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차이가 사라지고 AI가 대신 답하는 시대
몇 달 전, AI를 업무에서 꽤 잘 쓰시는 분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분께 물었다.
AI 시대가 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뭐예요? 어려움이라든지, 시장의 변화라든지..
보통 이런 질문을 받으면, “AI 때문에 일의 효율이 올라갔어요.” 와 같은 답을 해주신다. 그런데 그분의 대답은 나에게 꽤나 큰 인사이트를 줬다.
예전에는 개인 아카이빙이 정말 중요했죠.
왜냐면 그게 다 자산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동일선상이에요.
AI에게 물어보면 다 대답해 주니,
나만의 아카이빙이 필요 없어졌어요.
내가 서비스 기획 일을 할 때, 자료 하나하나가 정말 중요했다. 남들이 쉽게 볼 수 없는 자료일수록 더 귀했고, 내 노트북 안에 쌓여 있는 것들이 곧 내 경쟁력이었다. 하나하나 연도별로 정리하며 쌓여가는 자료들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UI/UX의 아이디어와, 색 조합, 그리고 각 기획에 맞춘 스토리보드들은 쉽게 공유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AI가 등장하면서, 더 이상 특정인의 자료나 경험만이 자산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신입이라도 심지어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AI에게 물으면 빠르게 답을 얻을 수 있다. 몇 번이고 뒤지며 찾고 찾았던 내용들을, 그것도 정리된 형태로, 때로는 더 정확하게 말이다.
그분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카이빙 자료들은 보물이었어요. 그런데 저도 안 찾아봐요.
AI한테 물으면 훨씬 빨리 나오거든요.
그러면서 동료들과의 카카오톡 방에서도 더 이상 일에 관한 질문들이 올라오지 않는다고 했다. 본인 또한 물어보지 않는다며.
이 말이 너무 인상 깊었다.
우리가 모두 동일선상에 서 있다는 것.
예전에는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 선배와 후배를 구분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AI를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며칠 전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 김햄찌’라는 영상을 보았다. AI로 만든 귀여운 햄스터 캐릭터가 등장해 직장인의 하루를 재치 있게 표현하는 콘텐츠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귀엽다”정도의 반응이었다. 몇 편을 보다 보니 그 안에서 묘하게 웃픈 직장인들의 현실이 전해졌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말이다. 그 콘텐츠를 보면서 나도 ‘맞아, 나도 저랬어’라며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놀란 건 두 가지였다.
AI로 캐릭터를 만들고, 영상을 제작하고, 심지어 자막까지, 대화까지 손쉽게 입힐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전문가 영역이었던 영상 제작이 지금은 진입 문턱이 사라진 셈이다. 그뿐인가, 스레드를 보다 보면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간단한 프롬프트 만으로 제작이 간단한 수준이다. 최근 ‘나노바나나’가 열풍이었는데, 제미나이에서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캐릭터의 일관성을 가지고 이미지를 생성하고, 영상을 만드는 것이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되었다.
영상 자체는 AI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제작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앞서 적은 것처럼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직장인의 뼈아픈 현실과, 웃음 섞인 일상 공감을, 그렇게 리얼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사람의 관찰과 스토리텔링의 능력이었다. 이 영상을 보면서 느낀 건, 앞으로의 시대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을 넘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훨씬 더 중요해질 거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글쓰기 연습, 기획의 힘, 현실을 담아내는 감각이 없다면 AI가 아무리 뛰어난 도구를 주어도 공감을 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AI가 만들어내는 답은 사실 비슷하다. 누가 물어보든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차이는 어디에서 생길까?
그것은 ‘나다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내가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 내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 이야기를 풀어내느냐, 그곳에서 차이가 생기게 될 것이다.
AI는 우리 모두를 일직선 위에 세워놓았다.
그 위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힘은 오히려 인간의 고유한 능력, 즉 나만의 결을 지켜내는 힘이다.
AI 시대가 무섭게 빨라지고 있다.
누군가는 두려움을 말하고, 누군가는 효율을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모두가 같아지는 시대.
그래서 나는 더 나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