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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부티 Apr 17. 2024

사랑이라는 것의 충만과 기쁨  그리고 무자비함

사랑의 다면


 사랑은 사람을 숨 쉬게 한다. 어떤 사랑은 지옥 같아서 사람을 못살게 굴고 나락에 빠지게 하고 자기 자신을 죽게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은 사랑의 힘을 믿고 싶다. 사랑은 고귀하고 위대하며 어떤 미움과 악도 물리친다고, 사랑만이 우리를,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말이다. 사랑을 할 때 사람들은 웃는다. 혼자서도 웃고 마주 보고서도 웃는다. 좋은 일이 없는데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있다. 별일 없음에 안도하고 늘 긴장한 상태로 호흡하던 사람들이 어딘가 편안해 보인다. 그들에게만 내려진 어떤 은총이 있는 것 같이, 그들만 아는 숨 쉴 구멍이 생긴 것 같이 나만 모르는 비밀 같은 오아시스가 그들에게는 있는 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뭘까. 사람은 왜 사랑을 하게 되는 걸까. 우리는 어째서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진 걸까.

 

 나는 사랑할 때 환했다. 오래 낫지 않던 몸이 기운을 차리는 게 느껴졌고 회복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마음이 아무는 게 느껴졌다. 신기했다. 사람에게서 받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주홍글씨같이 내 온몸 곳곳에 번져 있던 깊은 흉터가 흔적은 그대로 있을지라도 내게서 점점 잊힐 수 있다는 것이 생경했다. 내 안의 가장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과 에너지를 꺼내어 쏟는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됐다. 가장 어여쁜 마음을 쓰는 것이 사랑이기에 그 어여쁨이 자아내는 온기와 힘이 주변의 어둡고 시린 것들을 모두 덮는다는 것을, 어떤 사랑은 내게 위로와 위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누군가를 아낌없이 좋아하고 그 순도의 마음을 흘려보내며 깨달았다. 단지 누군가를 좋아했을 뿐인데, 상대를 향해 어마어마한 마음과 나의 양분을 쏟았는데 도리어 내가 환해지는 걸 보며 나는 사랑이 가진 힘을 알아 버렸다. 마음을 쏟는 일이 소모와 소진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랑을 끝내고 난 지금, 나는 사랑에 상처받고 마음을 그만큼이나 쓴 것에 대해 허무하기는 하나 비어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내가 그에게 쏟은 수많은 시간과 에너지, 그를 생각하며 보낸 나날들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쌓여간 편지지들, 그를 떠올리며 웃고 울었던 수많은 밤들이 떠오른다고 해도 나는 그것이 낭비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과가 실패였기에 내가 보낸 정성 어린 마음들이 후회가 되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야 할 일이 되고, 나의 소진이 되어 더 이상 사랑 같은 건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일들이 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를 좋아하며 아니 나의 사랑을 하며 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사랑의 속성에 대해, 사랑이 가진 힘에 대해 또 내가 얼마나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는 사람인지, 사랑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지, 얼마만큼의 사랑을 품고 태어난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기에 지금의 내 사랑이 가닿지 못했다 하더라도 나는 이 사랑을 후회하지 않으며 살아가면서 사랑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끝에서 다치고 아플지라도 사랑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 것을 알기에 언제고 나는 사랑의 충만 속으로 겁 없이 걸어 들어갈 것이다.


 사랑은 하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내가 품은 사랑의 크기를 가늠하게 한다. 사랑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총량이 맥없이 부서지는 걸 경험하며 나는 내 안의 사랑을 실감한다. 누군가를 정말로 좋아하게 되면 사랑에는 총량이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사랑에 한계란 없는 것이다. 내가 알던 나를 뛰어넘고 내가 예상할 수 없는 내가 되어 그 사람에게로 거침없이 돌진하는 나를 보며 어쩌면 사랑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때의 내 모습이 좋아서 계속하게 되는, 나에 대한 나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사람 때문에 설레고 그 사람과 마주 볼 때 긴장되는 마음들과 내 안에 몽글몽글 피어나는 간지러움이 좋아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그 감정과 감각들은 상대로 인해 피어난 것이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나의 상태이기에 나는 그런 내가 좋아서 사랑을 좋아하는 건지도, 사랑할 때 자꾸만 더 용감해지고 무모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건 결국 나를 가장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사랑이 하고 싶어질 때란 어쩌면 나를 가장 사랑하고 싶은 때가 아닐까.

