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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시대

변화의 서막

by 명랑도리



1985년.

중학교에 입학하니 새로운 생태계에 뚝 떨어진 이종 생물처럼 혼란스러웠다. 본격적으로 야생의 시대에 편입했다. 선생들은 인권이라는 말이 아직 사전에 등재되기 전인 것처럼 학생들을 대했다. 말도 거칠었고, 구타도 비일비재했다.


초등학교 때와 달라진 점이 많았다. 내향형인 나에게 모든 변화는 가급적 피하고 싶은 장애물이었다. 낯선 것들은 잠재적 위협이어서, 익숙지 않은 일들에는 일단 한발 뒤로 물러섰다. 한 발씩 물러서다 보니 적응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절벽 끝까지 몰렸다.


남학생들이 사라진 교실에는 62명이나 되는 여중생들이 가득 찼다. 분단 사이의 공간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칠 정도로 비좁았다. 급히 화장실에라도 가려면 책상 모서리에 허벅지 같은 곳을 부딪혀, 덜렁거리던 나는 일 년 내내 멍이 떠나질 않았다. 캘리포니아 해변의 바다사자처럼 교실에는 아이들이 징그럽게도 많았다.


일 년에 공식 시험만 여덟 번.

반 등수와 전교 등수가 일렬로 늘어섰고, 그 정보는 전교생에게 대낮처럼 오픈되었다. 작년까지 상중하로 대충 삼등분한 성적표를 받았던 아이들은 그 적나라한 계급의 사다리에 큰 충격을 먹었다. 한 학기에 네 번의 시험을 보았고, 평균 90점 이상에게는 공개적으로 상장까지 주어졌다.


과목마다 선생님이 바뀌는 것도 적응하기에 꽤 시간이 걸렸다. 선생님들은 굵기와 길이가 다를 뿐 모두 자기 손에 착 감기는 막대기 하나씩을 들고 다녔다. 선생님마다 민감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눈치 없이 굴다가는 그 막대기에 머리통, 손바닥, 엉덩이 등이 아작 났다. 아이들은 이 거친 생태계를 파악하고자, 모랫속 꽃게처럼 눈만 빠끔거렸다.

적어도 3월 한 달 동안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어색한 암중모색도 유통기간이 만료되었고, 슬슬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경험한 적 없는 대환장 쇼가 대기하고 있었다. 핑크와 레이스에 미치고, 무엇을 하든 기본값으로 새침함이 따라붙던 유아기의 공주병이 감쪽같이 완치된 것이다. 이 자유로운 금남의 야생에서, 아이들은 아마존의 야수로 거듭났다.


태생이 얌전한 몇몇은 교실 구석에서 무리를 이루며 곰팡이 군락처럼 소곤소곤 피어났고, 이전까지 말괄량이 등속의 귀여운 별칭으로 불리던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흑화 되어 광기를 뿜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 종소리는 그들의 변신을 일깨우는 마력을 발휘했다. 투우장에 방목된 미친 소처럼, 아이들은 종소리와 함께 돌변했다.


광기의 중심은 윤진을 리더로 하는 밴드였다. 밴드 이름은 ‘날으는 똥파리와 위대한 탄생’.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중딩 버전이었다. 종이 울리자마자 두세 명이 잽싸게 사물함에서 배드민턴 채를 들고 와 기타를 치는 시늉을 했다. 전기자극이 신경을 잘못 건드린 환자처럼 그녀들의 해드뱅잉은 저 세상의 텐션을 보여주었다.


구경꾼들이 그들을 에워싸며 떼창을 시작하면, 밴드의 나머지 멤버는 그 노래에 맞추어 현란한 막춤을 선보였다. 전영록, 송골매, 김범룡 등 신나는 노래면 뭐라도 상관없었다. 한민족은 흥이 많다고 국사책에서 배운 적 있는데, 그말이 무슨 뜻인지 대번에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즈음이면 흥분한 훌리건들의 난동도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일군의 아이들이 협동하여 교탁을 뒤집어엎으면, 다른 아이들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또 다른 아이들은 가마꾼처럼 뒤집힌 교탁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교탁에 올라탄 아이들의 비명소리, 밴드를 둘러싼 합창소리, 마침내 교탁이 바닥에 엎어지며 발산하는 굉음, 그 모습에 책상을 두드리며 폭소를 터뜨리는 아이들의 난리법석이 한 데 뒤섞여 교실은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소음폭탄이었다.

