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심어 놓은 단어 #7: 반쯤 열린 커튼

우울한 마음을 이겨내기 어려울 때

by Better Me 김진세

위로를 심어 놓은 단어: 반쯤 열린 커튼

우울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마음은 암막 커튼이 쳐져있는 어두운 방과 같습니다. 스스로와 세상에 대해 회의와 불신 가득한 마음으로 버겁게 살아갑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무엇인가 회복하기 위해선 그 커튼을 먼저 걷어야 합니다. 반쯤만이라도 걷을 수 있다면 빛이 듭니다. 그럼 적어도 희망은 있는 겁니다.



우울한 그림

이런 그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좁은 방입니다. 짙은 커튼이 쳐있습니다. 어둡습니다. 책상 위는 이것저것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습니다. 구겨진 종이에 낙서가 눈에 들어옵니다. 볼펜으로 무엇인가를 거칠게 지운 듯 흔적입니다.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먹다 남은 식빵 조각은 이미 딱딱해졌습니다. 방바닥엔 여기저기 벗어놓은 옷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반틈 열린 옷장으로는 계절에 맞지 않는 옷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걸려있는 거울은 닦은 적이 없는 듯 뿌옇습니다. 침대 위 시트는 빛이 바랬습니다. 배게 위에는 얼룩 자국이 짙습니다. 침대엔 누군가 누웠던 흔적만 있습니다. 방 한편 구석에 누군가 쪼그려 앉아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초점이 없이 멍한 눈빛입니다.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듯 무표정합니다. 그 사람의 입술도 방문도 굳게 닫혀있습니다. 그렇게 오가는 소리도, 오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그림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아마 처음 떠오르는 단어는 '우울하다' 일 것입니다. 그런 그림 속 인물들이 상담소를 찾아옵니다. 때론 스스로 찾아오기가 힘든 탓에 친구나 가족이 데려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엽니다. "선생님, 저 너무 우울해요. 좋아질 수 있을까요?" 상담자는 이제 치료의 걸음을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아니 내담자는 무엇부터 하길 원하고 있을까요?



우울 진단

우울증은 잘 알려져 있는 정신 질환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림들은 자해나 자살을 생각하는 아주 심각한 상태만 우울진단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질환을 진단하는 기준들이 있습니다.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발간한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_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을 주로 사용합니다. 여기에 보면 우울함과 관련되어 있는 정신질환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주요 우울장애_major depressive disorder라는 진단명은 우리가 가장 흔히 말하는 우울증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을 하면 우울감, 즐거움 상실, 체중변화, 수면 장애, 초초함, 피로감, 죄책감, 집중 감소, 죽음에 대한 생각 및 시도 중에서 5가지 이상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될 때에 이 진단을 받습니다. 우울감과 흥미 감소는 꼭 포함이 되어야 하고요. 그리고 삶을 지속하는데 불편함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또 다른 질환으로는 지속성 우울 장애_persistent depressive disorder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요 우울장애보다 증상이 덜 심각합니다. 식욕 부진이나 과식, 불면이나 과다수면, 피로감, 집중력 감소, 절망감 중에서 2가지 이상의 증상을 가지고 있으면 이 진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단,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우울함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자해나 자살 생각 등 심각한 증상이 없었다고 괜찮게 여기면 안 됩니다. 단순한 우울감이라도 하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며 그토록 긴 시간 자신을 힘들게 했다면, 이를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거나, 전문 상담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강제 수영 실험

