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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an 05. 2022

다시 심긴 꽃

여보, 칼랑코에도 마다가스카르가 원산 지래요.

  11월 초, 갑자기 한파가 몰아친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진료소 마당에 두었던 화분들을 안으로 들여놓으며, 1,000 원짜리 포트 네 가지 색을 고루 사서 봄부터 한여름 폭염을 견디고 가을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본전을 뽑았던 '칼랑코에'를 보며 잠시 망설였다. 지저분하게 마르고 검게 변한 이것들을 들여놓지 말고 미련 없이 쏟아버려야 할까? 하지만 쌀쌀한 초겨울까지 포트마다 두어 송이씩 남은 꽃이 철부지처럼 내게 삐약거리고 있었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모두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형편없이 시들고 마른 잎과 가지들은 잘라버리고 싱싱하게 살아있는 새 순만 잘라 빈 화분에 묻었다. 칼랑코에 역시 다육이 종류여서 심는 방법은 같았고 친구가 나의 결혼 기념 선물로 사 준 다육 화분이었지만 그 다육들은 모두 녹아 없어진 헌 흙이 담겼던 화분이었다. '네 힘으로 살아남는다면 돌보아 주어야지'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다시 심긴 그날부터 칼랑코에는 마치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는 듯 싱싱하게 살아 일제히 꽃을 피워냈다. 다시 심긴 화분이 어떤 모양이든, 그 안의 흙이 헌 흙이든 새 흙이든 상관하지 않고 이 작고 생명력 강한 꽃들은 마치 이곳이 원래 제가 있던 자리인양 여전히 삐약거리며 노란 꽃들을 피우고 즐겁게 합창하고 있다. 


 칼랑코에의 원산지는 멀리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란다. 누군가 멀고 먼 마다가스카르에 가서 처음 이 꽃을 발견하고 흙과 함께 떠서 훔쳐 갔겠지. 그리고 나처럼 순을 잘라 심고 또 심기를 반복하여 칼랑코에는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갔으리라. 보통의 화분의 식물들은 옮겨 심으면 몸살을 한다. 더러 시들어 말라죽거나 뿌리가 곯아 썩어 죽기도 한다. 다시 심긴 꽃들이 자릴 잡고 살아나기 위해서는 조금 더딘 시간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아프리카 동부 해안가에서 이 머나먼 한국의 송산마을까지 자손을 퍼뜨린 화분은 그 정도는 '껌'이라는 듯 아무런 거부반응도 없이 척, 하니 낯선 화분에서 자릴 잡았다. 해가 잘 드는 진료소 창가에 칼랑코에를 놓고 한겨울에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며 신기하여 매일 짬짬이 작은 꽃들을 들여다본다. 


 칼랑코에의 원산지가 마다가스카르라는 사실을 안 이후로는 이 꽃을 볼 때마다 남편을 생각하곤 한다. 남편의 원산지(출신 고향)는 경북 상주이다. 지도 상으로 강화도에서 대각선으로 그어 닿는 곳이다. 멀기도 멀다. 지금이야 도로가 발달하여 4시간이면 도착하지만 결혼 초만 해도 7시간이 걸렸다. 처음 인사를 하러 갔던 날이 생생하다. 그렇게 멀리 한반도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보는 것은 여행을 갈 때뿐이었다. 나도 물론 시가에 가는 길이 고생스러웠지만 남편은 머나먼 곳으로 주거지를 옮겨 부모 형제를 떠나 고독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께서 처음 상견례를 하는 날, '막내 하나는 뺏겼다'라고 생각했다 하셨다. 사실 그랬다. 어머니는 막내아들을 강화도에 빼앗겼다. 남편이라고 어찌 고향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지 않겠는가? 군 동기나 선후배가 남편의 고향 인근을 전출을 갔다고 할 때마다 어찌 부럽지 않았을까. 하지만 마치 마다가스카르 출신의 칼랑코에처럼 화분도 흙도 탓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릴 잡고 자신만의 꽃을 피우려고 애쓰며 살아간다. 상주에서 강화도로 남편을 빼앗아 온(?) 나는 그런 남편이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군 생활 30년을 정리하고 명예퇴직 7년 차가 되는 남편이 일주일 전 이직을 했다. 많이 힘들어했다. 코로나와 재정난 그리고 정리 해고의 수순을 우리가 겪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남편을 지켜보며 남들에게는 그렇게도 부들부들하게 하던 위로를 하지 못했다. 내가 보아 온 지난 27년의 나날 중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남자란 걸 잘 안다.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누구의 잘못도 아닌 건 간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모습은 어찌 그리도 초라하고 외로워 보이는지.... 한 집안의 가장을 정리 해고하는 원만하고 그럴듯한 모양새를 구사하는 기술이 없었던 그분들에게도 신의 은총을 빌어 본다. 다행히 곧바로 새로운 직장을 구하긴 하였지만 정리 해고를 당한 남편의 마음은 정작 정리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혼자서 2박 3일 피정을 자녀 오겠다고 했던 남편의 3일은 허락되지 못했다. 하필 출발하기로 한 날 아침에 강아지 두부가 세상을 떠났다. 슬퍼하는 나를 위해 그는 여행을 포기하고 내 곁에 있어 주었다. 나는 괜찮다고, 다녀오라고 했지만 그는 '다 풀렸어. 괜찮아졌어'라며 또 새로운 화분에 스스로를 기꺼이 옮겨 심어지는 것을 온유하게 받아들였다. 나보다 열 배는 훌륭한 남자랑 내가 산다.

"여보, 칼랑코에 원산지가 아프리카 동부 해안의 마다가스카르라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래? 멀리서도 왔다.... 근데 칼랑코에가 뭐지?"

남편은 그저 그렇게 말하고는 새로운 일터에서의 새 업무에 집중할 것이다. 나는 당분간 그를 위해 도시락을 싸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마음을 쓸 예정이다. 남편을 위해 해 줄 것이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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