이 모든 일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Just 10 minutes.


수업 시작종이 울리면 모든 것이 정지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춘! 아이들. 순식간에 물건들은 제자리를 찾고, 교탁은 각을 맞췄으며,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 앉아 태연하게 선생님을 맞았다. 전등 스위치를 올리자마자 자취를 감추는 한밤의 바퀴벌레들 같았다.





여학생들은 중학교 시절 동안 꼬챙이에서 뚱땡이로 극적인 변신을 했다. 교실에는 아직 생리를 시작하지 않아 아동기의 육체와 정신을 지닌 어린이들이 한 부류 있었고, 변화된 호르몬 덕분에 몸의 곳곳으로 지방을 맞이하다가 아차 하는 사이에 그만 적정선을 넘어버린 과체중들이 또 한 부류를 담당했다. 나머지는 각자 꼬챙이에서 뚱땡이로 넘어가는 중간 어디쯤에 분포했다.

밴드의 리더였던 윤진과 그 밖의 똥파리들은 대부분 꼬챙이에 속했다. 마음에도 아직 사춘기의 먹구름이 당도하지 않아 그들의 상태는 늘 ‘맑음’이었다. ‘뭐 좀 재미있는 일 없을까’하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늘 개구진 눈빛을 반짝였다. 초등학교 때 ‘까불이’나 ‘촉새’ 와 같은 별명으로 불리던 남자애들과 교실 내 역할이 같았다.


그때는 출석번호를 키 순서로 정했다. 개인정보에 대한 조심성은 개한테나 줘버린 시절이었다. 생활기록부에 기록될 공식적 번호의 기준이 키라니. 학년 첫날 아이들은 번호를 정하기 위해, 키 순서에 따라 교실을 뺑글뺑글 돌며 한 줄 서기를 했다.

너네 반 1번은 누구야? 각 반의 1번이 갖는 상징성이 커서, 아이들은 다른 반의 최단신을 확인하기도 하고, 각반의 1번을 모아 상상 속에서 그들만의 결승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어느새 뭐든 순서와 우열을 가리는 습성이 붙어버린 탓인지도 몰랐다.


2학년 때인가 우리 반 1번과 2번 사이에 분쟁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서로 1번의 치욕을 거부했던 것이다. 도토리 간의 결투는 꽤나 심각한 것이어서, 결국 1번을 낙찰받은 엄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뒷번호 계급에게는 의미 없던 그 숫자들도 그들에게는 존재를 건 중대한 문제였던 것이다. ‘나 자신’과 관련해서는 모든 것이 심각했던 사춘기였다.


아무튼 당시 우리 반 무게중심은 반장과 부반장이 담당하고 있었다. 반장은 오 씨 성을 가진 덕에 오양맛살이라는 창의력 없는 별명으로 불렸다. 송 씨는 송사리, 박 씨는 박아지, 김 씨는 김말이, 이런 관습의 희생양이었다.

오양맛살은 그 맛있는 별명에 어울리는 넉넉한 체구를 자랑했다. 키 번호도 62명 중에서 61번이었다. 오는 웃음이 많고 성격이 푸근해 아이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똥파리들과 나란히 서면 엄마와 딸로도 보일 지경이었다.


부반장 임도 만만치 않았다. 번호는 54번. 임은 덩치는 오와 비슷했지만, 성격이 드럽고 까칠해서 아이들이 별명을 붙일 엄두도 못 냈다. 임과 똥파리가 나란히 서면 유치원에서 태권도를 배운 하얀 띠 꼬마와 UFC 격투기 선수가 같은 링에 올라온 것 같은 극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찬란하게 맑던 그해 5월, 임과 오의 대격돌이 이루어졌다. 일주일 전부터 이 흥미진진한 대결에 아이들의 관심이 쏠렸다.