항우울제를 만드는 회사들에서 그동안 많이 했던 실험이 있습니다. 강제 수영 실험_forced swim test이라는 것입니다. 쥐와 같이 작은 동물들을 발이 닿지 않는 수조에 넣어서 소위 강제 수영을 시킵니다. 그리곤 활동성이 줄어드는 시간을 비교하는 실험입니다. 항우울제 약물이나 다른 물질들을 쥐에게 주사한 후에 그 결과를 기록합니다. 그리곤 아무 약물도 넣지 않은 쥐의 결과와 비교를 합니다. 물론,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엄격한 규정 아래에 실험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실험 결과가 인간에게 적용할 항우울제의 효과를 입증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논란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최근에 몇몇 제약사들은 이 실험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실험의 핵심 전제는 쥐와 같이 작은 동물들이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을 겪으며, 상황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이 되면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그 포기가 이뤄진 순간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모든 신체적 활동을 멈추게 됩니다. 그리곤 중심을 잡는 작은 발짓을 제외하곤 발버둥 치는 것을 멈춥니다.


움직임을 멈추게 되는 순간

우울증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리고 나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울함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 감정은 몇 톤의 무게로 사람을 무기력과 절망과 죄책감의 늪 속으로 끌어내립니다. 그리곤 모든 희망을 다 흡수해버립니다. 그와 함께 모든 활동을 멈추게 됩니다. 감정도, 생각도, 관계도, 활동도 다 그 자리에 내려앉습니다. 우울증이 더 잔인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 그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 주변 사람들은 날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한다는 것, 그리고 의사나 정신 건강 전문가조차도 성격 탓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너무 슬프게도 혼잣말을 하게 됩니다: "그럼 이 지겨운 우울증도 내 책임이라는 건가 보네..."


이 우울함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봅니다. 유튜브에서 의사들의 설명을 듣기도 하고, 우울증을 극복한 사람들의 공감 어린 이야기를 듣습니다. 블로그나, 병원 홈페이지 등에서 제공하는 우울증 관련 정보를 얻어 삶에 적용해봅니다. 이런저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혼자 극복하기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많이 힘든 경우는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같이 병행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럴 사정이 되지 않는 분들도 많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의 여정에 사용할 수 있는 지도 위 작은 목적지를 하나 드립니다. 도달해야 하는 작은 목적지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조차도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나가야 합니다. 적어도 어두운 방 안에 조금의 빛을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두운 커튼을 걷어내기

그 작은 목적지에 "어두운 커튼을 걷어내기"라고 이름을 붙여보겠습니다. 어두운 커튼은 거짓 자아_pseudo self라고 불리는 자신에게 씌워진 거짓된 껍데기들입니다. 그리고 걷어낸다는 것은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하겠죠. 크게는 두 가지 거짓된 껍데기가 있습니다.

먼저는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을 위해 내가 몸부림쳐서 만들어 놓은 나입니다. 얼마나 많은 순간 우리는 타인들이 기대하는 모습이 되고자 애썼는지 모릅니다. 그 기대를 충족해야 착한 아이, 사랑받는 아내, 좋은 친구, 그리고 인기 있는 사람이 될 거라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기대는 너무 높고 많은 반면 내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힘을 다해 꾸며왔던 내 외부의 자아는 어느 순간 너무 큰 부담을 짊어집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거짓이라는 것을 아는 나는 두 괴리된 자아로 인해 고통받습니다. 우울감이 찾아옵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찾아 걷어내야겠죠.

그리고 또 다른 거짓된 껍데기는 외부에서 정의한 나입니다. "너는 못된 애야." "너는 잘하는 게 없어." "너는 못생겼어." "너는 이기적이야." "너는 집요해." "너는 늘 뭔가가 부족해." "넌 네 아빠를 닮아서 그래." "누가 널 좋아하겠어." "넌 실력이 없어." "너는 귀가 얇아." "넌 성격이 틀려먹었어." 편협하고 왜곡된 메시지입니다. 중요한 타자로부터 이런 거짓 정보들이 너무 어린 시절부터 그리고 너무 지속적으로 우리의 뇌에 새겨졌습니다. 내 하얀 도화지에 빨간 크레파스로, 검은 볼펜으로 누군가 선을 찍찍 그어놓은 것입니다. 지우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이 믿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우려고 시도했던 사람들도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그 자국은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그림 자국을 안고 살아가니 다른 그림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우울감이 찾아옵니다.


