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치를 멈추게 한 단 하나의 장면
오늘은 어떤 컬러로 하실까요?
익숙한 질문이었다. 매달 한 번,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네일샵을 찾았다. 계절과 내 기분에 맞는 예쁜 색을 고르고, 손끝을 다듬는 그 몇 시간은 마치 내가 특별한 대우를 받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이 작은 루틴이 내게 주는 위로가 꽤 컸다.
그날도 여느때와 똑같이 어느 색을 하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손에 힘을 뺀 채 조용히 케어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큰 창 너머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유리창 너머에 한 중년의 남성분이 내가 케어받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계셨다.
한참을 안을 들여다보시더니, 마치 결심이라도 하신 듯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그리고 다소 수줍은 말투로 자신의 손을 내밀며 말하셨다.
제가 막노동을 하는데요,,, 이런 손도 케어 받으면 좀 깨끗해질까요?
순간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분은 그저 케어가 가능한지 물었을 뿐인데, 가게 안에 있던 모두가 잠깐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손을 바라보았다. 굳은살이 박히고 손톱은 조금 갈라져 있었다. 거칠었지만,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손. 하지만 이상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중요한 일이 있으신가?' 혹시 상견례, 혹은 오랜만에 만나는 누군가를 위한 준비였을 수도 있고, 네일샵이 아무래도 여자가 많이 오는 공간인데, 손끝을 정돈하고 싶다는 그 말이, 얼마나 용기였을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늘 친절하던 네일샵 언니가, 그 손을 바라보며 이야기 했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그런 건 안 해드려요. 나가주세요.
말투는 정중한듯 했으나, 얼굴엔 딱딱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가 너무 불편해졌다. 예쁜 손을 만들어주는 이 공간이 어떤 손은 환영하고, 어떤 손은 거절하는 곳처럼 느껴졌다. 나는 말없이 그분의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며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는 그 모습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음에 남는다.
왜냐면 그 손이, 실은 우리들의 아빠, 내 아빠의 손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도 막노동은 아니지만, 평생 몸을 쓰는 일을 해오셨다. 그래서 아빠의 손은 늘 거칠고, 굳은살도 많다. 손톱 주변은 마르고 종종 상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아빠의 손이 더럽다고, 부끄럽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 손 덕분에 내가 자랐고, 배부르게 먹을수 있었으며, 공부할 수 있었다.
네일샵에서 마주한 그 아저씨의 자식들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향한 단호한 거절이 나에게도 상처가 되었다.
예쁜 손을 만들어주는 이 공간에서, 그 언니는 어떤 손은 아름답고 어떤 손은 그렇지 않다고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거칠고 투박한 손을 ‘관리 대상’이 아닌 ‘관리 제외’대상으로 여기는 태도가 너무도 냉정하게 다가왔다.
그저 작은 하나의 사건이었는데도, 네일케어에 대한 기쁨도 마음도 식어버렸다.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론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예쁜 손이 전부가 아니란 걸 다른 누군가의 손을 통해 배운 것 같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까지 매달 예약을 하고, 오늘은 어떤 컬러로 할지 고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은 분명 나에게 작은 기쁨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네일케어가 위로이고, 루틴이고, 자기 자신을 아끼는 방법이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안다. 지금도 그 시간을 누리는 분들에게 어떤 판단이나 옳고 그름을 말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나에게는 그날의 일이 오래 남았고, 그 기억이 손끝을 꾸미는 즐거움보다 더 크게 자리잡게 된 것뿐이다. 그건 내가 느낀 방식일 뿐이다.
소소한 기쁨은 언제나 필요하다.
나는 그날 이후로, 또 다른 방식의 위로를 찾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