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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Apr 12. 2024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하여

좋아해 =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과정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좋아함의 감정을, 그 뜨겁고 아리고 모순적인 감정을, 내 안에서만 느껴지는 그 복잡하고 미묘하고 열렬하고 빛처럼 환하고 변동성이 큰, 커지면서 오르내리락 하고 오르내리락 하면서 동시에 무한히 확장하는 그 이상하고도 찬란한 감정을 어떻게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어떤 표현으로 그 마음을 담아낼 수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기존의 내 세상을 부수는 일 같다. 내 항력을 거슬러서 기꺼이 무언가를 하게 하는 힘, 의욕 없이 누워있다가도 그 사람이 있는 자리에 오지 않겠느냐는 문자 하나에 거짓말처럼 몸을 튕겨 일어나는 것, 내내 지쳐 금요일 퇴근 저녁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그 사람을 보기 위해 피곤한 줄도 지친 줄도 모른 채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것, 시선이 가는 줄도 모르게 계속 그 사람만 바라보다 오는 것, 내 시선을 훔치려 해도 훔쳐지지 않아 슬쩍슬쩍 보다가 무력하게 한참을 그 사람에게 시선을 머물고 있는 것, 그러다 그 사람이 고개를 돌린 틈을 타 하염없이 그를 내 눈에 담으며 떨려하는 것, 그 사람이 어떤 음료를 시키는지 기억하게 되는 것, 그 사람이 내뱉는 모든 말과 행동에서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기억하고 내 섬세함의 능력이 극대화되는 것, 그 사람이 좋아하는 과일을 매번 가방에 챙겨 넣고 전해줄 타이밍을 재다 건넨 귤 하나에 내 마음을 꽉 채워 보내고 그 자체로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전달되지 못한 가방 가득 무거운 그것이 꼭 내 마음 같아서, 느껴지는 무게만큼 내 마음도 한없이 가라앉는 것, 걷잡을 수 없는 마음에 내 안의 용기를 확인하게 되는 것, 그 마음을 표현하지 않고는 안되어 물을 가득 머금은 물관처럼 부풀어 오르다 두둥실 떠오를 것 같은 나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것, 덜컥 말을 걸어버리고 그 틈을 타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을 영원처럼 느끼다 그만 어지러워지는 것, 내내 그 눈이 잊혀지지 않아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마주치며 말하고 싶어 하염없이 그만 바라보다 오는 것, 자연히 만들어진 마주침의 순간에 나만 아는 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조심스럽게 그 눈을 바라보며 한 마디 한 마디 차분히 내뱉게 되는 것, 그와 나눈 모든 순간이 계속 내 안을 타고 흐르는 것, 찰나가 사진처럼 선명하고 강렬하게 남아 내내 그 잠깐의 기억의 조각들이 살아 숨 쉬다 순서를 달리하며 내 안에 펼쳐지는 것, 밀어낼 틈도 없이 그 모든 감각들에 저항 없이 순순해지는 것.


 거절 후에 남겨진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건 그 사람의 아닌 마음과 냉혹했던 거절의 신호와 상관없이 계속 내 마음의 시선과 방향을 확인하는 것, 그 곤욕스러움을 견디면서도 어찌할 수 없이 계속 그에게로 흘러 들어가는 것, 그 아픈 마음을 견디면서도 계속, 계속 그를 좋아하는 나를 감당하는 것, 그럼에도 얼굴 한번 보고 싶어 마주침의 우연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계획하고 상상하며 기뻐했다가 주저하게 되는 것, 그의 출근 시간을 떠올리며 그 안녕함을 바라게 되는 것, 퇴근 시간 괜히 그 앞에서 서성거릴까 하다가 막상 마주치면 얼어버릴 내가 떠올라 더 어색해질 우리 사이를 염려하며 아무것도 안 하게 되는 것, 자연스러워지자 되뇌이면서도 마주침을 그렇게나 많이 상상하고 그렸으면서 막상 그가 내 눈앞에 서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온몸이 굳어버리는 것, 온 신경이 멍해져 하던 일을 접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 돌아오면서도 그 순간을 곱씹고 내 행동의 경우의 수를 살피고 상대의 행동에서 그 마음과 이유를 읽으려 하는 것, 멀리서도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심장이 요동치고 온 신경이 살아나고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다 내가 다시 온통 그로 꽉 차는 것.


 결국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부지런해진다는 것이다. 기존의 내 세계의 질서가 붕괴되고 나로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행동으로 내가 작동하는 것, 기존의 관성을 거스르는 일, 피곤과 지루를 모르며 이유와 필요를 따지지 않고 기꺼이 무엇이든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거절당해도 계속 좋아하고 있는 남겨진 마음이란 건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이 그렇게나 진실했음을 증거 하는 것이고 끝내는 누군가를 그렇게나 열렬하고도 진심으로 좋아했다는 사실이 내 안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자리하는 것, 끝내는 내가 차오르는 소중한 경험이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그와 온종일 지내며 그를 내 안에 담아둔 채 바라보고 곱씹고 조심스레 대하다 놓아주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나는 그래도 행복하다. 감사하다. 여전히 그를 보면 마음이 울리고 호흡이 흔들리고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불안정해지지만 이전보다 떨리지 않고 조금 더 편하게 숨을 내쉬며 무엇보다 두둥실 떠오르지 않는 내가 거기 있다. 나만의 방식과 속도로 새로운 아픔을 통과하고 해소해가고 있는 내가 대견하다. 나의 성급함이 이 관계를 망쳐버렸다고 생각해 자책과 후회로 하루하루를 아프게 보내던 나는 여전히 가엾고, 망가진 것 같은 관계의 결과물은 참담했지만 그 경험이 내 삶에 있는 것도 어쩐지 기분이 좋다.


 내가 조금 더 천천히 다가가 내 다정을 조금씩 자연스레 보여주었다면 그가 도망가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으며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나는 꼭 이번과 같이 행동했을 것 같고 그의 답도 알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고백 전에 그 사람의 마음을 너무나 확실하게 알 수 있어 다행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언젠가 내가 많이 정돈되면, 능숙과 노련함이 아닌 그 성숙함에 깊이를 더해 그 감정을 다루는 것이 내 부족이 되지 않을 때, 정말 내 마음을 은은하고도 진정으로 고백할 수 있는 상대가 내 마음에, 내 눈앞에 있기를 바래본다.

이 순도의 마음을 받을 이는 세상의 복을 다 가지고 태어난 사내일 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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