 데운다. 어느 가을. 마치 눈이 오기 직전의 고요처럼 그는 내 마음속에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남았다.
이맘때면 이 자리에 앉아 같은 커피를 주문했다.
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그의 온화한 웃음과 목소리가 잠시 되살아난다.
카운터 너머엔 그가 나를 바라보며 장난스레 적은 오래된 메모 한 장이 아직도 붙어 있다.
추운 날엔 시나몬.
네가 따뜻하면, 나도 그럴 것 같아서.
그 정갈한 글귀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말없이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오래 응시했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커피잔 속에는 이미 겨울이 가득했다.
그대는, 어디쯤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