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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Apr 15. 2024

자꾸만 따라오는 그

그가 있어 행복했던, 그가 있어 무너지던

* 월수금 연재로 변경되며 지난주 금요일 10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하여'가 발행되었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반년 동안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그가 좋아지던 첫 순간부터 혼자 좋아하는 내내 그리고 마음에서 내려놓은 지금까지 그는 나를 계속 붙잡고 내가 그를 떠나지 못하도록 나를 휘감았다. 그렇다, 나는 거절당한 그 순간까지도 그에게 매여 있었다. 한순간도 그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과 매 순간 함께 호흡한다는 걸까. 그를 좋아하는 내내 그가 생각나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그가 생각나서 기뻤고 그로 인해 나는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내 마음이 태어나서 처음 밝아진 느낌이었다. 이상하고 신기한데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늘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었고 외로웠는데 사람의 존재로 내가 채워질 수 있다니 이건 내게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를 이편에서 몰래 좋아하고 있을 때는 그가 자꾸 생각나는 것이, 그가 내게 계속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이 삶의 활력이었다. 모든 순간에 그가 침투해 오는 것이 반가웠고 설렜고 기뻤다. 그를 보고 있지 않아도 그는 내 눈앞에 있었고 함께 있지 않아도 그는 내 옆에 존재하고 있었다. 자꾸만 따라오는 그가 너무 좋았고 그와 함께하는 일상 속 가득하게 느껴지는 그의 존재감에 내내 충만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가 따라와서 너무 힘겹다. 그가 내게서 멀리멀리 가버렸으면 좋겠다. 여전히 나는 그 사람을 무자비하게 좋아하는데, 내 마음이 그에게로 향하는 걸 막을 길이 없는데 그걸 안 해야 한다고, 그를 이제 좋아하면 안 된다고, 이 마음을 억지로 막아서야 하는 사실이 버겁다. 나도 어찌할 수 없게 하염없이 흘러가는 마음을 반대편에 서서 거둬야 하는 게 정말 너무 고통스럽다. 그가 계속 내게 나타나서, 내 옆에 붙어서, 온종일 나를 흔들어대서 행복했던 시간이 이제는 지옥이 되었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정리가 안 됐는데 너를 억지로 끊어내야 하는 게 힘겨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내가 어떻게든 정리하려고 했던 그 모든 노력들이 네가 예고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나는 바람에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가 다시 열심히 쌓아 올리고 또다시 와르르 무너지는 시간들이 반복되었다. 

 잠결에도 그 틈으로 그의 얼굴이 살며시 피어올라 나는 미소 지었고 그 잠깐의 행복만으로도 아주 오래 충전되었다. 그가 내 일상 어느 순간 예기치 못하게 들어와 선물한 찰나의 기쁨이 아주 오래 지속되는 충만함으로 전환되어 나를 충전시켰다.


 사랑한다는 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내 마음에 담는다는 건 온종일 그 사람과 함께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같이 있지 않아도 함께 하는 것 같고, 보고 있지 않아도 눈을 마주치며 서로를 향해 웃어 보이는 것 같고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 돌아보면 그가 서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의 상태는 마치 보이지 않고 곁에 없는 그에게 나의 매 순간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다가가 그와 마주 보고 시시콜콜하게 나의 하루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의 오늘을 궁금해한다. 그렇게 온종일 나를 따라다니는 그와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웃는다. 나는 그가 지금 뭘 하는지, 어떤 고단함을 견디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하나도 모르면서 그가 내게 그 모든 것을 털어놔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꾸만 내게 아른거리는 그를 내내 붙잡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이렇게 나를 따라왔으면 좋겠다고, 함께하고 싶다고, 함께 했으면 한다고 생각하다 그는 붙잡고 있지 않은, 나만 잡고 있던 그 손을 감각하고 그만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버린다. 공허의 한가운데 서서 그 손을 어렵게 어렵게 뗀다. 나만 놓으면 되는데 왜인지 나는 그를 놓으려고 할수록 그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더 들어간다. 꽉 움켜쥔다. 그를 놓고 싶은데 아직은 내 마음이 그를 붙잡고 있다.


 매일 나는 그를 포기하고, 그를 손에서 놓고, 이제 그로부터 도망친다. 그는 나를 붙잡고 있지도, 따라오지도 않았는데 나만 놓으면 그만인 이 관계를 나는 여전히 안간힘을 쓰며 잡고 있다가 다시 안간힘을 쓰며 놓으려 한다. 이 바보 같은 짓을 언제까지 하게 될까. 그가 나를 그만 따라왔으면 좋겠다. 내가 조금만 노력해도 되게 말이다. 그는 원한 적 없고 행한 적 없고 내게 말한 적 없는 그 끈질긴 뒤쫓음을 내가 끝내기에는 너무 어려우니까 그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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