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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Jan 02. 2022

죽 쒀서 개 준 일 년이지만

나는 작년보다 조금 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새해를 정신없이 맞았다. 해마다 내 생일에 하던 건강검진을, 도무지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12월 중순에야 가까스로 건강검진 막차를 탔는데 분변 검사 결과에서 잠혈이 나왔다. 생각만으로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지만 의료인이 스스로의 건강은 방치한다는 남편의 염려에 결국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하기로 했다. 아뿔싸! 나처럼 올해가 가기 전에 건강검진 막차를 타려는 이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예약이 꽉 차 마지막 31일에야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니 2~3일은 식이요법을 해야 했고 검사 직전 날은 아침 점심 죽을 먹고 저녁은 금식을 해야 했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찝찔한 용액을 먹어야 하니 한 해의 마지막 날을 화장실 변기를 탄 채 맞게 되고 말았다. 남들은 새해 계획이며 지난해 반성으로 엄숙하고 무게 있게 보내는 모양인데 나는 이게 뭔가, 변기나 타고 앉아 내 대장을 싹 다 비워내기 위해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밤을 새우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지만 않았어도 남편과 함께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며 한 해를 돌이키며 울고 웃는 연말이 되었을 터였다. 남편은 나를 놀리고 먼저 들어가 잠들었고 나 역시 나의 놀란 대장이 잠들기를 기다리며 늦은 밤까지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쏟아지는 잠에 못 이겨 잠시 눕기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잠이 들었던가, 알람이 울린다. 새벽 4시. 다시 한번 용액 한 포를 물 500ml에 타서 마시는데 넘어가질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나, 마셔야지. 꾸역꾸역..... 소리 죽여 구역질을 두어 번, 다시 물 500ml씩 두 번 더 마시고 바로 신호를 받는다. 서둘러 화장실로 갔다. 저녁 대신 마신 용액이 효과가 참 좋다.... 아침과 점심에 흰 죽만 먹길 잘했네. 김치의 유혹을 잘 견뎠어. 저녁도 금식하길 잘했다. 안 그랬으면 그 과정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모두 잠든 새벽 홀로 깨어 있자니 저절로 깊은 상념에 잠긴다. 나도 모르게 의식이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고 있었다.


 분변 검사에서 충분히 잠혈이 나올 수 있었다. 교동도 파견근무 다음 날 코로나19 선별 진료소 근무를 했고 그다음 날 건강검진을 받았다. 피곤해서 몸살이 났지만 그날이 아니면 건강검진받을 시간이 없었다. 그것도 오전엔 진료소에서 환자를 보고 오후 2시까지 금식을 하고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컨디션이 그렇게 안 좋은 상태로 검진 결과가 정상 수치인 항목이 신기한 지경이었다. 어쨌든 지난 일 년이 죄다 그런 나날들이었다. 연간 쓸 수 있는 휴가 일수가 21일이다. 그러나 여름휴가 3일, 겨울 휴가 3일을 쓰는 것도 온갖 신경을 다 써가며 겨우 사용했다. 시댁 큰 형님의 예쁜 조카딸 결혼식도 가지 못했다. 전 직원 관외 출타는 사전 보고를 하라고 했다. 보고를 했더니 '안 갔으면 좋겠다'라는 답변이었다. 고등학교, 초등학교 전수 검사를 위해 출장을 나가 D 레벨 방호복을 입고 땀에 절어가며 '샤우팅'하는 어린이에게 '딱 한 번만 하게 해 달라'라고 애원해야 했고 매월 1회 코로나 선별 진료소 근무를 나가 하루 100명~200명의 검체 채취를 했고 진상 손님들을 달래어 정리해야 했고 자가 격리자 출장 검체 채취를 나가서는 이웃 주민들의 민원도 받았고 7월부터 지금까지 주 2회 나가는 진료소 파견 근무를 나가 두 배의 업무를 감당했다. 무슨 쉬는 시간이 있었을까. 신세 딱하다.


 연말쯤이면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마스크를 벗게 될 날을 기대했다. 지금도 여전히 어르신들은 진료 의자에 앉으시면서 동시에 쓰고 오신 마스크를 벗으며 말을 꺼내신다. 귀가 잘 안 들리시니 본인도 답답하시겠다. 해외여행을 위해 환전해 두었던 100달러 지폐는 멀리 떠나는 이들에게 한 장씩 선물했다. 해외교포 사목을 떠나시는 신부님들께, 신혼여행 가는 후배에게, 딸을 결혼시키고 다시 돌아가는 베트남 살이 친구에게, 그리고 코로나로 직업을 구하지 못해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는 러시아 아가씨 소피아에게..... 백 달러는 이젠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이걸 다시 쓸 날이 금방은 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가지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일 년 내내 뭔가 빠듯하게 쉬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충돌하며 '나이 먹고 할 일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을 달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분변에서 잠혈이라니.... 지난 일 년 내내 고생하여 죽을 쑤어 개에게 쏟아주는 기분이다.


그렇게 2021년의 마지막 날을 세상 번잡스러운 병원에서 죄인처럼 처량하게 내 이름이 불릴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주사 한 방에 나는 나에게 어떤 검사 어떤 처치가 가해지는지에 대해 까맣게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 오전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냈다. 물론 나의 위와 대장은 여전히 안녕하다니 마치 난생처음 보는 내과 전문의 덕분 인양 몇 번을 감사하다고 말하고, '태어날 때부터 죽'이 분명한 본죽에서 '매생이굴죽'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죽을 앞에 놓고 호호 불어 입에 넣으며 그제야 안도한다. 맛이 좋다. 눈물이 핑 돈다. 이 정도 검사도 이렇게 고단하니 나이 더 들어 진짜 병이 든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도 든다. 병원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그 와중에도 병원에 와 있다는 내게 '주말에 먹을 혈압약이 떨어졌다'는 마을 어르신의 전화. 시아버님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던 순간에도, '조금만 늦었으면 약 못 지을 뻔했네'라고 하던 시골 사람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다. 단 하나 변한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이다. 나는 작년보다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조금 더 현명해졌을까? 조금 더 너그러워졌을까?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되었을까? 아, 그것은 조금 더 생각할 부분이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하나 있다. '속도'이다. 확연히 떨어지는 속도.... 일도 생각도 행동도 속도가 떨어진다. 덩달아 노여움도 잔소리도 비난도 속도가 떨어진다. 그럭저럭 또 주변인들에게 그리 큰 폐를 끼치지 않을 정도이니 아직은 괜찮다.


그러니 나는 작년보다 조금 더 그런 사람이 되어 보련다. 쉬지 않고 흐르는 삶,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과한 것은 덜어 내어 부족한 쪽으로 보태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면 최소한 나 자신의 평화 정도는 갖게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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