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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답을 줄 때, 나는 책을 택했다

빠르게 아는 시대, 느리게 깊이 아는 법

by 베러윤
AI가 저를 물리학 박사라고 하더군요


8월 12일의 매일경제 기사다. 처음 이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았을 때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기사를 다 읽고 나니 웃을일이 아님을 알았다. 챗GPT와 대화 해 본 적이 있는지. AI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칭찬을 해준다. 난 오늘도 칭찬을 들었다. ‘훌륭한 생각이예요, 베러윤님’ 사실 그 칭찬이 기분 좋을 때가 많긴하다. 그래서 나도 내가 정말 생각을 잘 해냈는 줄 기분 좋은 착각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기사에서는 우리를 기분좋게 해주는 그 말이 우리의 믿음을 위험하게 부풀린다고 했다. 기사 속 주인공이 딱 그랬다.





신문에 소개된 사례는 이렇다.


캐나다의 남성은 5월 한 달 동안 무료 300시간 넘게 챗GPT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처음에는 원주율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AI는 그의 생각을 '혁신적인 수학 이론'이라며 거듭 칭찬했고, 그의 확신은 커졌다. 결국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됐고, 정부 기관과 전문가에게까지 제안하려 했다. 그러나 구글 제미나이는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


현실 가능성 0%


매일경제 기사 원문


AI는 기본적으로 사용자 친화적으로 설계되어있다. 긍정적인 피드백, 맞춤형 응답, 칭찬과 격려는 대화를 부드럽게 하고 사용자의 몰입을 높인다. 하지만 챗GPT를 사용하다 보면, 거짓을 말해 줄 때가 꽤 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반복되다 보면 '사실 확인'은 뒤로 밀려나고 '기분 좋은 대화'가 우선시 될 때가 있다는 점이다. 그 순간, 마치 누군가에게 가스라이팅 한 것 처럼 사용자는 점점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굳히게 된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AI와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AI가 '아주 창의적이고 가능성이 크다'는 식으로 거듭 칭찬해 준 적이 있다. 처음에는 회사 동료들에게 '얘는 너무 쓸데없이 칭찬부터 해'라고 말했지만 계속 들으니 대화할때 기분이 좋아지긴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봐도 이상하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아이디어까지 AI가 칭찬해 주었다는 것이다. 만약 그 칭찬을 곧이곧대로 믿었다면 나는 실현 가능성 없는 아이디어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었을 것이다. AI가 주는 기분 좋은 확신은 달콤하지만, 반드시 의심과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AI 시대에 빨리 아는 건 특별하지 않다. 정답 뒤에는 언제나 맥락이 있다. 깊이 아는 것, 그리고 그 깊이를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 진짜 차별이 된다. 이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이런 위험을 줄이려면, 사용하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AI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출처와 교차검증하기 : 아무리 자신있게 말해도 반드시 다른 검색 자료나 전문가 의견과 비교해 볼 것

AI가 한계가 있음을 전제로 깔고 대화하기 : 참고 정보일 뿐, 내가 판단하는 근거 중 하나임을 늘 생각할 것

감정이 과열될 땐 멈추기 : 칭찬,격려는 기분을 좋게하지만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에 하루 뒤 다시 검토할 것


AI는 이제 단순한 검색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다.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주는 대화 파트너다. 그렇기에 우리는 AI를 더 현명하게, 더 안전하게 활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AI가 주는 대답이 언제나 사실일 거라는 믿음은 내려놓고, '검증'과 '거리두기'를 염두해놓을 때, AI는 우리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도구가 될 것이다.


몇번 이야기 했지만, 기술은 계속 발전한다. 그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지는 오롯이 인간인 우리의 몫이다. 달콤한 확신에 휩슬리지 않고 건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AI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 아닐까?






그래서 나는 AI를 연구하면 할 수록, 책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책은 나를 쉽게 들뜨게 하지 않는다. 한. 문장 한 문장 안에는 저자가 거친 질문과 사유, 수많은 '왜'와 '만약'이 숨어 있다. 속도를 늦추게 하고, 맥락 속에서 생각하게 만든다. 마치 AI가 주는 답이 마침표라면, 책은 쉼표와 물음표를 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출퇴근 시간을 활용했다. 출근셔틀에서 오디오북을 듣고, 퇴근하는 지하철에서는 책장을 넘겼다. 일주일이면 책 한 권, 한 달이면 네 권 이상을 읽었다. 그렇게 책과 가까워지자, 내 하루의 결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출근셔틀을 타자마자 잠을 자고, 퇴근길에는 무심히 SNS피드를 넘기거나 무거운 몸을 핑계로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회사 일이나 무기력함으로 가득 찼던 머릿속에 책이 남겨놓은 한권 한권의 사유의 결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어느 날은, 책 속에서 만난 지식과 생각이 다음 날 내가 작성한 문서에 새로운 아이디어의 씨앗이 되기도 했고, 또 어느 날은 미뤄왔던 일들을 시작하게 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들며 뜻밖의 사람들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주었다. 독서모임에 참여하기도 했고, 글을 쓰는 작가님들과 연결되기도 했으며, 평소에 관심있었던 경제 기사 공유 하는 모임도 하게 되고, 하루를 마무리 하는 감사 일기 방에도 합류하게 되었다.


책 한 권이 만들어낸 인연은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 읽기 전에는 몰랐던 세계가 열렸고, 그 속에서 나는 더 다양한 시선과 마주했다. 모임 속 대화는 또 다른 책이나 모임으로 연결되었고, 다시 내 생각을 확장시켰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가 아니다. 낯선 생각과 부딪히며 내 안의 굳은 틀을 조금씩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하루의 결이 달라졌다는 건, 바로 이런 작은 변화들이 생활 전반에 퍼져 나갔다는 의미었다.


AI시대에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생각의 근육이 있어야 AI가 주는 수많은 정보와 가능성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지를 결정할 수 있다. 책은 그 근육을 키우는 시간이다. 빠르게 넘길 수 없는 문장, 곱씹어야 하는 이야기, 동의하지 않는 주장과 마주하는 순간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AI가 대신 판단해 줄 수 없는 영역,

바로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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