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Erik Satie – Gymnopédie No.1
은사 댁에 들를 일이 있었다.
그분이 좋아하는 원두가 있어 가는 길에 잠시 커피를 사러 들렀다.
낯선 골목의 작은 카페 익선동 카페 ‘키이로‘.
창가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브라운 슈가 라테
라테 위로 흑설탕이 사르르 녹으며
오래된 오후의 그늘처럼 스며들었다.
말하지 못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맛.
커피가 나올 때까지 나는 잠시 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바깥을 바라보다가 문득 흘러나오는 음악에
심장이 잠깐 멈췄다.
그 곡이었다.
그와 함께 들었던
그날의 LP.
그날의 공기.
이곳은 전혀 다른 장소인데
공간은 바뀌었지만
음악은 기억을 정확히 데려왔다.
그 곡을 들으며
나는 커피를 천천히 마셨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한 잔.
괜히 웃음이 났다.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
이렇게 한 잔의 커피에 숨어있을 줄이야.
나는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텅 빈 잔, 식은 커피.
말 없는 그 장면 안에서,
나는 조용히 기억을 기다렸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감정이 남는다.
그 감정이 다 마를 때까지는,
커피를 더 시켜선 안 된다.
한참 후,
나는 조용히 일어났다.
포장해 둔 원두봉투를 가방에 넣으며
그 곡의 마지막 피아노 소리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