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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알고리즘]
Versio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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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타이밍이 어긋난 설렘이
나를 새벽 1시 서울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녀와 함께 하는 지하철 안.
우리는 나란히 앉아있다. 그녀가 말했다.
"승찬아, 너 아까부터 핸드폰 되게 자주 보는 거 알지?
여자친구야?"
내가 핸드폰을 그렇게 신경 쓰고 있었구나.
옷도 대충 후드티 집어 입고 왔으니...
괜히 미안한 마음에 솔직히 말했다.
"응, 사실 말하자면 복잡하기는 한데, 여자친구는 맞아."
"그럴 것 같았어. 여자친구 얼굴 한 번 보자!"
기분이 묘했다.
내 첫 연애의 유통기한이 3일이나 남아 있다니...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미확인 메시지 2개가 빛을 내고 있었지만
종료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갤러리를 열어 적당한 사진을 찾았다.
핸드폰을 건네는 짧은 순간에,
지난 27일의 기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남은 3일이 너무 더디게 흘러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핸드폰을 건네받은 그녀의 입은 한동안 열리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찡그린 것도, 살짝 웃는 것도 같았다.
"진짜 여자친구 맞아?"
잠시간의 침묵을 깨는 한 마디.
"내가 훨씬 예쁜데. 너랑 내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우리 벌써 뽀뽀도 했는데 그냥 나랑 만나자!"
역시 화끈한 여자였다.
혜화역에서 야탑역까지 30 정거장, 약 1시간의 거리.
그 애에게서 그녀에게로 갈 수 있는 시간, D-3.
더 이상 거리 따위는 장애물이 아니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었다.
다만 학교에서의 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책임감으로. 시작된 연애.
처음의 설렘을 착각했던 시간들.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한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목구멍에 콱 걸려버렸다.
"나한테 시간을 조금만 줄래? 사실 나 같은 과 CC라서, 첫 여자친구라 상황이 좀 복잡해."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녀는 예상했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긴 생머리가 찰랑거렸다. 나는 그 모습은 오래도록 응시했다. 발그레한 볼에 아찔한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래, 기다릴게. 대신 오래는 안 돼. 나 인기 되게 많다? 너 마음 가는 대로 해! 우리 이제 스무 살인데."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야탑역에 그녀를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진동이 울리고 그녀에게 온 메시지를 열어 저장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 배터리는 7% 밖에 남지 않아 있었다.
'잘 들어가! 오늘 재밌고 고마웠어. 승찬아, 우리 꼭 또 보자! 연락 기다린다.'
번뜩 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나는 여기서 동인천역까지 35개 정거장을
1시간 40분에 걸쳐 돌아가야만 했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지금 출발해도 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핸드폰이 꺼지기 전에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됐냐? 우리 동대문 클럽 왔으니까 와서 전화해!"
다행이다. 오늘 하루는 인천에 돌아가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다 잊고 재밌게 놀아야지.
그동안의 대학생활은 고등학교 때 생각과는 너무 달랐다.
술 먹고, 토하고, 또 술 먹고, 소문나고... 연애도 모르겠다.
지하철에서 혼자 돌아가는 길. 오늘이 꿈만 같았다.
꿈이라면, 깨지 않길...
00:50. 동대문에 도착했다. 핸드폰은 진작 꺼진 지 오래다.
근처 공중전화박스로 가서 100원짜리 동전을 집어넣었다.
땡그랑, 소리 뒤로 컬러링이 들렸다.
윤도현의 <사랑했나 봐>. 작년에 유행한 노랜데...
이 친구도 꾸준하네 하고 생각했다.
사랑했나 봐. 잊을 수 없나 봐. 자꾸 생각나. 견딜 수가 없어.
노래가사 내 마음에 쏙쏙 박혔다.
같은 노래가 세 번쯤 반복되었는데도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나도 방금 전까지 문자를 열어보지 않았지...
큰일 났다.
지금 나에게는 주머니 속 꺼져 버린 핸드폰과
천 원짜리 지폐 5장이 전부였다.
지하철 요금 1,800원을 제외하면,
오늘 밤 사용할 수 있는 돈은 3,000원 밖에 되지 않았다.
... 망했다.
아직은 새벽 공기가 차가웠던 날,
나는 서울 한복판, 패션의 거리 동대문에 불시착하였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거리에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