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이라던가 아름다운 이별 말입니다.
연재하는 법을 오늘에야 알아버린 관계로...
전일 올렸던 글을 조금 보완하여 다시 올립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2025. 03.15
관계란 참 얕고도 얕다.
사람들은 어떻게 지지고 볶으면서도 서로의 손을
기어코 놓지 않는 질긴 관계를 갖게 될까?
그리고 나는 그런 관계를 갖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울까?
어쩌면 이건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람에 대한 상처가 참 많은 사람이라서 늘
"기대하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곤 하는데, 그럼에도 마음이 조금이라도 열려버리면
이 기대라는 것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려서는
이내 상대에게 바보같고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갖는 애정을 무서워한다.
애증도 무섭지만 애정을 갖게 되는 것이 더 무섭다.
나를 나답지 않게 만든다는 점은 물론이고
애정을 갖는 모든 것들이 내게 지나치게 소중해진다는 것,
그리고 그 애정이 애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한 순간에 애정이라 부를 수 없도록 '애'도 '정'도 남지 않게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무섭다.
어쩌면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표현이 더 걸맞을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세월의 경험치(이것을 경험치라고 표현해도 되나 싶지만)가 쌓여갈수록 앞뒤 재지 않는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이 힘들어지고.
그 경험치는 사랑의 문턱 앞에서 상대를 끊임없이 재고 따지게 만든다.
그간의 경험에 빗대어 그는 이럴 거야, 저럴 거야
등의 지레짐작을 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로 인해
관계에 벽을 치게 하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눈에
차지 않으면 상대에 대해 더 알아갈 의지를 미련
없이 버리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상대에 대한 환상은 너무나도 쉽게 만들어져 버려서 환상이 깨지는 순간은 내게 (굳이 필요 없는) 부정적인 경험치를 선사하기도 한다.
세월에서 비롯된 트리거도 무시할 수 없는데,
이것들은 마치 트랩처럼 여기저기 숨어있다가 관계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와 나를 흔들기도 한다.
이 트리거가 발동되는 순간 사랑이 더 크다면
"아닐 거야. 이 사람은 그럴 리가 없어. "
하며 현실 부정을 하고 진실을 외면하지만
트리거가 사랑보다 더 클 때엔 가차 없이 상대에게
관계의 끝을 고하고 만다.
물론 그간의 경험치가 있는 만큼 어른답게 최대한
정중하고 다정한 말로.
이런 쓰잘데 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날
머릿속에 몇 가지 의문이 자리 잡았다.
사실 [상대를 향한 나의 마음이 얼마나 맑고 소중한가?]는 결국 중요하지 않은 것이 사랑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서로의 속도나 마음의 크기, 방향성이
맞는가 하는 것 따위가 아닐까?
한 마디로 '운이 좋아야 한다. '는 뜻이 될 수도
있겠다.
운이 받쳐주지 않아 받아줄 사람이 없는
사랑은 결국 내게 상처가 되는구나라는 것을 참
많이도 경험했기에 이런 의문과 결론에
도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사랑은 혼자 할 수도 없는데다가
사랑이라는 달리기에서 상대와 페이스가 같기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우니 사랑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무서운 일이냐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오던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는 이 사랑이라는 것이 마치
타이머없는 시한폭탄 같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막고 싶으면서도 기대하고 싶어 지니까.
사실은 내 마음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려 결국은 열고야 말아주기를 기대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끝이 아름답지 않을 확률이 아주 높다는
것을 여태까지 경험해 놓고도 내심 아름다운 사랑을 동경하며, 한번 동한 나의 마음은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끌려다니고 만다.
나는 언젠가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났었다.
그와 내가 친밀했던 기간은 고작 한 달 남짓이었지만 그는 참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 시기의 나는 어땠냐 하면
인간 혐오와 상처로 범벅이 되어 어딘가 많이 꼬여있고, 위축되어 있고, 경계심 많은.
한 마디로 성격 나쁜 길고양이 같았고
모든것에 지쳐있었다.
반면에 그는 당당하고 유쾌하고 긍정적인, 자신감과 매력이 흘러넘치는 사랑받고 자란 말괄량이 강아지 같은 사람이었다.
나는 처음엔 충분을 넘어 다소 과하게 그와 거리를 두고 경계했지만 그는 내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은 물론, 특유의 에너지와 꾸밈없지만 반듯한 말들로 내 마음을 계속 두드렸고, 마침내 나는 그로 인해 닫았던 문을 열고 그의 세상으로 다가가고 싶어졌다.
용기를 내어 다가간 그의 세상은 생각보다 더 즐거웠고 함께하는 시간은 더 즐거웠다.
그도 그랬던 것일까?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남의 약속을 정하곤 했다.
카톡과 전화가 낯설다던 그는 원래 그랬던
사람처럼 나와 수시로 전화와 카톡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다가 온
우연은 인연의 문턱에 다다를 정도로 깊은 마음이
되어있었다.
