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심어 놓은 단어 #2: 종전선언

전쟁 같았던 삶에서 평안을 얻고 싶을 때

by Better Me 김진세

위로를 심어 놓은 단어: 종전선언

휴전이나 정전과는 달리 전쟁이 완전히 종료되었음을 밝히는 의지적, 합의적 발표입니다. 전쟁과 같은 힘든 삶을 살아온 분들에게도 종전선언이 가능합니다. 이 선언 후에야 비로소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생존 전쟁

상담소에서 내담자 분들을 만나다 보면 인생은 전쟁터와 같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전쟁터라는 단어는 단순히 어떤 문제 한 두 개를 겪고 살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안타깝게도 그 삶 전체가 문제와 고통으로 덮여왔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내담자 분들은 총탄이 쉼 없이 날아오듯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살았던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하나의 문제가 끝나기도 전에 또 찾아온 더 큰 문제들 앞에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과거의 이야기는 상담자의 가슴을 내려앉게 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을 버텨내야 했고, 아이들을 홀로 키워야만 했었으며, 때론 폭언과 폭력의 두려움 앞에 떨었어야 했습니다. 부모의 무관심과 무시, 편애를 겪으며 심긴 부당함은 세상을 향한 분노로 자리 잡아 일생을 괴롭혔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려고, 주먹을 움켜쥐고 강한 사람처럼 자존심을 세우고 경계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한껏 올린 가드 뒤에서 누가 자신에게 상처를 줄지 두려워하며 경계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런 삶을 생존 전쟁이라 표현합니다. 삶의 의미와 행복을 잊은 채, 살아져서 사는 삶, 혹은 살아남아야 하니 사는 삶입니다.


내 편은 한 명도 없었어요


전쟁의 흔적들

삶 속에서 행복을 누리려면 꼭 필요한 정서가 있습니다. 바로 안전감과 안정감입니다. 전쟁터에서는 이런 감정을 가질 수 없습니다. 늘 위기에 맞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극도의 긴장 가득한 전시 상황을 경험한 군인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4년 미국 트라우마 스트레스 저널(Journal of Trauma and Stress)에 당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를 하고 있거나, 전역한 군인들 6만여 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가 실렸습니다. 그 결과 전쟁터에서 돌아온 15.7%가 이 장애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전역한 군인들 중에서도 해병이 20.6%로 가장 많이 이 정신장애를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더 험한 작전을 많이 수행했던 탓일 수도 있겠지요. 전쟁터에서 돌아온 후에 삶에는 아무런 위기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와 정신이 전쟁 상황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삶의 생존 전쟁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도 그 전쟁의 흔적들을 오롯이 안고 살아갑니다. 이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피해의식입니다. 생존의 전쟁터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부당함입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상처를 주는 사람도, 이 세상도 다 부당하게 느껴집니다. 그 부당함은 자연스럽게 분노로 이어집니다. 상처를 주는 특정 인물에 대한 분노와 특정 사건에 대한 분노입니다. 이렇게 쌓여가는 분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특정 다수 곧 세상을 향한 분노로 확장됩니다. 그 미움 가득한 세상 속에서 자신은 "늘" 상처 받고, "언제나" 손해를 봤고, "항상" 당했으며,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고, "한 명도" 내 편이 없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이런 생각을 우리는 피해의식이라고 부릅니다. 이 피해의식은 "네가 어떻게 감히 나에게"라는 민감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냅니다. 이 가이드라인을 넘어서는 순간 또 분노하게 됩니다.


둘째, 삶에 대한 버거움입니다. 생존 전쟁터에서 상처 경험이 반복되면, 언제든 또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자리하게 됩니다. 그 불안은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만들어 냅니다. 경계심이 생기면 방어를 하게 되겠죠.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것은 너무 많습니다. 타인들에겐 가족을 보호해야 하고, 가족 안에선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을 더 보호해야 하고, 그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는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때문에 신체적, 정신적 가드를 한껏 올리고 하루를 정신없이 보냅니다. 스스로를 예민하게 방어하는 것은 몸에 배어 있어서, 현재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보호는 통제의 모양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쉼 없이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해", "절대 이렇게 하면 안 돼"를 자신과 타인에게 적용합니다. 그러니 하루가 마무리되는 저녁 시간이 되면 남는 힘이 없이 녹초가 됩니다. 그리곤 '사는 게 참 힘들다..'라고 신세 한탄을 하게 됩니다.


