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

그 말 하나로

by 사이의 사람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집에 있어 좋다.”


그 말은
나를 붙잡으려는 말도,
어디 가지 말라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이 상태가 괜찮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잠시 후 아이는
한 문장을 더 붙였다.


“일해도 좋고,
집에 있어도 좋아.”
나는 그 말을
한동안 가만히 들고 있었다.


어른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조건과 판단이 빠진 문장이었다.


그 문장 안에는
‘더 나은 선택’도 없고
‘덜 나은 선택’도 없었다.
그저 내가 있는 자리 자체가
괜찮다는 말만 남아 있었다.


일을 하던 시기에는
집에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고,
집에 있는 지금은
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어디에 있든
나는 늘 한쪽을 놓치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아이의 그 말이
더 오래 남았다.


어른이 되면
선택에는 늘 이유가 따라붙는다.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왜 쉬어야 하는지,
왜 지금이 아닌지.


하지만 아이는
그 모든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일해도 괜찮고,
집에 있어도 괜찮다는 말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존재 자체가 먼저라는 선언처럼 들렸다.


나는 그제야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지금의 내가
완성된 답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
어딘가로 가는 중이어도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아이의 말은
나를 선택의 저울 위에서
잠시 내려오게 했다.
집에 있어도 좋고,
일해도 좋은 사람.


그 말은
나를 규정하지 않았고,
미래를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의 나를
그대로 허락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