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진짜 싫다’는 감정에서 시작하는 나만의 설계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어요.
죽기 전에 이건 진짜 해봐야죠.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하며 살아간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버킷리스트'다.
나도 버컷리스트를 빼곡히 적어 본 적이 있다. '책 한 권 출간하기', '북유럽 여행 가보기', '경제적 자유 얻기' 등. 물론 마음 깊숙이 간직하는 리스트들도 수두룩 하다.
이 단어는 2008년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대중화된 표현이라고 한다. 죽음을 뜻하는 영어 관용어 'Kick the Bucket(죽다)'라는 표현에서 따온 말로,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담은 리스트를 말한다.
영화 《버킷리스트》 (2008)
감독: 로브 라이너
출연: 잭 니콜슨, 모건 프리먼 외
개봉: 2008.04.09.
영화 속 두 주인공은 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실에서 룸메이트가 된다. 한 명은 부유한 사업가, 한 명은 평범한 정비공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버킷리스트를 함께 완성해 나가며 인생의 마지막 챕터를 같이 채운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마침내 깨닫게 된다.
하기 싫은 일도 리스트에 담아본 적 있나요?
작년에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버킷리스트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그분은 이런 얘기를 하셨다.
저는 버킷리스트를 쓰지 않아요.
대신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씁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이지?' 싶었다. 버킷리스트도 한가득일 텐데, 인생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쓴다고? 그렇게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이어서 한 이야기.
내가 정말 하기 싫은 걸 적는 이유는,
내가 피하고 싶은 삶을 떠올리면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가 더 명확해지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요즘은 100세 시대다. 그런데 사람마다 유병기간은 다 다르다. 어떤 분은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분이 있고, 어떤 분은 노년이 되어서 몇십 년 아프셔서 고생하시는 분도 계신다.
그냥 단순히 '나는 그냥 오래 살고 싶어요.'가 아니라, '유병기간이 길고 싶지 않다.'와 같은 어떤 삶의 모습을 피하고 싶은가를 생각해 보고, 지금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거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피하기 위해 먹는 것, 움직이는 것, 쉬는 방법,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버킷리스트가 나의 꿈을 향한 지도라면,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쓰는 리스트는 내가 피하고 싶은 길을 막아주는 나침반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 또 하나의 리스트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스킵리스트(Skip List)라고 부르기로 했다. '건너뛰고 싶은 것들',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은 선택들'을 담는 리스트다. 단순히 '안 하고 싶은 일'을 적는 게 아니라, 내가 피하고 싶은 삶의 방향을 먼저 그려보는 작업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적었다. 2가지만 공유해보자면 이렇다.
1) 나는 희망퇴직 당하고 싶지 않다.
2) 나는 늙어서 허리를 구부정하게 다니고 싶지 않다.
1)번은 회사의 흐름에 휩쓸려 준비도 없이 내쳐지는 상황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새로운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회사 안에서는 주어진 일들을 하며 나의 능력을 키우고, 회사 밖에서도 내가 증명될 수 있는 글, 콘텐츠, 프로젝트들을 조금씩 쌓아둔다. 그렇게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으로 살아가려 노력해 언젠가 회사가 아닌 나 자신으로도 증명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2)번은 우리 증조할머니가 90세까지 사셨는데, 허리를 피지 못해 너무 힘들어 하셨다. 그 모습을 어릴 때부터 봐와서 머릿속에 많이 남아있는데 나도 거북목 때문에 자세가 좋지 않다. 그래서 이 리스트를 적으면서 매일 허리피기를 생각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틈틈히 바른자세로 걷는다. 작은 습관이지만 이게 쌓이면 내가 피하고 싶언 삶으로부터 조금은 멀어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살다 보면 하고 싶은 일보다 '이건 진짜 싫다'라고 느끼는 일이 훨씬 명확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걸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고 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게 하기 위한 선택을 매일 조금씩 실천해 보는 것.
나는 어떤 삶만큼은 살고 싶지 않은가?
그 질문이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한 번 적어보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일보다, 먼저 피하고 싶은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