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노숙, 지하철, 청계천, 이대병원, 장례식장
[첫사랑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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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난생처음 서울 한복판에서 노숙을 하게 됐다. 완연한 봄인 줄 알았지만, 새벽 공기는 아직 겨울에 가까웠다.
"아으, 춥다. 쌀쌀하네." 후, 입김을 불어보니 하얀 연기 같은 것이 아른거렸다.
우선 본능적으로 따뜻한 곳을 찾아 헤맸다.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자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누워 있었다.
고요하다. 아무리 봐도 그곳에 내 자리는 없었다. 그리고 일단, 코를 찌르는 냄새에 더 이상 들어갈 수도 없었다.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청계천. 최근 정비사업으로 복원되었다는 것을 뉴스로만 접했었는데, 휘황찬란한 조명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 인적이 거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기다란 벤치 가운데마다 철제구조물이 박혀있었다.
그곳에도 어린양이 몸을 뉘일 곳은 없었다. 몸을 애벌레처럼 접어서도 누워봤지만, 불편함은 둘째치고 뼛속 깊이 스며드는 찬기운이 견딜 수가 없었다.
번뜩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 하나. 드라마, 영화 속 노숙에는 언제나 신문지가 함께였다.
"스포츠신문 하나 주세요. 제일 두꺼운 걸로요."
주머니 속 남은 3,000원 중 1,000원을 털어 신문지를 구입했다. 전 재산의 1/3을 소진했지만 한 묶음의 신문지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신문지를 들고 다시 청계천으로 내려갔다. 적당히 밝고 눕기 좋아 보이는 곳을 찾던 중 노골적인 낯선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건너편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우, 씨. 더럽게 춥네 진짜. 무슨 봄날씨가."
괜히 과장된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나는 건너편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일어나 허리를 휘휘 돌려가며 발을 내디뎠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소 빠른 걸음으로 청계천을 벗어났다.
이 정도면 됐다 싶어 돌아보니, 서늘했던 낯선 시선의 주인공이 조금 더 멀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숱이 없는 하얀 백발의 6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남자는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누가 쫓아내지는 않았지만, 주인 없는 청계천에서 자연스레 쫓겨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고, 어둠 속 늑대들을 막아 줄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저기 언덕 위에 녹색십자가가 눈에 띄었다. <이대병원>.
저기다. 저곳이 바로 나를 살릴 곳이구나. 불교에 가까운 무신론자의 가슴에 초록십자가가 날아와 박혔다. 아멘.
초록십자가가 점점 크게 보였다. 그만큼 병원 입구의 철문이 높아만 보였다. 이 문만 무사히 통과하면 늑대를 막아줄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것이다.
잠시 망설인 후 최대한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철문을 통과했다. 경비실에 사람이 있었지만 제지는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이대병원>. 새벽 두 시는 어딜 가도 고요하구나. 가끔 장례식장을 오가는 차 소리만 작게 울렸다.
조경수가 박힌 둥근 돌벤치에 몸을 뉘었다. 공포가 물러가자 온몸이 두드려 맞는 듯 쑤셔왔다.
잠시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양손을 깍지 껴 머리 위로 힘껏 들어 올렸다.
고개가 들리고, 언덕 아래 휘황 찬란 청계천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아... 하아... "
가슴 깊숙한 곳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오늘 하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대학로의 정취, 술자리의 소음, 아찔한 볼 뽀뽀의 감각.
나는 그렇게 어두컴컴한 밤 속, 돌벤치에 몸을 뉘었다.
그날 밤에는 천 원짜리 신문지 한 장과 저 멀리 청계천의 네온사인만이 남아있었다.
..
...
.... 춥다. 죽는다. 이건 살아도 입은 분명히 돌아간다.
방금 전까지는 볼에 남아 있는 감촉 때문에 잠이 안 올 것 같았는데,
지금은 추워서 잠이 안 왔다.
이건 정말 잘못되면 얼어 죽는다. 이윽고 눈에 불빛 하나가 보이더니 이내 시선이 옮겨간 곳에 선명히 보이는 네 글자가 있었다.
<장례식장>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날 밤 내가 찾은 가장 따뜻한 곳은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꿈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