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 먹혔다

어느날 내 인생에 유방암이 들어왔다 5

by 이감

나의 귀인 그녀와의 시간은 채 48시간도 되지 않았다. 내가 입원하고 그녀는 이틀 후에 퇴원을 했다. 그 48시간 동안 우린 서로의 가슴을 깐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엄마 또래의 환자분이 바로 들어오셨다.


관심이 없는 척했지만 사실은 그분의 사연도 궁금하였다. 커튼 밖으로 들리는 소리를 들으니 검사를 위해 입원하신 듯했고, 보호자인 남편분과 사이가 매우 좋아 보였다.


엄마가 나 대신 먼저 말을 걸었다.


"저기요, 제가 없을 때 혹시 식사가 나오면 저희 아이 식판 좀 대신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이가 수술을 해서 식판을 들 수가 없네요"


옆 베드의 환자분(이제부터 어머니라고 부르겠음)은 기꺼이 그러노라고 하셨다. 안 계신 동안 따님을 내가 잘 보살필테니 집에 다녀오셔도 된다고.


이후로 어머니는 나를 무심하게 챙겨주셨다. 기다리던 수술을 받고 나서도 나는 꽤 우울하고 기운이 없었는데 가끔씩 나에게 먼저 말도 걸어주시고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먼저 말씀해 주셨다. 덕분에 나도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이야기를 하면 그냥 조금 해소가 됐다.


사실 이 당시만 해도 가족 말고는 아무도 나의 수술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어딘가 말할 창구가 필요하기도 했던 것 같다. 관심은 없으셨겠지만 5개월이 된 딸아이 사진도 보여드리며 자랑하였다.


어머니와 나는 아침마다 1층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사서 병원 공원 한 바퀴를 산책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꼭 먼저 들어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에게 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시려 했던 것 같다.


병실 소등을 하고 잠이 오지 않으면 항상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로 가는 길에는 유방암 완치자의 수기가 걸려 있었는데 오가는 길에 매번 읽으면서 별거 아닌 거라고 자기 암시를 걸었다.


휴게실 소파에 앉아 창밖에 불빛을 바라보며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했다. 남편에게 갖고 있던 불만들, 15년째 지속된 회사가기싫어증이 너무 쪽팔렸다. 그저 아무 일 없이 두 발로 회사를 갈 수 있다는 것, 내 자리가 있다는 것, 지지고 볶을 수 있는 남편이 내 옆에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일인지 가슴 한쪽을 내어주고서야 알게 되었다.


가슴 한쪽만 내어주면 됐으니 싸게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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