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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리비 Jul 19. 2024

한국 스타일 자기 사랑

이곳 밴쿠버에서 한인 내담자들을 만나다 보면, 우리 민족은 자기를 스스로 칭찬하는 유전자가 조상대부터 씨가 마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가끔 듭니다. 심리 상담을 하는 동안, 내담자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안심해야만, 전두엽이 활성화되면서 효과적인 사고의 전환 및 문제 해결이 가능해집니다 (Neff & Germer, 2018). 그런데, 가뜩이나 타지 생활을 하면서 언어 장벽, 인종 차별, 경제적 압박으로 이미 사방이 적인데, 나에 대해 칭찬 한 마디가 어색할 정도로 나를 습관적으로 비난해온 사람이라면, 안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나의 뇌는 자꾸만 비상 상황이라고만 온몸에 방송을 해서 나의 치유를 막습니다.


자기 비하를 습관적으로 하는 한인 내담자에게, 저는 캐내디언 내담자들에게 평소에 하듯 장점을 발굴하여 칭찬하다가 꽤 세게 역풍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누군가 내 장점을 알아봐주고 칭찬하는게 왜 그리도 화가 나는걸지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인 학자와 미국인 학자가 합작으로 진행한 문화에 따른 자아의 형성 과정의 차이점에 대한 연구를 읽게 되었습니다 (Kitayama et al., 1997). 이 연구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집단으로부터 독립하여 개인의 가치를 쌓아 나가면서 자아가 단단해진다고 합니다. 반면, 동양인들은 집단의 일원이 되는 것이 자아 형성의 목적이기 때문에, 집단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자기를 끊임없이 살피고 제어하는 것이 자아를 형성하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캐내디언 내담자는 자기가 잘하는 것을 인식하고 뿌듯해하는 것이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지만, 한인 내담자에게는 자기 비난이 곧 집단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 때문에, 이를 그만 두는 것은 상당히 불안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렇다면 한인 내담자에게 자기 사랑은 정확히 어떤 모습일까요? 서양인들은 독립된 개체로써의 자기 욕구를 알아차리고 채우는 걸 자기 사랑이라고 느낀다면, 한국인은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를 경험하고 소중하게 대하는 법을 학습하는 것 같습니다. 개리 챕맨 박사에 의하면 서양인들에게는 5가지 사랑의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챕맨 박사는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기 (acts of service), 시간 함께 보내기 (quality time), 선물 (receiving gifts), 신체 접촉, 혹은 터치 (physical touch), 그리고 칭찬하기 (words of affirmation)로 정리했습니다 (Chapman, 2009). 캐내디언들이 정말 자주 사용하는 언어는 신체적 터치와 칭찬하기인 것 같습니다. 캐내디언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목례를 자주 하는 만큼 무분별할 정도로 허그를 자주 하고 다니며, 한국인이라면 별 감흥 없을 일에도 열렬한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외에도, 개인 차는 있지만, 가족 중심 문화라 그런지, 친구나 가족과 대면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을 중요시하더라구요.


반면 한국인은 대체로, 이것도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진짜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칭찬하기는 0에 가까운 것 같고, 신체적 터치 또한 꽤 아끼는 편입니다. 대신, 우리 나라 사람들의 사랑은 행동으로 보여주기와 시간 함께 보내기, 그리고 선물 주기가 좀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아무 행동이나 시간이나 선물이 아닌, '밥'을 수반하는 것들이 가장 의미 있는 사랑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대해 묻는 질문에서, 내가 사랑 받는 걸 아는 건 엄마가 밥해줄 때라고 답하시는 한인 분이 99프로입니다. 선물하기도 아무 선물이 아닌, 밥을 사줄 때가 가장 특별하죠.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고마움도, 미안함도, 즐거움도, 슬픔도, 전부 밥을 대접함으로써 표현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시간을 함께 보내더라도, 밥을 함께 먹으면서 보내야, '우리는 친하다'는 걸 의미하구요.


어쩌면, 한국인은 사랑을 머리나 가슴이 아닌, 든든하게 채운 뱃속에서부터 느끼는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낭만적인 사랑은 즐거움이나 설렘을 선사할 수는 있지만, 더 깊은 의미에서의 사랑은 내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걸 확인했을 때에만 누릴 수 있습니다. 누군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내게 먹을 밥을 챙겨줬을 때, 나는 나의 존재 가치를 인정 받으며,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성적을 잘 받아오든, 성질을 부리든, 혼낼 건 혼내더라도 밥은 꼭 챙겨주시기도 하구요. 이렇게 내가 잘하고 있든 못하고 있든, 해외 나와서 어떤 말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든, 나는 밥만큼은 꾹꾹 눌러 담아, 최소한 반찬 3가지에 김치까지 차려 놓고 먹을 만큼 소중한 한 사람입니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 안그래도 정신적으로 힘든데, 밥 잘 챙겨 먹기 힘든거 저도 경험으로 압니다. 다만, 내가 누군가에게는 밥을 차려줄 만큼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라는 걸 잊지 않는게, 한국인에게는 자기 사랑의 시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보살핌을 받을 가치가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한 사람입니다. 남이 보든 말든, 그걸 확인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제대로 된 한식 밥상 한끼라면, 나 자신을 위해 한 상 차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연습 1. 내가 한국에서 유난히 즐겨 먹었던 음식 3가지만 떠올려 보기. 그 음식과 연관된 추억도 함께 떠올려보기.


연습 2. 위 3가지 음식 중 하나를 골라, 레시피를 검색하든, 식당을 검색해서 찾든, 날 잡아서 먹으러 가기.



참고.

Chapman, G. (2009). The five love languages: The secret to love that lasts. Moody Publishing.


Kitayama, S., Markus, H. R., Matsumoto, H., & Norasakkunkit, V. (1997). Individual and collective processes in the construction of the self: Self-enhancement in the United States and self-criticism in Japa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2(6), 1245-1267.


Neff, K., & Germer, C. (2018). The mindful self-compassion workbook: A proven way to accept yourself, build inner strength, and thrive. Guildford Pub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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