셋째, 타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입니다. 많은 상처는 타인을 향한 믿음이 자랄 수 있는 기반을 무너뜨립니다. 그 상처가 부모에게 왔다면 더 심각합니다. 부모는 안전 기지와 피난처의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안전 기지를 통해 세상을 더 멀리 경험할 수 있습니다. 피난처를 통해서는 상처를 입었을 때 돌아와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두 역할이 결여된 부모를 경험하면 큰 상처가 남습니다. 이것을 원상처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이 상처가 다른 상처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애착이 결여된 양육을 경험하면, 청소년기 성인기를 보내며 안정감 있는 관계를 맺기가 어렵습니다. 관계 안에서 또 다른 상처를 경험하기 쉽습니다. 나중엔 사람들을 경계하며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저런 것들”이라는 표현으로, 사람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심한 욕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을 신뢰하는 일은 너무 어려워서 심하게 매달리거나 아예 멀리해야 합니다.


넷째, 경직된 바운더리입니다. 전쟁에선 편이 중요합니다. 아군과 동맹군이 생존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상처를 겪으며 지내온 사람들은 편에 대해 몹시 예민합니다. 내 편인 사람에겐 무한히 내어주기도 합니다. 반면에 내 편이 아닌 사람들에겐 지나치게 냉담합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은 내 편인 사람들도 나를 건드리는 순간 쉽게 적군이 되어 버립니다. 친구 관계에서도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되지 않으면 바로 관계를 끊어낼 수 있습니다. 이는 가족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에게 누구의 편인지 따져 묻습니다. 배우자에겐 자신의 편인지 자식 혹은 부모의 편인지 늘 확인합니다. 자신의 편이 아니라고 느껴지면 심하게 다투거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은 외로움의 자리에 들어갑니다.


다섯째, 행복감의 부재입니다. 전쟁터에서는 임무 수행과 생존이 중요합니다. 의미를 추구하거나 행복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인생을 전쟁으로 생각해 온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존을 위해서 살아왔기 때문에 늘 삶이 위기라고 말합니다. 마치 세상이 내일이라도 망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막연하게 미래를 대비합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사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여행을 가도 돈 걱정하느라, 스케줄 신경 쓰느라, 혼자만 재미가 없습니다. 취미 생활도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남에게 선물을 하는 것도 불편하고, 받는 것도 즐겁지 않습니다. 본인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도 필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편안하고 조용한 것도 어색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제외한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수동적 분노(삐지기, 기분 망쳐 놓기)를 표출합니다. 주변 사람은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불편해하며, 자꾸 거리를 둡니다.


종전 선언

이렇듯 생존 전쟁을 치르다 상담소를 찾아온 내담자에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어떤 상담자들은 "인생이 왜 전쟁이라고 생각하세요? 행복했던 순간들을 한번 찾아볼까요?"라고 이야기합니다. 삶 속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내담자들은 이런 이야기에 불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말은 결국 '전쟁이라고 생각한 당신이 틀렸다'라고 지적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전쟁의 상처와 그 흔적에 관심을 보이며 공감하며 경청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 과정 속에서 쉼 없이 "진짜 전쟁이었네요", "정말 아프셨네요", "너무 오랜 시간 외로우셨네요", "정말 한 명도 편이 없었네요"라는 마음을 읽어드리는 언어를 전합니다. 그리곤 내담자와 신뢰 관계가 잘 형성되었을 때 이런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 전쟁이 끝났네요. 종전 선언을 하기로 해요." 별것 아닌 듯 하지만, 이 종전 선언을 통해 내담자는 과거에 머물며 살던 것을 멈추고, 오늘이 주는 의미를 탐색하길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 아니라 이제 전쟁이 끝났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노트를 펴고 "이제 전쟁은 끝났어"라고 적어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에만 멈춰서는 안 됩니다. 아직 나의 몸과 마음은 전쟁터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런 활동들을 같이 이어가면 좋습니다.