누가 이길 것 같냐?

수군거리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내기도 걸었다.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키가 더 큰 오양맛살이 유력하다는 축이 있었고, 성격의 까칠함을 신체적 단단함으로 유추하며 임의 승리를 점치는 자들이 있었다. 결전의 날이 다가올수록 아이들의 관심은 커졌고, 반대로 임과 오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모두가 기다리는 그날은 신체검사 날이었다.


지금은 협력병원에서 전문가의 손에 진행될 그 일이, 당시에는 초시계, 줄자, 체중계 같은 기초적 측량 도구로 한방에 해치워졌다. 한 학년 800명은 반나절이면 너끈했다. 책상을 뒤로 밀고 공간을 마련하면 팀을 이룬 선생님들이 교실을 돌며, 청력, 시력, 신체 사이즈 등을 쟀다. 그날은 수업이 없어, 그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일단 들뜬 상태였다.


드디어 우리 반 차례가 되고, 아이들은 복도로 나가 번호 순서로 길게 줄을 섰다. 한 명씩 교실에 들어가 도장깨기 방식으로 돌아가며 검사를 받는 것이다. 검사가 끝난 아이들은 교실 뒤편에 앉아 다른 아이들을 구경했다. 검사가 진행될수록 자연스레 관객이 쌓여가는 구조였다. 시력이나 청력은 아무도 안중에 없었다. 모든 아이들의 관심은 검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체중계에 쏠렸다.

아이들이 체중계에 올라가면, 선생님은 큰 소리로 숫자를 부르며 차트를 적었다. 똥파리들은 대부분 30kg 초반부였다, 나머지 중간 번호들은 40kg 전후. 그때 우리는 대부분 왜소했다. 검사가 진행됨에 따라 긴장감도 높아져, 구경꾼들은 슬금슬금 체중계 근처로 엉덩이를 옮겼다. 나중에는 체중계를 둘러싸고 몇 겹으로 관객이 운집했다. 선생님이 저리 가라고 호통을 쳐도, 들은 척 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결국에는 선생님조차 포기한 듯, 뒷자리에도 잘 들리게 목청을 높이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뒤로 갈수록 기록이 경신되었고, 그때마다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마침내 모두가 고대하던 그 시간이 도래했다. 출석번호가 오보다 조금 앞섰던 임이 먼저 심판대에 섰다.


임은 발꼬락을 잔뜩 움츠린 채, 조심스레 체중계에 올랐다. 아이들 사이에 흐르는 수상한 기류를 감지한 듯 선생님은 잠깐 뜸을 들이는 긴장감까지 연출하더니, 한층 볼륨을 높여 소리쳤다.

- 69!


꺅~~ 신기록이었다. 김연아의 벤쿠버 금메달 기록처럼 앞선 참가자의 점수를 훌쩍 갈아치우는 압도적 결과였다. 여기저기서 깨방정이 터졌다. 앞줄 아이들은 잽싸게 계산을 마치고는, 자기보다 무려 두 배나 무겁다며 엄지를 치켜 세웠다. 아이들의 환호성에 선생님도 들썩였다. 침울한 사람은 교실에 단 한 명, 임뿐이었다.


임 다음으로 몇 명의 멀대들 순서가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은 한 마음으로 오양맛살의 차례만를 기다렸다. 드디어 오가 체중계 위에 올라갔다.

- 64!


꺅~~~ 다시 한번 함성이 터졌다. 임의 승리였다. (누가 승리인지는 헷갈리지만.) 여기저기서 달리기가 끝난 경마장처럼 내기의 승패를 정산하는 다툼의 소리가 들렸다. 한바탕의 소요가 가라앉자, 아이들의 시선이 오늘의 주인공들에게 집중되었다. 오는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오의 얼굴을 바라보던 임이 갑자기 자기 자리로 돌아가더니, 책상에 얼굴을 묻고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까칠하고 도도했던 임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떠들고 시시덕거리던 아이들과 덩달아 싱글거리던 선생님마저 동시에 충격을 먹었다. 그제야 우리는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벼락처럼 깨달았다.