사랑의 충만은 결국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 하나로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체로 충만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우리는 그토록 사랑 안에 거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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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랑이 나에게서 머무르다 끝날 사랑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사랑은 내 앞에서 얼굴을 바꾼다. 나를 하염없이 들뜨게 하고 하루 종일 세상의 이편과 저편을 쉼 없이 오가게 하며 하늘 끝까지 두둥실 떠오르게 한 사랑이 내 앞에서 태도를 바꾼다. 아주 냉담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내 문자가 답장을 받지 못한 채 남아 있고, 그와 마주했을 때 그의 얼굴에 스치는 냉랭함이 나를 얼게 만들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나는 네가 불편해’란 소리들이 귓가에 계속 들려올 때 사랑은 표정을 바꾼다. 그에게 나는 정말 아니구나,를 가감 없이 실감하는 그런 때에 사랑은 그 어느 때보다 무서운 존재가 된다. 사랑 앞에 울고만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내 사랑이 일방임을 확인하고 나아가 확실한 거절을 맞닥뜨릴 때 그러니까 이 사랑에 조금의 희망이나 가능성도 없음을 뼈저리게 느낄 때 내가 너에게 했던 좋아함의 표현과 다가간 걸음들이 다 사무치게 싫어지는 순간이 온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데 그래도, 나는 순간 이렇게 사라지고 싶은 마음들을 움켜쥐고 버티고 서 있다.  


 사랑이 무자비해지는 순간의 섬뜩함을 나는 안다. 사랑의 무자비함이 가진 파괴의 힘을 나는 안다. 사랑했기에 가질 수 있는 미움과 원망과 분노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어떤 미움과 분노도 끝에서는 소멸할 수 있지만 사랑에서 비롯된 미움과 원망과 분노는 불멸하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방식이기에 아무리 내 마음이 좋았다고 해도 내 표현이 잘못되어 범한 모든 실수와 잘못, 상대에게 가해진 상처들이 다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랑은 아름답고 그 자체로 순결하지만, 누구에게나 그 사람이 품은 사랑은 거룩하고 가치롭지만, 그것이 사랑으로 범한 우를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유로 덮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은 때론 자식에게 더 큰 상처를 낳고, 연인의 사랑은 상대로 하여금 다시는 사랑하고 싶지 않게 만들고, 친구의 사랑은 질투와 가벼움을 낳고, 나에 대한 사랑이 나의 결핍을 만든다.


 사랑은 달고 쓰다. 사랑이 모든 것을 치유하고 모든 생명에 숨을 불어넣지만 동시에 사랑은 많은 것들을 죽게 한다. 마음을 죽게 하고 나를 죽게 하고 너를 죽게 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에게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때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사랑으로부터 도망치고 멀어져서 다시 온전하게 숨을 내뱉고 들이마실 시간이 우리를 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기쁘지만 동시에 무자비하기에 우리는 사랑의 달콤함에 뛰어들었다가 만신창이가 된 채 기어 나와 철저하게 혼자로서의 자아를 감각한다. 모든 것이 어떠한 감정에도 가려지지 않고 또렷해지며 내 앞에 놓인 나와 내가 보낸 시간과 내가 행한 모든 일들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바라보게 된다. 냉철해진 채 나를 가다듬고 정돈하는 시간을 갖고, 회복을 위해 우리는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충만과 기쁨 그리고 무자비함. 우리 인생이 고된 건 다 사랑이 있어서다. 그리고 그 사랑이 늘 온전하지만은 않아서 우리 삶도 늘 기쁘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통해 치유받을 수 있고 서로를 어루만져 줄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이 가진 구원의 힘을 믿으며 계속 사랑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정한 것이, 사랑이 많은 사람이 덜 상처받고 가능한 오래 살아남길 바란다. 이들이 뿌린 사랑의 씨앗으로 상처받은 이들이 다시 한번 일어서길, 그래서 사랑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결국엔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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