이런 어둡고 두꺼운 커튼을 걷어내야 내 방안에 빛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선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저 자국 난 스케치북 때문에 생긴 머릿속에 삐뚤게 굳어져 있는 생각의 틀 들을 부숴야 합니다. "감정을 드러내면 약해 보인다", "나를 돌보는 것은 이기적이다", "누구에게도 나쁘게 보이면 안 된다",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한다", "내 마음을 보이면 떠나갈 거다", "난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 "약점을 보이면 이용당한다", "진심을 말하면 그걸 무기 삼아 나를 공격할 거다." 정말 그런 걸까요? 모두 그런 걸까요? 언제나 그런 걸까요? 어느 장소에서나 그런 걸까요? 생각을 못해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질문들과 함께 왜곡된 틀 들을 꼼꼼하게 깨는 작업을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장애물을 제거하듯 하나씩 하나씩 찾아보기 바랍니다. 혼자 깨어내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상담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나중에 좋은 방법들을 더 소개할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삐뚤어진 생각의 틀을 제거하고 나면 이제 비로소 거짓 껍데기 속 부서질 듯 약한 나를 마주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거짓 자아를 뚫고 들어가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간단한 방법으로는 "진짜", "참된", "믿을만한", "진정한" 등의 단어와 친해지기가 있습니다. 영어로는 authentic이 적절할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주차장이나, 파도가 크게 치는 바다에 가서, "나도 사실 _____ 다고!" 큰 소리로 목이 터져라 한번 외쳐보면 좋을 그런 말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래와 같이 말할 수 있겠죠.

Authentic emotion 진짜 내 감정: "나도 사실 너무 불안하다고!"

Authentic identity 진짜 내 정체성: "나도 사실은 꿈이 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Authentic desire 진짜 내 욕구: "나도 사실 너무 사랑받고 싶다고!"

저 빈칸에 들어갈 나만의 말들을 한번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조용한 장소에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 나를 마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곤 정말 소리 지를 수 있는 공간에 가서 한번 크게 소리쳐봐도 좋습니다. 어디를 가는 것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선 이불이라도 뒤집어쓰고 소리라도 고래고래 지르면 속이 좀 시원해질 겁니다. 그것도 안된다면 일기장에 적어보는 것이라도 시작해야겠죠. 이런 과정을 통해 내 속에 숨겨둔 진짜 자아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곤 그렇게 꾹꾹 눌러 놓았던 나를 좀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 어두운 방에 일단 커튼을 걷을 수 있습니다. 그럼 빛이 들어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빛이 들기 시작하면 책상 위도, 이불 위도, 옷장 속도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 작업은 다음에 나눌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단 커튼을 여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합시다. 그렇게 천천히 하나씩 해나갈 수 있습니다. 꼭 기억하세요. 진정한 것을 상실하거나 외면하면, 만들어진 것이 덮게 됩니다.



반쯤 열린 커튼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것은 계단을 오르는 작업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과제 하나를 했다고 상태가 쑥쑥 좋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모자이크를 완성하듯 돌봄을 시작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한 번에 아주 조금씩 해야 하고, 또 그것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그 작은 시작을 나눠보았습니다. 커튼을 열려면 쭈그려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이건 용기도 의지도 동기도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냥 이를 악물고 일어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억지로 일어나 커튼을 반쯤이라도 열면 됩니다. 일단 열면 어둡던 내 마음이 지금보다 밝아질 것입니다. 그 모아진 조금의 빛과 함께 어두운 우울감도 천천히 사라질 것입니다. 빛과 어두움은 한 공간에 공존할 수 없으니까요. "산책하세요", "햇볕을 쬐세요", "음식을 잘 드세요"에 지치신 분들께 이 커튼 열기가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심각한 우울증은 정신과 의사와 면담을 통해 꼭 약물치료를 병행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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