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ISTJ 라 내향적이지만, 모임은 많습니다만.

내향형 기획자의 관계 설계법

by 베러윤

MBTI에서 나는 ISTJ 다. 앞자리가 I. 내향인.

이 얘기를 하면 꼭 돌아오는 반응이 있다.


'엥? 네가 I라고? 말도 안 돼'


그럴 만도 하다. 그동안 모임에서 나는 앞에 나서야 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앞에 나가서도 떨지 않고, 새로운 사람들과 제법 이야기를 잘하는 '외향형'이라고 생각하기 쉬웠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활발하고 에너지 넘쳐 보이니까.


하지만 사실 나는 전형적인 내향형 인간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사람들과 어울린 후엔 반드시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말수도 많은 편도 아니고 낯도 많이 가린다. 공감보다는 논리적로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루틴을 좋아하며, 즉흥적인 일이 생기면 에너지가 금방 소진된다.




작년 11월에 60명 정도 되는 모임에서 MBTI 전문강사를 모시고 검사를 했다. 몇 년 만의 테스트였다. 시작 전에 슬쩍 생각했다. '나, 몇 년 사이에 좀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게 웬걸. 결과는 또렷한 ISTJ.


그날 참여자 60명 중에서 ISTJ 각각의 성향이 모두 상위권. 끝나고 같은 성향들끼리 모여 이야기하는데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분들을 만나보니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사람 많은 곳에선 쉽게 피곤해 하지만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결을 유지하고 싶은 욕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어느 사람처럼 즉흥적으로 약속을 잡거나, 낯선 자리에 가볍게 뛰어드는 건 살짝 어려운 일이지만, 신뢰할 수 있는 관계 안에서는 더 깊이 있게 연결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예전에는 관계의 흐름이 끊기지 않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그래서 월화수목금토일, 스케줄표엔 늘 약속이 빼곡했고, 주말에도 집에 있는 날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바쁘게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고, 챙기다 보면 관계 안에 잘 녹아든 것 같았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그건 연결이라기보단 놓치지 않기 위한 소진에 가까웠던 것 같다. 모두를 챙기느라 정작 나를 위한 관계 설계는 없었고, 내가 누구와 있을 때 편안한지, 어떤 방식이 나를 지치지 않게 하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크고 많은 관계보다, 깊고 오래갈 수 있는 관계를 선호하게 되었고, '지금 이 사람과 내가 진짜 연결되기 원하는가?'를 먼저 살펴보려 한다. 예전처럼 무작정 만나고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대신 나에게 맞는 속도와 방식으로 연결을 유지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와의 관계다. 매일 새벽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에 나를 충분히 누리고 나면, 사람과의 만남도 훨씬 더 반가워진다.


이렇게 나를 잃지 않으면서, 나답게 사람들과 연결되는 방법을 찾는 것, 그게 요즘 내가 관계를 대하는 태도이자, ISTJ인 내가 세상과 이어지는 방식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관계에 계획서를 써가며 접근하는 건 아니다. 오해할까 봐 말하지만, 나도 생각보다 꽤 유쾌한 구석이 있다!


예를 들면, 분기마다 에버랜드에 가서 판다를 보는 '바오패밀리'모임도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떡볶이 맛집을 찾아다니는 '떡볶이 탐방'모임도 있다. 그리고 심신안정을 위한 '뜨개질 모임'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지난 봄, 바오패밀리 모임 중 바오사진들


가볍고 즐거운 연결도, 깊이 있고 따뜻한 연결도, 모두 지금의 나에게는 꼭 필요한 관계들인 것 같다.


중요한 건, 누구를 만나든, 어떤 모임에 속하든,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연결인지를 살펴보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즐겁게 나를 확장해 나가는 일이다.


어쩌면 관계란, 꼭 많이 만나야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모든 걸 나눠야 깊어지는 것들은 아닌 것 같다. 나를 지치게 하지 않는 거리, 서로를 존중하는 리듬, 그리고 가끔은 이유 없이 웃을 수 있는 순간들. 그렇게 이어지는 인연들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내향형이지만, 오늘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사람들과 재밌고, 조용하게, 연결되어 가는 중다. 찌릿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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