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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간다움’을 설계할 수 있을까

키자니아에서 다시 묻다, AI 시대의 인간다움

by 베러윤

바야흐로 AI의 시대다. 마치 AI를 한 번도 쓰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ChatGPT를 사용해 봤고, 설령 직접 써보지 않았어도 이름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카페에서도, 회의실에서도, 심지어 단톡방에서도 “ChatGPT가 알려줬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세상.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AI는 어떤 특수한 사람들만의 도구가 아니다.모두의 손에 쥐어진 시대의 언어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AI와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내가 원하는 한 줄만 말해도 내 의도를 정확히 대변해 주고,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었지만, 인간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라는 생각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우리는 AI를 이길 수 없다. 알파고를 이길 수 있는가? ChatGPT의 방대한 자료들을 이길 수 있는가?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AI보다 강력한 힘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이 맴돌수록 오히려 계속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바로 나의 전 직장 키자니아였다.


구글에서 퍼옴


대한민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둔 부모라면 모두가 다 아는 그곳, 대한민국 NO1 직업체험 테마파크 ‘키자니아’ 말이다. 직접 가보지 않았더라도 아이의 유치원 소풍, 어린이날, 혹은 단체 견학 코스로 키자니아를 한 번은 들어봤을 가능성이 크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키자니아는 멕시코에서 만든 브랜드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반응은 딱 한 가지다. “멕시코요?” 예상하지 못한 나라의 이름에 다들 잠깐 멈칫한다. ‘아이들을 위한 직업체험 테마파크’라는 이미지와 ‘멕시코’라는 지명은 쉽게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멕시코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마도 다정한 햇살과 색감, 축제, 타코 등과 같은 문화가 떠오를 것이다. 그와 함께 솔직히 말하면 치안이 좋은 나라라는 인식은 아닐 것이다. 놀랍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키자니아가 시작되었다. 키자니아의 설립자는 저녁이 되기 전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했다.


‘왜 우리나라 아이들은 밤에 놀지 못할까?’


이 질문의 이면에는 범죄, 빈곤, 불평등한 기회 같은 멕시코 사회의 현실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질문에서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도 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더 나은 사회를 경험하게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위한 하나의 도시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도시가 바로 키자니아다.


그래서 전 세계 모든 키자니아는 ‘오후 5시’를 배경으로 설계되어 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 현실의 아이들은 바깥 활동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무렵 그 시간을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더 나은 사회를 경험할 수 있도록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감각을 배운다.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키자니아 1층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 혹은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가? 바로 항공이다. 키자니아도 마찬가지다. ‘키자니아’라는 하나의 가상 국가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항공권을 발권받아야 한다. 1층의 로비를 들어서면 각 나라를 대표하는 항공사가 입장티켓을 발권해 준다. 대한민국 키자니아에는 대한항공이, 일본 키자니아에는 아나항공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들은 출국심사를 받듯, 항공권 모양으로 된 티켓을 받고 입장 게이트를 통과한다.


한 나라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국가가 있어야 하고, 국기가 있어야 하고, 나라의 노래도 있어야 하며, 나라를 이끄는 국회의원도 있어야 한다. 놀랍게도 키자니아에는 이 모든 것이 다 있다. 심지어 은행과 세금체계까지 갖추고 있으며 나라를 지키는 경찰, 국세청 등 실제 우리나라의 국가 기관까지 들어와 있다.


키자니아의 체험시설은 허구가 아니다. 모두 각 나라에서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각 분야의 대표 기업들이 직접 참여한 공간이다. 우리나라의 키자니아에는 삼성전자, 오뚜기, 롯데리아, 칠성사이다, 제주삼다수, 종근당 건강, MBC 등이 참여해 운영되고 있다. 아이들이 만나는 체험은 그저 장난이 아닌 ‘진짜 세계의 축소판’이었다.


‘놀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 기업의 역할, 사회의 기능, 책임의 구조가 아주 정교하게 설계 돼 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돈을 벌고, 소비하고, 저축한다. 놀면서도 책임을 배우고, 익숙하지 않은 세계 안에서 스스로 해내는 감각을 익힌다.


입점 파트너사 일부 (홈페이지)


AI 라면, 과연 이런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


정교하게 짜여있고, 사회 시스템이 치밀하게 설계된 공간. 그 안에서 아이들이 시민이 되고, 나라의 주인이 되며 책임을 배우고, 진짜처럼 살아보는 감각을 익히는 세계 말이다. 무엇보다 이 공간은 아이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불평등한 현실 속에서도 한 아이가 ‘살아볼 수 있었던’ 세계를 상상한 사람. 그리고 그 상상을 구체화시킨 건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었고, 효율이 아니라 경험이었다.


AI는 과연, 인간의 감정에서부터 출발한 세계를 설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기술이 아닌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AI가 점점 더 똑똑해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인즉슨 인간다움이 더 중요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감정을 이해하고, 맥락을 읽고, 같이 웃고, 같이 슬퍼할 수 있는 능력. 이건 여전히 인간에게만 주어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AI에게 일을 맡기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감정을 설계하고, 관계를 잇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로서 말이다. 빠름과 효율이 전부가 되는 시대에, 나는 키자니아를 떠올리며 다시 ‘느림’과 ‘인간다움’을 떠올려본다.


AI 시대의 인간 사용법은 결국,

가장 인간적인 마음을 지키는 일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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