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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Nov 30. 2021

강화 사람의 소울푸드 2, 속대 지짐

일 년에 딱 한 번 김장 날만 먹지만 강화 사람이라면 꼭 생각나는 음식

 어릴 땐 입에도 대지 않던 음식 중 하나가 '속대 지짐'이다. 사실 김장에도 별 관심은 없었다. 맵고 짠 익지 않은 김치를 먹어보라고 내 작은 입 앞에 엄마가 대주던 쌈이 싫어 고개를 달랑달랑 흔들면, '이담에 크면 없어서 못 먹는다'라고 하셨다. 김장을 하는 날은 어김없이 커다란 곰솥에서 부글부글 오랫동안 끓고 있던 그 꼬릿 하고도 달큼한 냄새가 어린 내겐 질색이었다. 아버지와 할머니는 김장하는 날이면 속대 지짐만 찾으셨다. '구수하다'라고 하셨다. 하지만 김치찌개도 아니면서 김치찌개인 척하는 이 음식이 어린 나는 도무지 입에 맞지 않았다.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끝내준다! 먹어보라'라고 강요했던 음식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이 속대 지짐이다. 물컹한 배추의 식감과 비릿한 젓갈의 냄새가 밴 이 어른들의 음식. 어머니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니 매 년 김장 때마다 속대를 지졌지만 막상 본인은 달착지근한 무를 잔뜩 삐져 넣고 얼큰하게 푹 끓인 동태탕을 드셨고 속대 지짐은 드시지 않았다. 고집 센 충청도 아기씨는 아직도 순무김치와 속대 지짐을 즐기지는 않으신다.


 김장을 하는 바쁜 날 커다란 솥에 절인 배추를 칼로 싹둑 오려 노란 속을 죽죽 찢어 넣고 양념소를 한 대접 섞어 물을 붓고 푹푹 끓이면 완성되는 속대 지짐은 일단 내가 아는 한 전국에서 어디에도 없는 음식이다. 뭐 그리 대단하지도 않지만 일 년 중 꼭 김장하는 날에만 맛볼 수 있는 이 음식은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가을무와 가을배추는 그 단 맛이 극강이다. 거기에 온갖 야채와 육수 그리고 갖은양념이 다 들어가고 생새우까지 가득 든 김장 양념에서 우러나오는 시원한 맛을 알게 된 것은 나 역시 어른이 되고 난 후였다. 이제는 김장 시작도 하기 전에 속대 지짐에 넣을 배추와 양념소를 따로 담아 먼저 확보하곤 한다. 나에게 장가를 온 우리 경상도 남자도 '이제는 엄마가 한 것 못 먹겠다'라며 경상도 음식은 서서히 잊어가는 중이다. 그는 이제 전국구 입맛을 넘어 다국적 입맛이 되었다. '순무김치'도 '고수'도 잘 먹고, '속대 지짐'만으로도 몇 끼니를 잇는다. 딸아이들에게는 돼지갈비나 등갈비를 넣어 푹 지져 주면서 맛을 들였다. 지금은 딸들도 어른이 되었다. 그걸 먹으면서 '시원하다'라며 좋아한다.


 속대 지짐은 김장을 하지 않으면 먹어 볼 수 없다. 김치를 사서 먹는지 오래된 친구는 속대 지짐을 '어릴 때 별로 맛없던' 추억의 음식으로만 기억한다. 강화를 떠나 충청도 색시를 만난 도시의 친구도 속대 지짐을 잊고 있다가 '생각나니?'라는 내 물음에 그제야 아! 한다. 이 음식 이름 하나로 나는 친구와 별의별 이야기를 길게 통화로 하였다. 서로 얼굴을 본 지 몇 년이 되어가지만 '속대 지짐'이 우리를 이어 주었고 고향 마을 옛집과 텃밭 이야기로, 친구들 근황으로, 그리고 국제 정세로까지 대화를 확장시켰다.


 나에게 '속대 지짐'은 아버지를 기억하게 해주는 고마운 음식이다. 어느 신부님께서 그랬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분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는 것이라고. 아버지의 최애 음식으로 이제는 나와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앞으로 딸들과 딸들의 배우자도 그리고 손자에게도 '끝내준다! 먹어봐라'라고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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