과거의 문제와 현재의 문제를 비교하기: 과거에 본인이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문제들을 노트 왼 편에 적어보고, 오른편에는 지금 현재의 삶에서의 문제를 적어봅니다. 그리고 그 둘을 비교해 봅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현재의 문제가 어떻게 과거의 문제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 등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문제가 과거의 것과 비슷한 경우 혹은 많이 연결이 되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내가 아직 생존 전쟁에서 부정적 영향을 많이 받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게 됩니다. 이러한 탐색 훈련을 통해 현실의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변화를 향한 작은 동기를 마련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없었고, 지금은 있는 것들 생각하기: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면 예전에 소유하지 못했던 것들을 가지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힘이 될 수도 있고, 은행 잔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학위나 이룬 가정, 직장 등 유형의 성취, 그리고 성숙함, 용기 등의 무형의 성취도 가능합니다.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여유 있는 시간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읽고 쌓아둔 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긍정의 영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스스가 대견하게 여겨질 수도 있고, 또 생각보다는 위기가 아닌 현실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이것이 삶에 대한 희망으로 그리고 감사로 이어집니다.


남의 허락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실행해보기: 생존 전쟁을 치르면서 자아와 관련된 모든 힘을 주변에 빼앗겨 버린 경우가 있습니다. 화나는 것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다른 사람들 때문입니다. 감정을 결정하고 조절하는 힘을 타인이 가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감정 만이 아닙니다.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도 다른 사람의 인정과 평가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또한 소소한 결정들도 다른 사람들이 신경이 쓰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이 사실 그 사람들의 허락이 필요한 일은 아닙니다. 감정도, 생각도, 자신의 이미지도, 작은 결정들도, 스스로를 돌보는 일도 다 나의 것들입니다. 작은 리스트를 만들어 보면 좋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씩 실행하고 지워나가 봅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내 삶의 힘을 타인으로부터 되찾아 오는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긍정 감정을 경험하고 감정 스티커 붙이기: 불안이나 위기와 반대되는 감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따뜻함, 안전함, 편안함과 같은 긍정 감정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일을 하면 좋습니다. 그리곤 그 뒤에 그 감정을 정의하는 스티커를 붙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그동안 받은 편지나 카드들을 읽어보고, "나를 이렇게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지.. 참 다행이야"라고 말을 덧붙입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 참았다가 내뱉습니다. 그리곤 "편안하다"라고 감정을 붙입니다. 자는 아이 옆에 누워 아이를 꼭 껴안습니다. 아이의 체온과 호흡을 느끼며, "사랑한다"라고 말해봅니다. 아침 창문을 열면 코끝에 시원한 공기가 느껴집니다. 이때 "상쾌하다"라고 감정 스티커를 붙입니다. 이렇게 경험하는 긍정 감정에 스티커를 붙여나가다 보면, 얻는 효과가 참 많습니다.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종류도 많아집니다. 지나가 버리던 장면을 붙잡고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면서 그런 감정을 느끼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의 낯선 모습이 점점 익숙해질 것입니다.



아직 가능한 것들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를 돌아보며, 일련의 가정들을 이어나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지 않았었더라면", "나도 공평하게 사랑을 받았었더라면", "재정적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면", "이런 폭력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누가 내 마음을 이해해줬었더라면", "한 사람이라도 괜찮다고 말해줬더라면", "서로 때리며 폭언을 퍼붓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너무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도 잠시 뒤엔 후회할 과거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다른 방향으로 걸어봅시다. 그렇듯 치열한 삶에서 포기하지 않고 버텨낸 자신에게 위로와 칭찬의 언어를 전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습니다. 그리곤 주먹을 움켜쥐고 추켜올려 경계하고 있는 팔을 내리며 "그래, 이제 전쟁이 끝났어. 나는 위험하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내린 손으로 종전 선언 위에 얹을 아직 가능한 것들을 적어보기 바랍니다. 그 긴 인내의 시간이 충분히 보상을 받을 만큼 행복해야 합니다. 때론 행복에도 사명감이 필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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