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사람의 언어 연재 4탄 초역
초역 채근담 연재 4탄 사람의 언어에서 보는 바,
길고 오래가는 맛은
진하고 좋은 술을 마시는
유복한 생활이 아니라
콩죽을 할짝거리는
소박한 생활에서 얻어진다고 하고
쓸쓸하고 울적한 마음은
적막한 가운데 생기지 않으며
피리를 불고 거문고를
타는데서 나온다고 한다.
이어
결국 화려한 맛은 오래
지속되지 않으며
담백함 속에 진정한
풍미가 있다고 말을 한다.
혹자는
이것이야말로 궤변으로 초역 채근담의
이러한 말이 틀린 말을 되뇌는 뿐이라
말하기도 한다.
허나 인간은 한번 살고 한번 죽는다
거기에 진실로 길이 있는 것으로
울면서 태어나고
벌거숭이로 태어나
생로병사의
이치를 따라가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음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
왜 많은 사람이 성공한 후 타인에게
배려하고 기부를 하려 하는지를
생각해 보라.
벌거숭이로 태어나 손에 쥐는 돈을
들여다볼 때,
거기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것을
본 적이 있던가?
결국 돌고 도는 돈은
모두 누구의 돈도 아니며
잠시 잠깐 내가 빌리어 내 손에 쥐어 있을 뿐
생로병사의 그 궤를 벗어나지 않는 한
죽을 때도 벌거벗고 빈 손으로 감만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럼에 두려움이 없는 사람처럼 보여도
죽을 때 주마등처럼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조그만 실수로라도 지옥불로
떨어짐이 두려울 밖에 없는 것이다.
기독교적 원죄의식을 이어 붙여
넣을 것도 없는 것이다.
한번 살고 한번 죽는데
또한 죽음이 두려운 것은 매양
같으며 단지 외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면
인생의 참된 맛은 차라리
속 편하고 두려움 없는 자그마한 것의
충족에 가히 있다고 해야 하겠다.
부자라고 하루 수십 끼를 먹을 수 없음에
더하여 기름진 산해진미를 반에 반도
먹지 아니하고 버릴 때, 아프리카의
빈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고작 천 원이
없어 굶어 죽는 것을 죽는 날 떠올려
본다면, 어찌 그가 죽음이 두렵지 않고
죽음 이후에 두렵지 않다고 하겠는가?
속 편한 것이 나은 것이다.
두렵지 않게 대자대활 하는 마음이
천 배 만 배는 나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고 초역 채근담 사람의 언어
연재 4탄을 다시 보시니 어떠하신가?
태어나서 손에 쥐고 난 것이 있던가?
정녕 두려움 없을 정도로 유복함이
내 것이며 나는 누릴 수 있다
말할 수 있던가?
미루어 짐작하여 오늘을 쌓는
공덕이라면
부모에게 받은 재산으로 수십조
부자가 되고
자신이 자수성가하여 이룬 몇백억으로
기부를 하는 행동을 죽기 전에
행함은 참으로 그럴 법도 한 것이다.
"저 자에게 돌을 던질 사람이 있는가?"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람에게
시기와 질투를 던지고,
노력하여 근면하며 타인과
나누는 사람에게
욕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생로병사의 굴레 위에서
죽는 날 필연코 두렵지 아니할까?
그런 두려움 아래에서
느껴보면 혀끝의 다디단
한우 투뿔 채끝살조차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아니할 것이다.
이러고 보면 인간은 참으로
마음먹기에 달린 동물이며
이런 이유로 동물 중 영장이라
할 만한 족속이리라.
그런 깨달음을 지닐 수 있고
사유를 할 수 있는 인간 족속에게
인생의 참된 맛이라면
차라리 맛 좋고 값비싼 술이나 진미에
있지 않고,
속 편한 된장찌개에 풀때기 죽일 수도
있으리라.
우린 한번 살고 한번 죽는다.
자, 이제 과연, 어떤 생을 살아야 할까?
해는 다 저물어가는데 우리는 저 산을
넘어가야 하고,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나는 무슨 공덕을 쌓을 것인가?
선택과 행동이 남은 것이다.
필자는 오늘 여기 초역 채근담
사람의 언어 연재 4탄에서
이를 쓰고, 이를 들여다 보고
여기,
이를 남기고 일어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