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를 쪼개어 AI와 내가 할 일 구분하기
AI가 할 일과 휴먼이 할 일을 잘 구분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어제 들은 AI특강에서 강하게 꽂힌 한 문장이다. 요즘만큼 새로운 AI툴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도 없을 것이다. 1년 전에는 몇 달에 한 번 업데이트 소식이 들렸다면, 지금은 하루하루 매일 새로운 Tool들이 나오고 기능들이 업데이트된다. 나도 처음에는 챗GPT하나만 구독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로는 부족하다. 글쓰기를 돕는 툴,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툴, 리서치를 대신해주는 툴까지, 벌써 여러 개의 구독료를 내고 있다.
문제는 아직 구독하고 싶은 게 여전히 많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능이 나올 때마다 호기심이 생겨 사용하다 보면 크레딧이 모자란다. 그럼 돈을 내고서라도 한 번쯤은 써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현실은 모든 툴을 다 배우고 다 써볼 수는 없다는 점이다. 결국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그러면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무엇을 AI에게 맡기고, 무엇을 내가 직접 할 것인가?
버튼만 누르면 대답해 주는 AI와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내가 할 일과 AI가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면 우리는 중요한 일은 AI에게 던져버리고 정작 사소한 일만 붙잡게 될 위험이 있다. 작년에 AI트렌드 조사를 하다가 우연히 작가 조안나 마체예브사카가 AI시대를 우려하며 말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공지능을 모든 일에 밀어붙이는 것의 가장 큰 문제를 아세요?
방향이 잘못됐다는 거죠.
저는 예술과 글쓰기를 위해 인공지능이 빨래와 설거지를 해주길 바랍니다.
인공지능이 예술과 글쓰기를 하고 제가 빨래와 설거지를 하게 만들지 말고요
AI가 예술과 글쓰기를 하고, 내가 빨래와 설거지를 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에이~ 웃겨'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적은 울림이 크다. 중요한 아이디어와 사고는 AI에게 부탁하고, 나는 그 결과를 단순히 정리하는 사람만 된다면? 그건 주체적인 인간이 아니라 AI가 남긴 빈틈만 메우는 조력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와 같다. 우리는 AI에게 단순 노동을 맡기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일을 지켜야만 한다.
최근에 읽었던 『듀얼 브레인』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었다. 『듀얼 브레인』에서는 위와 같은 문제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내 삶을 태스크 단위로 나누고 AI에게 맡길 일과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시대를 살아내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 요즘 배워야 할 툴들 중에 무엇을 배워야 할지 고민을 하던 참이었다. 뒤쳐지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써봐야 할 것 같고, 남들이 추천하는 툴들은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럴수록 정작 내가 원하는 목표와는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만난 이 책은 방향을 바꿔주었다. 툴을 배우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내 삶과 일에 어떤 역할이 필요한지 먼저 아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만 수많은 AI 중에서도 나에게 꼭 필요한 도구를 고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단순한 실험부터 시작했다. 내 하루를 새벽,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누어 태스크를 적어 내려간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칸을 만들어 '내가 직접 해야 할 일' 'AI에게 맡겨도 되는 일'을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새벽 - 모닝페이지 쓰기]
- 해야 하는 이유 : 모닝페이지를 통해서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 내가 직접 해야 할 일 : 어떤 AI툴도 내 마음의 파편까지 대신 기록해 줄 수는 없다. 이건 내가 나를 위해 붙잡아야 할 시간이다.
- AI에게 맡겨도 되는 일 : 매일 새벽 모닝페이지에서 느꼈던 점을 기록하고 있다. 기록과 함께 올릴 이미지 작업은 AI에게 부탁해도 된다.
[오전-신문 읽기, 트렌드 조사]
- 해야 하는 이유 : 매일신문을 읽으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경제를 바라보는 눈을 키운다.
- 내가 직접 해야 할 일 : 신문을 읽으면서 어떤 기사에 눈길을 더 오래 머물게 할지, 인사이트를 뽑을지, 어떤 흐름이 내 일과 연결될지 판단한다.
- AI에게 맡겨도 되는 일 : 혹시 내가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주요 키워드로 자료를 정리한다. 저장 혹은 공유하고 싶은 기사는 URL 스크랩을 해놓고 AI에게 요약과 분류를 맡긴다.
[오후 - 기획과 자료 정리]
- 해야 하는 이유 : 나는 기획자다. 필요한 데이터들을 정리하고, 자료를 찾고, 적절한 이미지를 찾아 PPT에 넣는 것은 기획자로서 중요한 업무이다.
- 내가 직접 해야 할 일 : 목적과 관계에 따른 전체 방향과 스토리를 설계하는 것, 이것은 여전히 나의 몫이다.
- AI에게 맡겨도 되는 일 : 필요한 데이터들을 찾고, 정리하고, 출처들을 확인하는 것, 적절한 이미지를 찾지 못하면 AI로 제작하도록 맡긴다.
[저녁 - 글쓰기]
- 해야 하는 이유 : 브런치 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스레드에 글을 올리면서 글쓰기 연습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알아보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 내가 직접 해야 할 일 : 글을 쓰고, 나의 글에 남겨준 댓글을 읽고 대댓글을 남긴다. 관계를 맺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다.
- AI에게 맡겨도 되는 일 : 혹시 맞춤법이 틀리지 않았는지 다듬을 문장이 있는지 점검한다. 내가 쓴 글들을 다 아카이빙 하여 추후에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 소재의 팁을 받는다.
처음에는 단순한 분류 작업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적어보니 의외로 큰 차이가 보였다. 어떤 일은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습관처럼 붙잡고 있었던 것들이었고, 어떤 일은 AI가 보조 역할만 해도 훨씬 가볍게 처리될 수 있었던 일이었다. 반대로 내가 중요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일이 사실은 나만이 할 수 있는 본질적인 일이기도 했다.
AI에게 맡겨야 할 일을 덜어내고 내가 꼭 붙잡아야 할 일을 다시 품는 것, 그 단순한 행위가 나를 더 주체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 중이고, 훨씬 더 똑똑해질 것이다. 오늘 본 AI가 제일 성능이 떨어진 AI라는 말이 있다. 지금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툴들이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그때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어떤 인간으로 남고 싶은가?
답은 거창하지 않다. 내 하루하루의 태스크 속에 있다. 새벽의 기록, 오전의 선택, 오후의 기획, 저녁의 글쓰기, 이 작은 구분들이 나를 보조하는 AI와 함께 모여 더 빠르고, 더 똑 부러진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줄 것이다.
AI가 아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