그는 내가 살면서 처음 경험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신기하리만치 나와 닮았으면서도
그 닮은 부분이 모나거나 밉거나 싫지 않았다.
오히려 멋진 사람이었다.
나는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나와 닮은 이를 좋아할 수 있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의 다정과 바름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고, 그에게 고르고 고른 이쁜 말 만을 전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는 나에게 종종 자신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며, 멋진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그의 말처럼 그가 나쁜 사람이라기엔
그는 늘 타인에게 예의 바르고 친절했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알았고,
투박하지만 진심을 담은 공감과 위로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세상 어느 나쁜 사람이 타인을 위해 기꺼이 그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사람과 함께라면
재고 따지지 않는, 그저 둘이어서 행복한 연애를 꿈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사이는 정말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삐그덕 거리기 시작하다가
결국엔 끝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사소한 사건이라는 것은 나에게는 사소했지만 그에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이었고,
나는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거나 배신의 영역 같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처음엔 더 이상 그와 친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고, 장난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그제서야 이 사람을 놓아야 한다는 게 참 엄두가 나지않았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가 내게 늘어놓은 말들은
굳이 곱씹어보지 않아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말들이었다.
그저 나에 대한 마음이 그만큼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상처받지 않게 잘 돌려 말해주었을 뿐이었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 배려였다는 것을 나는 사실 진작에 알아차리고 있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쉽게 놓을 수 없는 좋은 사람이었다.
떠난 마음을 잡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내
"그래. 나는 바보야. 그러니까 붙잡을 거야. "
라며 자기 최면을 걸고는 그를 회유해보려 했다.
그 회유의 시간이 그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늦은 시간 한 시간 반 내내 나를 어르고 달래준 그 사람은 역시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그는 자신이 한 (내게 피해를 주지는 않은) 실수를
용납할 수 없어서 이 관계를 포기한다 말했지만
그가 한 말들은 결국 "내 마음이 여기까지야. "라는
것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의 사정을 알고 있기도 했고, 우리는 서로 닮았던 탓에 나도 모르게 그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미워하기보단 그냥 그가 행복하길 바랐다.
그리고 사실... 그를 붙잡으면서도
"지금의 내가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라는 의문과 망설임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 그를 잡는 내 마음도 백퍼센트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가 '지금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는 말을 안녕의 이유라 말하던 순간
나 또한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닮은 생각을 했다.
물론 그에 대한 원망이 요만큼도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이럴 거면 왜 내 마음을 열게 해서는 이렇게도 내 마음을 미어지게 하냐는 원망이 아주 조금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안녕을 바라며 관계를 정리했다.
우리의 안녕은 이러했고 이것은 대충 보면 그나마 정중하고 아름다운 안녕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서로 헐뜯지 않았을 뿐
그가 내게 한 말들은 애써 포장을 해댔지만 결국 변심이라는 답을 갖고 있었고
나는 그걸 진즉 이해하고도 그와 마찬가지로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여 그를 회유했다.
그는 다소 비겁했고, 나는 다소 구질구질했다.
이렇게나 잔잔한 안녕도 속을 파보면 비겁하고
구질구질함이 판을 치는 안녕인 것이다.
이래서 난 사랑이 무섭다.
찬란하고 아름답던 시작이 한 순간에
아름답지 못한 안녕으로 끝나야하기에.
그러면서도 나는 사랑찬가를 아주 좋아한다. 사랑을 말하는 모든 아름다운 노래들을 사랑한다.
사랑이 무섭고 두렵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사랑하는 건 정말 모순이 아닐수 없다.
뭐, 원래 인간이란 모순적이고 나는 특히 더 모순적인 사람이니까.
그러므로 그는 그가 준비되었을 때 꼭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기를 바랐다.물론 나만큼 잘 맞지는 않기를 바라기도 하고
그의 변심과 비겁함을 원망하거나 미워하기엔
나 또한 그를 잡기 위해 구질구질한 말들을
늘어놓았었고, 그에 대한 내 마음이 이미 사랑의
형태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기에 이번의 안녕으로 일상의 한편에 자리 잡았던 이가 사라진다는 것이, 그가 차지하고 있던 내 마음의 공간이 하루아침에 공실이 되었다는 게 유난히도 공허하고 힘들고 가여웠다.
한 달 남짓한 시간이 이리도 유별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아마 그가 내게 최근 몇 년 중 가장 짧은 우연이었지만 가장 애틋한 우연이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는 인연이라는 말보다는 우연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나도 우리의 시간을
우연이라 말하겠다.
사랑은 이렇게 언제나 입실과 퇴실 날짜를 정해놓지 않고 자기 멋대로 자리를 트고는 또 멋대로 떠나버린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는다.
참으로 예의 없고 불친절하지만 우리는 언제고 속수무책으로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원한다. 사랑으로 하여금 행복을 느낀다.
한낱 사람의 힘으로 사랑을 막을 수 없다면 이제 내게 남은 방법은 아름답지 못한 이별 또한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어른이 되는 것만 남은 것
같다.
과연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사실, 하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