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정희 Oct 18. 2022

우리의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반도체 재료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관련 물질을 가장 먼저 상용화하고 있던 인텔에 엔지니어로 들어갔다. 나의 첫 직장이었다.


그 때는 아이폰이 세상에 나온 지 일 년 밖에 되지 않아 스마트폰을 둘러싼 생태계가 아직 태동기에 있던 시기였다. 시장이 가까이 접하는 스마트한 IT 기기는 사실상 PC 뿐이었던 시대에, 인텔은 CPU 시장에서 경쟁자들보다 기술적으로 2-3년은 족히 앞서 있었다. 그런 상황 아래에서 PC와 서버 제조사들은 인텔이 언제 어떤 성능의 칩을 내어 놓을런지 로드맵을 공유 받고서야 그를 토대로 상품 기획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윈텔’ 시대로 묘사되던 전성기 동안 인텔은 부품 공급사 입장임에도 시장에서 큰 ‘갑’으로 행동했다. 반면 제조사들은 뇌(=CPU)는 인텔에 그리고 영혼(=OS)은 마이크로소프트에 휘둘리는 가운데,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소비자들에게 선택받기 위해 품질 좋고 디자인 좋은 그러면서도 가성비도 훌륭한 PC를 제조해야 하는 피말리는 긴장 속에 있었다. 그들은 시장 점유를 위해 싸우면서 어떻게든 이익률을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하는 힘겨운 ‘을’이었다.


본인들이 개발한 칩을 둘러싼 시장의 이러한 입장을 이미 오랫동안 경험한 인텔 엔지니어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박사 과정 시절 학회에서 만나는 인텔 사람들은 본인들 연구에 대해서는 극비 사항이라며 말을 아끼면서 다른 이들의 연구결과에 대해서는 집요하고도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는 등 다소 뻣뻣한 태도를 보인다는 평을 받았는데, 사실 그것은 다소 간의 질시가 섞인 시각이긴 했다. 그런 회사에, 아직 순진하기 짝이 없던 내가 첫 직장이라며 다니기 시작했던 거다(사실, 그런 콧대 높은 회사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긴 했다).


당시 인텔의 직원 배지 뒷면에는 회사가 강조하는 ‘Culture’ 요소 너 댓 가지가 쓰여 있었다. 그 중에 아주 역설적이라 처음부터 눈에 강렬히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Constructive Confrontation”


이 표현을 보는 순간 단어들의 조합이 참 이상해 보였던 나머지 사전을 뒤적였던 기억이 있다. 참고로 오늘날 사전에서 말하는 각 단어의 정의를 그대로 옮겨보자면 이런 정도의 뜻이다:

Constructive adj. “helping to develop or improve something; helpful to someone instead of upsetting and negative” (어떤 것을 발전시키는 것에 도움을 주는; 누군가를 화나게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들게 하는 대신 도움이 되는)

Confrontation n. “a situation in which people, groups, etc., fight, oppose, or challenge each other in an angry way” (사람 또는 단체 들 간에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싸우고, 반대하며, 도전하는 상황)


인텔은 뜻 자체가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한 데 모아 그들의 core culture라고 명명했다. 역사를 찾아보니 결과에 집중하고 문제 해결의 효율성을 강조한 창업자 Andy Grove의 영향이었다고 하는데, 내가 입사했던 시기의 인텔에도 그의 정신이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었고, 직원들은 이러한 역설적 언어가 본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에 매우 주효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것을 긴 문장으로 굳이 해석해 보자면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미팅에 모두가 모여서 논의하다가 헛점을 발견했을 때 그 아이디어를 가져오느라 밤을 샌 사람을 배려하고 말을 고르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바로 지적하기. 애써 제시한 문제풀이 방식에 대해 너 자신이 공격을 받을 때에 네가 옳다는 확신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바로 맞서기. 갈등을 피하느라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루지 말고 미팅룸 안에서 끝까지 맞서 싸워(confront)우는 것. 우리는 문제를 공격하는 것이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 매월, 매 분기마다 목표하는 개발 단계를 달성하기 위해 숨도 못 쉬도록 돌아가는 R&D 사이트에서 그 문구는 험악하게 목소리 높이는 상황을 오히려 두둔하는 제도적 장치 정도로 느껴질 만했고, 나는 그러한 환경을 감정적으로 무척 힘겹다고 느꼈다. 지금은 필요에 의해(생존을 하려다 보니 나의 삶의 필요에 의해) 전투력을(때로는 지나쳐서 반성해야 할 정도로) 장착하게 된 40대 중년이지만, 그 때의 나는, 남들이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 언성을 높이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기만 해도 내가 다 불편해지는 마음을 지닌, 아직 내가 가지고 태어난 기질에 기반하여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 많은 박사 인력들이 모여 손바닥보다 작은 CPU 제품군을 만들어 보겠다고 그토록 핏대를 올려 맞서 싸우는 자리들이 마음 편할 리가 없었다.


