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에게 등신 쪼다라고 했다.

어느날 내 인생에 유방암이 들어왔다 6

by 이감

생각보다 수술 회복이 빨랐다. 10년 전에는 수술 후 열도 많이 나고 힘들어했었는데 이번에는 더 큰 수술이었음에도 몸이 힘들거나 처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서 퇴원이 하고 싶었다. 아이도 보고 싶었고, 병원에만 있으니 정말 병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담당 교수님께 가능한 한 빨리 퇴원을 시켜달라고 요청드렸다. 그래서 나는 5박 6일 만에 퇴원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도 빨리 입원하여 수술을 받고 싶었는데, 수술만 받으면 다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수술을 받고 나니 수술 결과가 어떨지 나를 또 괴롭혔다.


나는 왜 이모양인 걸까.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일까. 그래서 주변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사실 이런 생각까지는 당시 미치지도 못했다. 그저 결과가 너무 나쁘지 않기를 기도했다.


퇴원을 하고 친정집으로 가기 전에 일주일 만에 아이를 보러 집에 잠시 들렀다. 매일 영상통화를 해도 보고 싶은 아꼬운 내 딸이었다. 집에 가면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또 눈물이 맺혔다.


수술 후 약 2주 정도 친정집에 머물렀다. 아이가 있어 나의 집에서는 회복을 할 수 없었고, 집에 간다 한들 수술 직후의 그 몸으로 육아를 하는 것도 무리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은 정말 최상이었다. 아이가 아직 엄마를 찾지 않는 아기였고, 남편이 아이를 온전히 봐줄 수 있었고, 나는 엄마의 케어 아래 회복만 하면 되었다. 말로는 정말 감사하다, 얼마나 감사한지… 이야기했지만 진짜 마음속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한 나였다.

엄마한테 힘들고 무섭다고 했다. 엄마는 아이가 보고 싶냐고 물었다.


응, 그런데 내 병이 더 무서워. 엄마 혹시 나 죽진 않겠지?


엄마는 나에게 등신 쪼다라고 했다.


사실이었다.

당시의 나는 내 병만 생각했다. 심지어 그 병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는 법도 잊었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었다.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외래날까지의 일주일이 정말 시간이 더디게 갔다.

불면의 밤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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