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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당했다. 맹목적인 믿음이 불러온 나의 시행착오

AI시대에도 여전히 사람이 배워야 하는 이유

by 베러윤
ChatGPT야, 이 안약 스테로이드야?


우리 집 강아지 '노바'는 15살이다. 인간나이로 치면 할아버지다. 심장병과 기관지염을 앓고 있고, 매일 스테로이드약을 먹지 않으면 하루 종일 기침을 한다. 장모 치와와인 노바는 여름만 되면 긴 털 때문에 항상 헥헥 거린다. 그래서 항상 털을 짧게 잘라주고는 했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든 노바는 어느 병원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심장병이 있는 노견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이 병원 측의 설명이었다.

사실 이해도 간다. 특히 노바는 조그마한 것에도 크게 흥분을 해서, 늘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왔으니까. 집에서는 케어해 준 적이 없어서 털을 깎아주는 걸 미루고 미뤘는데, 여름이 다가오면서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집에서 노바의 털을 깎아주기로 했다. 노바를 간식으로 정신을 빼놓고, 듬성듬성 노바의 털을 조금씩 잘랐다. 그러고 나서 목욕을 시켜주었다.


문제는 목욕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원래도 물을 너무 무서워하는 노바였는데, 그날따라 아이가 심하게 몸부림을 쳤고, 그 와중에 거품이 눈에 들어간 것 같았다. 바로 물로 닦아주기는 했는데 아이가 따가워서 눈을 발톱으로 긁은 것 같았다. 샤워를 끝내고 나서부터 한쪽눈을 잘 뜨지 못하고 자꾸 만지더니 다음날 되니 한쪽 눈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바로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니 각막궤양. 샤워를 하다가 물이 들어가도 생기는 건데, 노바의 경우 발톱으로 눈을 긁으면서 상처가 난 것 같았고, 심하면 천공까지 오기 때문에 하루에 4번씩 2개의 약을 10분 간격으로 넣어주기를 당부받았다.


첫날 약을 꼬박꼬박 넣어주고 두 번째 날이 되었다. 그런데도 노바의 눈이 가라앉지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사람과 다르게 아프다는 표현을 잘 못하는 강아지들에게는 작은 것 하나에도 온갖 걱정이 밀려온다. 특히 노바는 기관지 문제로 스테로이드 약을 꾸준히 복용 중이었다. 아이의 몸에 부담이 되는 것들은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카페에 들락날락 거리며 정보를 보다가 스테로이드로 된 안약을 넣게 되면 눈의 상처 회복을 늦춘다는 얘기를 보았다.

급해서 갔던 집앞병원인데, 예전에 이 병원에서 아이에게 잘못 약을 처방해 준 적이 있어서 달컥 겁이 났다. 처방받은 안약이 스테로이드 성분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곧바로 ChatGPT를 소환해 약 이름을 입력하고 물어봤다. ‘이 안약 스테로이드야?’


이 약은 스테로이드 계열 안약입니다.


돌아온 대답을 보고 너무 놀랐다. 그래서 바로 다른 AI 툴도 열었다. 클로드, 제미나이, 퍼플렉시티를 차례로 열면서 똑같이 물어봤다. 그런데 모두에게 돌아오는 답


이 약은 스테로이드 계열 안약입니다.


순간 얼어붙었다. 혹시 이 안약 때문에 더 나빠지는 건 아닐까? 애초에 병원에서 잘못 처방한 건 아닐까?



결국 사람을 다시 찾았다.


너무 불안했던 나는 약에 대해 잘 아는 지인을 수소문했고, 동물병원에 일한 경험이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정확한 성분 확인을 부탁했다. 한참 뒤 알아봐 준 친구에게 들은 대답은 이랬다.


그거 작년에 새로 나온 동물용 항생제야. 스테로이드는 아니야.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AI에게서 들은 대답이 왜 달랐는지도 알 수 있었다. AI는 유사한 제품명과 가능한 범위에서 정보를 제공한 것뿐, 내 강아지의 상태나 실제 처방된 약의 정확한 정보를 분석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날 나는 한 가지를 깊이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AI를 맹목적으로 믿고 있었다는 것. ChatGPT도, 다른 AI도 모두 동일한 답을 줬기에 오히려 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여러 AI가 똑같이 말하는 것을 보니, 이제 맞겠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만약 내게 약과 관련된 지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AI가 뭐라고 답을 해줬더라도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구분해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책임은 AI가 아니라 나에게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됐다. AI시대의 인간의 지식에 관해서.

AI강의를 하다 보면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이제 영어공부 안 해도 되는 거 아닌가요?
책을 굳이 안 읽어도 되지 않나요?


AI시대에 정말 인간의 지식은 필요 없는 걸까? 모든 걸 AI가 알려주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 이상 배우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더 많이 읽고,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넓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번 일을 통해 확신했다.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것은, AI라는 도구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력이라는 것을.


우리가 판단할 수 없다면 AI가 틀린 방향으로 끌고 갈 때조차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정답처럼 보이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의 감각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다움은 결국, '판단할 수 있는 힘'에서 시작된다.


AI는 분명 똑똑하다. 하지만 그 똑똑함은 사람이 물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왜 그것을 묻는지, 그리고 그 답이 지금 나에게 맞는지까지 판단하지는 못한다.


AI를 잘 쓰는 사람은, AI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말이 맞는지 아닌지를 구분해 내고, 나만의 방법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나는, AI시대에도 여전히 사람이 배워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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