한 편, 당시 Intel 미팅에서의 유행어 또는 회사 집단 내 특수어 중 하나가 “Who is the owner?” 또는 “Who owns this problem?” 이었다. 일상적 개발 과정 중에서도 무엇인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면 미팅 중간에 "Who owns this problem"이라는 외침 끝에 갑작스런 TF가 만들어지고 해당 TF의 ‘오너(owner)’가 정해졌는데, 누가 오너가 되는지는 지위/경력연수 상관이 없었다. 신참 엔지니어도, 그 문제를 최초로 발견해 보고했다는 이유로 오너가 되면 문제풀이 과정 설계와 보고를 책임져야만 한다(=owns the problem). 이렇게 되면 해당 문제 때문에 같은 TF에 휩쓸려 들어온 10년차 엔지니어에게도 거리낌 없이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이 결과를 언제까지 달라, 무엇은 하지 말아라 해야만 했다. ‘경력 없는 신입 엔지니어가 내게 일을 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일단 모두에게 시간이 항상 없었고, 정해진 기한 하에 목표하는 곳에 도달하려면 문제를 발견한 사람과 문제를 풀 도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모여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만 있었다.


이러한 환경 아래 놓여 있던 당시 개발팀은 설계/ 프로세스 인테그레이션/ 장비/ 수율/ Quality&Reliability (신뢰성) 등의 기능 별로 모인 그룹 아래 8-10명의 엔지니어가 일종의 전문가 팀을 이루어서, 프로젝트(요즘 신문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3nm, 5nm 등의 단위. 당시는 32nm 양산화와 22nm 초기 개발이 동시에 돌아가던 시기였다) 별로 담당자를 배정하여 해당 프로젝트의 수명인 2년 기간 동안 엔지니어 각자가 본인의 기능적 임무를 책임지도록 했다.

한 리더 아래 대부분의 인력은 박사 출신 엔지니어였고 그룹의 필요와 규모에 따라 한두 명의 테크니션(기술자 혹은 기사 등으로 번역 될 것이다)이 그룹원으로 함께 일하는 구조였다. 개발에 필요한 공정 또는 실험을 설계하는 의사결정은 엔지니어의 몫이지만 그렇게 설계된 공정 개발 과정에서 사람의 개입이 반복적으로 필요한 작업은 테크니션의 손을 타게 마련이었는데, 그들의 숙달된 손과 엔지니어들의 까다로운 니즈를 파악할 줄 아는 센스는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었다. 앞서 말했듯 그냥 흘러가도 시간이 모자라는 개발 주기 가운데 TF 한복판에라도 떨어지게 되면 센스 있는 테크니션의 손은 더 귀중했다.


그러다보니 선배 엔지니어들이 나와 같은 신참 엔지니어에게 테크니션을 소개하거나 함께 섞여 일을 할 때마다, 엔지니어들이 그들에게 표하던 존중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테스트칩 그려 넣는 일을 처음 하는 것이면 A에게 가서 배워, 그가 전문가야. 그 테스트 장비에서 나오는 데이터가 영 이상하면 B에게 가 봐, 그가 이전 세대 장비까지 붙들고 씨름했던 터라 그만큼 아는 사람이 없지. C는 원래 테크니션이었지만 일을 잘해서 얼마얼마 만에 엔지니어로 승진했어, 왠만한 엔지니어보다 더 훌륭하다구.

거기엔, 나는 박사이고 그들은 기술자야 라는 오만함은 없었다. 오랜 시간을 들이며 애써 축적한 기술적 감각이라는 무형자산에 대한 순전한 존중으로 보였다. 본인을 존중해주는 젊은 엔지니어들의 리드를 테크니션 아저씨(퇴역 군인 출신의 나이가 지긋한 분들의 비율이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들 역시 존중했고, 그들은 그렇게 상생했다.


전투력이 오를 대로 올라 있는 엔지니어들 틈에서 어떻게든 몇 달을 버텨 회사 안에 녹아 있는 그러한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할 정도의 여유가 생기니, 그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명제를 하나 발견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는 명제였다. 그들에겐 인텔이 하는 것이 ‘몇천 명의 박사가 모여 손바닥 보다 작은 물건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세상에 없이 성능이 훌륭한 칩을 만드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문제가 발견되면 그렇게 핏대를 올리기도 하고, 그 일을 오래도록 견뎌온(또한 견뎌왔기 때문에 지식을 오래 축적한) 사람을 존중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모바일과 AI의 세상이 고개를 들면서 반도체 업계가 여러 모로 재편되어 인텔이 유일한 강자로 군림하던 시대는 끝이 났지만 그러한 강력하고도 순수한 명제를 가지고 사는 이들 틈에서 일하는 경험을 안겨 준 인텔에 지금도 나는 고마워하고 있다.


그 후로, 자부심으로 일하는 이들의 에너지가 멋있다는 약간의 착시 같은 걸 가지고 살았다. 외모 때문이 아닌, 본인들의 일이 중요한 것이라고 가치를 둘 때 멋있어 보이는 착시.

지금도 누군가와 이야기 나눌 때 왜 그 사람의 이야기가 내 안에 존중감을 일으키는지를 해석해 보면 결국 이 관점으로 돌아온다. 자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삶의 자세. 그것이 중요한 일이라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멋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