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는 책략을 알아도 쓰지 않는다

초역 채근담 삶의 언어 연재3화

by 이청락

초역채근담은 세번째로 말한다.


권세나 이익 그리고 호화로운 생활이나 화려한 치장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은 분명 청렴하다고 말이다.

이뿐이랴 이어 말하길 이러한 것이 옆에 있어도

물들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진정 가장 청렴결백하다 말한다.

종래에 남을 속이거나 함정에 빠드리는 책략 같은 것을

모르는 사람이 분명 현명키도 하거니와

이러함에 당하는 것이 아니라 권모술수에 능하면서

쓰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현명한다고 이어 말한다.


굉장히 단계적인 말의 언어들의 향연이다.


이것은 그리한 것이 이른바 인간의 나이가 40에 이르면

미혹되지 않음으로 불혹이라 부름을 처음에 이야기 하고

점차 나이를 먹어가며 하늘의 뜻을 알고 귀가 순해지는

단계로 이어 가듯이 유혹되는 것에 이르러 사람이 가야

하는 바르고 옳은 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리라.


유혹됨을 이겨내는 것은 대단하지만 유혹되는 길에

처하지 않으려고 그 유혹의 길에서 돌아가는 사람역시

대단하다.


권세나 이익 그리고 화려한 생활과 치장이야말로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유혹되는 상징이다.

이것을 가까이 하지 않은 청렴함이 있기 전에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열명 중에 하나 혹은

백명 중에 한명에게도 닥치기 힘든 현실인고로

실제적으로는 이것을 '기회'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TV드라마에 나오듯 백마탄 왕자님이 나타남처럼,

오랜 고생 끝에 귀인이 탁하고 나타나 손을 내미는

것처럼, 느껴지기기 쉽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내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권세와 금은보화

그리고 명망과 부귀영화가 따른다면 인간은 더욱 그 유혹에

쉽어넘어가기도 쉬우리라.


필자는 그 기회라고 보여질 만큼의 유혹과 일반사람의 접점

위에서 앉아서 생각을 해봄에, 사람들은 살면서 상식적으로

기회라는 것에는 내가 그것을 잡을 준비를 해왔는가를 따져

본다고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


그럴 제, 유혹은 차라리 껍데기다.


누군가가 부귀영화와 권세를 준다고 할 때, 그것의

보여지는 모습은 한번도 꿈꿔보지도 못한 이익과

치장의 겉모습일수는 있다.


허나 작금의 시기에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굳이

어느 개인 하나를 당첨시켜 그렇게나 호화로운 생활을

안겨줄 상황이 과연 얼마나 될것인가. 이런 포스트

코로나의 21세기에 말이다.


필자는 차라리 기회에는 굉장히 잘 정돈된 준비가

있었음을 설파하는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를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기회를 준비한다는 것, 또 올 수 있는 기회를 대비하여

그간 묵묵히 준비해 온 사람에게 보여지는 부귀영화와

권세가 그렇게나 매혹적일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인간은 수십만년간 굉장히 안정지향적으로 살았다. 현생

인류는 그렇게 과감히 모험을 하기보다 뒤통수에 사자의

발톱이 박히고 어디서 뛰쳐나올 표범을 피해 차라리

웅크리고 배고픔을 참는 것에 익숙해져 살아왔다.


그것의 반대급부로 우리는 과감한 도전성은 갖지 못해도

사망률을 높이는 어설픈 행동은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이러한 저간에 깔린 생각은 충분한 준비없이 내게 온

기회를 잡지 못한다는 수십만년의 DNA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필자는 말한다.


그런 눈으로 고수는 책략을 알아도 쓰지 않는다를

다시 들여다 본다.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 것인가?


나 스스로 납득할수도 없는 부와 명예가 주어진다면

보통의 인간은 대부분 이를 피한다. 그것을 덥썩

물었다면 그는 보통의 인간보다는 어리석은 사람에

속한다. 만약에 호환마마가 창궐한 시절이었다면

그는 마마는 피해갔을지 몰라도 성급하고 부주의한

성격으로 인해 호환을 피해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초역 채근담이 경계하는 고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고 언제 타인의 틀 안에 갇힐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동서고금에 매양 있어왔고 그들은 쉽사리

주어지는 권세와 이익, 호화로운 생활이나 화려한

치장에 눈이 멀어 인생 자체를 망칠수도 있음은 사실이다.


