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 대해 생각하세요

by Better Me 김진세

[오늘의 말씀]


열왕기하 20:1-11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4 이사야가 아직 성읍 가운데 뜰에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6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한 뭉치를 가져오라 하니 그들이 가져다가 왕의 종기에 붙이매 나으니라 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9 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이루실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있을 징조이니이다 해 그림자가 십 도를 나아갈까요 혹 십 도를 물러갈까요 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해 그림자가 십 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 하지 아니하고 십 도를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 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아뢰매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 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오늘의 이야기]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유다의 선한 왕 히스기야의 이야기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신실하게 살았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갑자기 죽을 병이 찾아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와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냉혹했습니다.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사형 선고와 같은 말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돌리고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15년의 수명을 더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히스기야는 단순히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낫게 하실 징조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는 표징을 원했습니다. 희망을 붙잡을 수 있는 구체적인 신호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놀라운 표징을 보이십니다. 해 그림자를 10도 뒤로 물러가게 하신 것입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기적이었습니다.

우울감이 찾아올 때 나타나는 가장 고통스러운 증상 중 하나는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인지적 삼각형(cognitive triad)"이라고 부릅니다. 우울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타인에 대해, 그리고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야", "아무도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해", "앞으로도 나아질 것이 없어"라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합니다. 특히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실은 우울의 핵심입니다. 내일도, 다음 주도, 내년도 지금과 똑같거나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절망감,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이 사람을 짓누릅니다. 히스기야가 받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선고처럼, 우울은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고 선고하는 것 같습니다.


희망의 상실은 단순히 기분이 나쁜 것을 넘어서 삶의 의미 상실과 직결됩니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내일이 있기에 오늘을 견딥니다. 목표가 있기에 지금의 고난을 참습니다. 그런데 희망이 사라지면 삶의 방향성이 무너집니다. "왜 일어나야 하지?", "왜 노력해야 하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 앞에서 답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삶 자체가 견디기 힘든 짐이 되어버립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고, 미래로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울감이 찾아올 때 나타나는 가장 고통스러운 증상 중 하나는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연구가 있습니다. 심리학자 커트 리히터(Curt Richter)는 1950년대에 쥐를 이용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쥐들을 물이 담긴 통에 넣고 얼마나 오래 헤엄칠 수 있는지 관찰했습니다. 완전히 어두운 환경에서는 쥐들이 평균 15분 정도 헤엄치다가 포기하고 가라앉았습니다. 헤엄을 멈춘다는 것은 희망을 포기하고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발견이 있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작은 빛 한 줄기가 비춰지거나, 혹은 쥐를 중간에 잠깐 건져냈다가 다시 물에 넣으면, 쥐들은 무려 60시간 이상을 헤엄쳤습니다. 작은 빛, 혹은 구조될 수 있다는 한 번의 경험이 희망을 만들었고, 그 희망은 생존 시간을 수백 배 늘렸습니다. 희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히스기야는 죽음의 선고를 받았지만, 하나님께 기도했고 치유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한 가지를 더 요구합니다. "징조를 보여주십시오." 왜 그랬을까요? 약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았습니다. 병이 깊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상황에서, 그는 붙잡을 수 있는 구체적인 희망의 표징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가장 극적인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해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간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거꾸로 간 것입니다. 정상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해는 항상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집니다. 그림자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입니다. 시간은 앞으로만 흐릅니다.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이 표징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시간도 되돌릴 수 있는 하나님이다. 네가 죽을 것이라고 선고받았지만, 나는 그것도 되돌릴 수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희망의 본질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치유하시기 전에 먼저 표징을 주셨습니다. 회복이 일어나기 전에, 회복이 가능하다는 증거를 먼저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후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은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아직 어둠 속에 있을 때, 먼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시간이 되돌아갈 수 있듯이 내 상황도 역전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희망입니다.


우울한 당신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삶 전체를 회복시키시는 치유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약속과 다릅니다. 인간은 약속하고도 능력이 없어서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시간도 되돌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단순히 당신의 기분을 좋게 만드시는 것을 넘어서, 치유를 통해 당신 삶의 목적을 회복시키십니다. 당신이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도록, 당신의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심지어 그 경험을 통해 다른 이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우울한 지금을 터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터널 안은 어둡습니다. 앞도 뒤도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터널에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당신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작은 빛 한 줄기, 작은 위로의 순간, 예상치 못한 도움, 말씀을 통한 감동, 이런 것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히스기야에게 해 그림자가 되돌아간 것처럼, 당신의 삶에도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뀔 수 있다"는 표징이 주어질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희망의 방향성입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좋아지겠지"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희망, 그분의 약속을 향한 희망을 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희망의 방향성입니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좋아지겠지"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희망, 그분의 약속을 향한 희망을 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표징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희망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치유하리라", "새 힘을 얻으리니"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 수 있습니다. 이 약속이 우리의 닻이 됩니다.


오늘,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표징을 찾아보십시오.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입니다. 히스기야처럼 하나님께 표징을 구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주님, 제가 회복될 수 있다는 작은 신호를 보여주세요"라고 기도해도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필요한 희망의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시간이 되돌아갈 수 있듯이, 당신의 상황도 역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오늘의 말씀]

하나님, 때로 저는 히스기야처럼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선고를 받은 것 같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고, 시간이 멈춘 것 같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고, 이 어둠이 영원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시간도 되돌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히스기야에게 해 그림자를 되돌리는 표징을 주셨듯이, 저에게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여주시옵소서. 제가 붙잡을 수 있는 작은 희망의 표징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 주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게 하소서. 저를 치유하시고, 제 삶의 목적을 회복시키시며, 다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주님은 저와 함께하시며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상담자의 한마디]

"희망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제 대답은 항상 같습니다. "네,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낙관적인 말이 아닙니다. 저는 지난 수년간 수많은 내담자들이 우울의 터널을 통과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처음 상담실에 오실 때는 눈물과 절망으로 가득했던 분들이, 몇 달 혹은 몇 년 후에는 미소를 띠고 "선생님, 저 많이 좋아졌어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분은 빨랐고, 어떤 분은 천천히 걸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은 모든 분들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작은 희망의 신호 하나입니다. 그것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회복의 시작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오늘 조금 덜 우울했던 한 시간, 오랜만에 나온 미소 한 번,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 그 작은 것이 당신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회복될 것입니다.




*아래는 제가 쓴 책입니다. 구매하셔서 회복과 성장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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