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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Apr 10. 2024

서투름과 미숙함 ②

서툴러서 아픈, 미숙해서 곱씹는, 그러나 후회하지 않는


 그렇게 사랑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며 혼자의 발걸음을 씩씩하게 내딛이며 살아온 나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원래 누군가를 보고 좋아함의 감정까지 나아가는 게 쉽지 않은 내가 마음에 누군가를 들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잔잔한 파동 같았는데 그 파동이 점점 진폭을 크게 하고 앞으로 옆으로 끊임없이 나아가 나를 계속해서 흔드는 사람이었다. 그 파장의 떨림이 섬세했음을, 미세한 진동이 계속 나를 울리고 또 흔들었음을 20대에 들어서 한 번도 그런 적 없었기에 그것이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신호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걸음을 계속한 나는,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어린아이 같았다.


 줄곧 생각해 왔다. 연애를 하지 않고 사랑에 닫혀있던 내내 나의 시기와 나의 감정에 따르는 삶을 살면서 늘 자신은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언젠가 내가 사랑함에 마음이 생겼을 때,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을 때 나의 경험의 부재가 상대의 속도와 밀도와 달라서 그보다 서투름으로 발현되어 상대를 놓치게 될까 봐 그게 유일하게 염려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내 나의 사랑의 방식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고, 그런 모습을 어여삐 볼 줄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며 그게 아니라면 그저 그와 나는 인연이 아닌 것뿐이라고, 나는 불안을 거두고 나의 속도로 그때를 기다리며 바르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래서 그가 내 안에 들어왔을 때 그 마음이 점점 커지는 걸 느낄 때 나는 줄곧 나의 속도를 성찰했다. 마음이 투명하게 보이고, 내 안의 마음의 크기만큼이나 그 사랑이 부담스럽게 표현되지 않도록, 그래서 혼자 너무 빨리 가지 않도록 천천히, 조금씩 다가가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사랑이 많은 사람이 사랑을 품었을 때 그 사랑은 마치 아주 오랫동안 지하에 고여 머물며 흐르기를 반복하던 물이 어떤 우연으로 지상으로 뿜어져 나왔을 때,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쳐 오르는 것과 같이 사랑이 많던 자리에 새로이 생겨난 사랑은 마치 증식되는 미생물처럼, 지리산 산골의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 아주 맑고 순수한 샘물이 퐁퐁 솟아오르는 것처럼 계속 계속 커지고 넓어지고 밖으로 흘러나왔다.


 내내 조심하고 신중하고 차분하다 그만 다정해버린 순간을 계속 후회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나의 다정을 검열했지만 검열의 결과마저도 다정해버렸다. 그 다정과 친절을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후회는 할지라도 나의 섬세함과 순수한 마음밭을 부정하고 탓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투명할지라도, 때론 아주 많이 순수할지라도 나의 그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과 아름다울 감정은 나의 어여쁨이니까 계속 계속 아주 오래도록 예뻐하고 싶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 모습을 헤집고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나의 방식을 그 자체로 가치롭게 바라볼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이 과정은 내게 꼭 필요한 통과의례였다. 사람의 마음이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고 꼭 막아둔다고 제자리에 잔잔하게 고여있는 것도 아닐 테다. 그런 폭발적인 감정의 요동과 표현을 거치며 실수하고 서툴러 보고 후회하며 비로소 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진실한 마음과 따뜻하고 깊은 감정은 나의 자산이고 보물이지만 그런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보여줄 때 조금 더 능숙하고 돋보이게, 적당한 속도로 표현해야 함을 배웠다. 나의 미숙함은 결국 서투름이 되었지만 그 서투름은 여전히 어여쁘고 귀하다. 그 서투름을 귀엽게 바라봐 줄 첫 상대를 만났다면 더없이 행복했겠지만 나는 나의 이 서투름이 빚어낸 작고 아픈 실수와 불편이 꼭 나 같아서 어쩌면 기분이 좋다. 늘 처음은 생각한 것만큼 멋지지도 완벽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은 나 같아서, 늘 저 깊이까지 다 닿기를 원하지만 항상 그 처음 앞에서는 표면을 훑고 어지러워하는 내가 사랑에도 꼭 똑같이 있어서 어쩌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늘 두 번째는 더 깊이 정진하는 내가 있음을 알기에, 앞으로 다가올 사랑 앞에서는 조금 더 성숙하고 단단해진 내가 있을 것을 알기에 나는 두렵지 않고 아프지 않다. 나의 사랑을 응원하는 내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든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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