허나 그런 자가 어찌 천수를 누리고 살 수 있겠는가.


잠시잠깐 술독에 빠진 사람도 있고 도박에 사람이 빠지

기도 하거니와 물정 모르고 갑자기 주어진 권세나 이익에

그렇게나 쉽게 빠져들기엔, 보통 사람은 만무하다.

속으로 부럽고 갖고 싶은 마음까지는 있다손쳐도 선뜻

용기내어 거기에 뛰어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미 죽기 쉬운 사람과 살기 쉬운 사람을 스캐닝 하여

선별하는 기계가 인간의 운명이라고 치면 호화나

치장에 뿅 하고 넘어갈 사람은 진작에 스캐닝되어

사라진다고 봐야 겠다.


그럼으로 필자는 보통 상식선의 사람은 거의 대부분

청렴결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청렴하지 않을 기회가 오지 않아서 청렴하건

권세나 이익이 왔을때에도 흔들리지 않아서 청렴하건

필자는 대부분 청렴으로 간다고 생각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악한 자는 늘 악하고

선한 자는 늘 선하기가 매양 쉽다.


악한 자는 절대 선해지지 않으며, 때론 선한 자가 때때로

악한 자가 된다고 해서 그 몇을 들어 모든 선한 자가

거의 대부분 악한 자로 가버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3차원의 세상 위에 있어도 각각은 각자의

방향과 각자의 속도대로 걸어간다고 했다.

누구는 경로를 이탈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정향성을 유지하는 뫼비우스의 띠, 또는 바뀐

행동이 원래 행동으로 회귀하거나 바뀐 행동이

인이 박혀 그대로 습관이 된대손쳐도 그대로 제처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걷기 마련이다.


각자의 뫼비우스 띠를 왠만하면 벗어나지 않는것은

인간은 자신의 정향성대로 살아가기 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뫼비우스 띠에 사람의 청렴과 현명을

또한 올려 놓는다.


자신의 생각과 정향과 욕심의 정도에 따라 청렴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청렴해질수도 또는 청렴하다가

청렴하지않을수 있다고 쳐도 그것은 그가 그 순간의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 순간적인 흔들림이라 생각할뿐

결국 청렴할 사람은 청렴으로 지쳐서라도 돌아오고

현명한 사람은 현명하게 자신의 뫼비우스 띠 위로

돌아온다.


필자는 그대신 그렇지 않을 사람들이 아주 적더라도

그 사람들과 또 보통사람들 중에 일시적으로 청렴하지

않고 현명하지 않을 사람에게 견뎌낼 길을 같이

고민해 본다고 하면, 역시나 주어진 기회가 오기까지

준비를 해야함을 말하고 싶다.


준비하기에 진심이고 준비하기에 바쁜 사람은

권세나 이익 따위에 눈돌릴 겨를이 없다. 그는 잠시

잠깐의 유혹덩어리나 나의 능력으로 만들어지지

아니한 유혹은 잠깐의 신기루 임을 안다.


대저 준비하고자 하는 자는 준비하는 시간이 늘 유수라고

느낀다.


그는 집중하고 몰입하고 거기에 혼을 넣어두고

염원을 다해 준비하고 있는 와중이기에 그러하다.

필자는 초역 채근담의 경건하고 가르침을 주는

말이 참으로 맞다고 생각을 한다 그말에 굳이 토를

달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필자는 그 청렴과 현명을 시험해볼 가능성을

말하고 싶고, 보통 사람이 지금껏 견뎌온 과정상의

그의 선택과 판단을 믿어보고 싶고, 무엇보다

고수는 책략을 알아도 쓰지 않음과 또 다른 차원의

기회를 준비하기에 여념없는 사람의 모습을 투영

시키고 싶은 '안달남'이 있을 뿐이다.


어차피 아무리 좋은 말에도 안 고쳐지는 인간은

절대 안 고쳐진다. 필자는 고수는 책략을 알아도

쓰지 않음을 떠나 그 고수가 어떤 불과 같은 목표를

지니고 정진하여 자신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매사 준비하고 실행해가는 업무라고할까 사명이라고

할까 하는 것을 던져주고 싶은 것이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다.


초역 채근담의 세번째 글에서 고수가 책략을 써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성과를 가져오고 그러고

더 높은 공동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좋은 책략

쓰기에 바빠 권세나 이익 따위를 잊어버리는

그 과정을 필자는 매순간 기다리고 응원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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