일순간에 아이들의 웃음기가 걷혔고, 적막한 교실에는 임의 통곡소리만 점점 커져갔다.


야생의 시절이었다. 학생들도 존중 받아야 한다는 버르장머리 없는 가설은 어디서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 교사의 매너와 학교의 풍토는 야비하고 난폭했다. 온화한 인격의 선생님에게조차 그 비열의 냄새는 조금씩 스며 있었다. 부모님의 학벌과 집안의 재산까지 캐묻는 가정환경조사서는 너무 고전적이라 화도 나지 않았다. 적어도 그건 나 자신을 정조준하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못 배운 부모와 없는 살림이 내 잘못은 아니니까.

폭력은 저변에 산재했다. 시험지 채점이 끝나면 반장이 교무실에서 답안지를 가져와, 교탁에서 큰 소리로 모두의 점수를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불렀다. 어떤 선생님은 칠판에 문제를 적고는, 마치 주번이 누구냐고 묻는 말투로, ‘이 반 1등 누구야?’ 혹은 ‘이 반 60등 누구야?’라고 물었다. 어려운 문제를 거뜬히 풀어내는 1등의 모습도, 쉬운 문제에 손도 못 대는 꼴등의 모습도 다 교육적이라고 우겨댔다. 심지어 학교는 주기적으로 중앙 현관에 퇴학생 명단과 퇴학의 사유마저 공개했다. 이까짓 몸무게 따위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임은 우리 반의 고정 1등이었다. 1등이 찍힌 성적표에는 선생님들의 인정과 예의도 부록으로 딸려왔다. 아이들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임에게 비굴함과 띠꺼움을 드러냈다. 하필이면 성격까지 도도했던 임은 자신에 대한 아이들의 반감 따위는 깨끗이 무시했다. 공부 잘하는 게 똑똑한 티를 감추지 않는 죄를 저질렀으나, 유죄를 집행하기에 임은 너무 쌘캐였다.


그랬던 그녀가 놀랍게도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그야말로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만 것이다.


순간, 우리는 뭔가 대단히 잘 못되었다는 불길함에 휩싸여 동시에 침울해졌다. 임의 울음소리는 저마다의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유사한 굴욕의 추억을 환기했다. 망친 시험 점수를 반장이 큰 소리로 외쳤던 날, 뻔히 손도 못 댈 줄 알면서 심술궂은 표정의 수학선생이 굳이 58등을 호명한 날, 백 미터 달리기 기록이 형편없다며 체육선생에게 난생처음으로 싸대기를 맞은 날...


갑자기 한 아이가 임을 달래기 시작했다. 울고 있는 임의 등을 두드리며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흐느꼈다. 드라마 대사처럼, ‘뭐가 미안한데?’라고 물을 만한 상황이었고, 이런 걸로 사과를 받으면 임의 기분이 더 거지 같아질 것이 뻔했지만, 우리는 고작 중학교 1학년 코흘리개였다.


아이들은 일제히 임에게 몰려가 미안해,를 연발했다. 임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마침내 우리는 각자의 서러움을 복기하며 무엇 때문에 우는지도 모른 채 경쟁적으로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초상집으로 변한 분위기에 당황한 선생님은 시끄럽다고 소리를 한번 꽥, 지르고 옆반으로 사라졌다.




그날 이후, 우리는 뭔지 모르게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조금 늦었을 뿐 모두의 몸무게는 오와 임을 따라잡으려 가파르게 상승했다. 화창하던 마음에 간간히 비구름도 몰려들었고, 언제부터인가 교탁을 뒤집어엎는 일도 사라졌다. 변화가 본격화되려는 징조였다.


중학교 1학년,

우리는 상반된 것들이 공존하는 경계선에 서 있었다.

어린이와 청년, 꼬챙이와 뚱땡이, 웃음과 슬픔. 광기와 이성.

눈부신 햇살 속에서 보슬비가 내리던, 그 찬란한 슬픔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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