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맛있는 키스> - 카페, 그 곳 이야기
이글은 18화 글이 너무 길어 주제별로 나눈 것입니다. 이미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맛키> 카페 위층에는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일반인들은 위층으로 갈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공간.
그 공간은 바로 현준과 재준 형제의 작업 스튜디오였다. 현준의 말대로 그들만의 놀이터 같은 공간.
“작업실 구경하고 싶으면 올라가 봐도 돼요.”
그 말에 넷은 벌떡 일어나 현준, 재준 형제를 먼저 앞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멤버들은 이미 <맛키>는 모던한 개인 박물관 같은 느낌의 카페라고 느끼고 있었다. 독특한 그림과 유니크한 작은 소품들, 작가를 알 수 없는 작품 같은 의자들을 포함한 다양한 가구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래서 고객들은 마치 미니어처 모마 MOMA나 현대 미술관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처음에는 우리 이름을 딴 작은 갤러리를 오픈하고 싶었어. 그런데 오랜만에 형과 함께 그림을 그리다 보니 어린 시절 생각도 나고, 이미 각자 작업 스튜디오도 있으니, 함께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어 보는 그런 놀이터 같은 작업실을 구상한 거야. 당연히 1층은 그런 작품들을 전시했던 거고. 물론 고객들은 몰랐지만.”
넓고 큰 이층 공간은 전체가 다 보이는 오픈된 공간이었다. 양쪽으로 간의 벽을 만들어 각자 개인룸이 있었고, 나머지 공간은 공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중심 부분은 거실느낌으로 꾸며져 있었다. 브라운 컬러의 모던한 가죽 섹션 소파들이 단정하게 큰 사각형을 이루고, 그 중간에는 독특한 커피 테이블이 있었다. 아마도 재준이 직접 디자인 및 제작한 가구인 듯했다.
현준, 재준의 각 방은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두 작업실은 판이하게 달랐다. 한쪽은 갖가지 아티스틱한 드로잉과 패브릭들이 널려져 있었고, 피팅용 마네킹도 두어 개 서 있었다. 아트용품들도 널려있었다.
반면 재준의 방은 세련되고 모던했다. 3D로 제작된 건축 모형, 자동차, 피겨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크고 긴 나무 테이블 위에 갖가지 가구와 의자 스케치들이 널려 있었다.
같은 층 한편은 데생 및 페인팅하는 공간이었다. 이젤이 몇 개 세워져 있고 캔버스들이 겹겹이 포개져 있었다. 한쪽 벽 무거운 쇠재질로 제작된 선반에는 갖가지 물감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지금 작업하는 두 작품이 있었는데, 누가 봐도 어떤 그림이 현준과 재준의 그림인지 알 수 있었다. 그쪽은 물감들이 여기저기 발라져 있고, 뿌려져 있어 어느 순수화가의 작업실 같았다.
반대편 한쪽에는 바가 설치되어 있었다. 다양한 칵테일 재료들과 위스키, 와인, 맥주들이 있었는데, 재준은 알콜 농도가 낮은 음료를 일행들에게 권했다.
재준은 의자 디자인을 좋아했는지 눈에 띄는 초록색 벨벳 러브 소파 외 검은색 가죽, 플라스틱, 나무 등 다양한 재질과 디자인의 의자들과 소파를 제작해 놨다. 대부분 재준이 실험적으로 제작했거나 혹은 떠오르는 생각대로 마구 만들어 본 작품들이었다.
“와 평소에 보던 재준 오빠 스타일이 아닌데?”
“ 그래서 놀이터라는 거야. 세상 밖에 우리 작품은 이미 브랜드화되어서 그 틀을 깨기가 여간 힘들지 않거든. 그런데 이곳에서는 상품적 혹은 예술적 가치를 따지지 않고,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대로 디자인할 수 있는 우리만의 작업공간이라 할까.”
“아 정말 멋져요! 너무 부러워요!”
특히 지아는 진심으로 그 작업실이 부러웠다.
커피숍 뒤편 마당에는 나무를 자르거나 구멍을 낼 수 있는 다양한 커터기와 샌딩 머신, 목재 절단기등이 마련되어 있는 작업장이었다. 마치 가구 공장 같았다.
<맛있는 키스>가 들어서 있는 건물 자체가 그들 작품이었다. 그곳은 두 형제의 작업 스튜디오이자 고객들의 눈치를 보지 않은 그들만의 전시장, 수집품 박물관이었다.
“왜 카페이름을 맛있는 키스로 정하셨어요?”
카페로 돌아와 소파에 앉으며 수민이 질문했다.
“키스...? 내게 상징의 의미가 있지. 처음 파리에 갔을 때 길거리에서 기겁했어. 프랑스 연인들이 곳곳에서 딥키스를 하고 있는 거야. 한국에서 아무리 자유인이라고 부르짖던 나도 처음에는 적응 안 되더라고. 그런데 오래 지내다 보니, 그런 연인들의 행위가 자연스럽고 또 자유로워 보이더라고. 내 눈에는 그들의 모습이 성적인 표현보다 사랑과 자유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보였다고 해야 하나. 그 누구도 옭아매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사랑하고, 사랑하면서 자유를 찾는. 그래서 키스를 ‘사랑과 자유’의 심볼로 생각했고, 그 주제로 프로젝트를 많이 하기도 했어.”
현준이 카페 벽들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 입술은 키스를 함에 있어 중요한 요소겠지? 보다시피 입술을 주제로 여러 사진과 아트를 전시해 둔 이유는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있어. 이곳 대부분의 작품들은 고객과 상품 가치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표현한 것들이야. 동시에 인간에 대한 존엄성도 중시하는 공간으로 꾸몄어. 그래서 프라이빗한 공간을 지켜주려고 테이블 간 거리도 최대한 띄어서 만들었고, 각 섹션마다 다른 스타일로 디자인해 놓았던 거야. 결구 우린 이 공간을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랑,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 존재감과 자아를 마음껏 풀어놓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 더한다면 이곳을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인간삶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면 이 공간이 완성되는 거지.”
카페 운영으로 수입은 있지만, 사실 그곳은 이윤 목적으로 만든 공간은 아니었다. 갤러리를 일상 속에 스며들게 해 놓은 게 의도였다. 두 형제 아티스트는 손님들이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그들도 모르는 사이 그림과 작품을 자연스레 관람하게 만들었다. 또한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그들과 그들만의 스토리들은 갤러리를 구성하는 하나의 오브제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맛키>는 사랑, 자유, 다양성을 존중하고, 디자인 및 순수 아트를 지원하는 도심 속에 존재하는 그들만의 작은 갤러리였다.
“ 그런 큰 작가의 의도가 있는지 몰랐어요. 그럼 왜 ‘맛있는’이라고 붙였어요?”
“어머, 얘, 좋아하는 사람이랑 키스는 항상 짜릿하고 달콤하지 않니? 맛있어. 그걸 굳이 물어야 아니.”
현준은 키스를 상상하자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아 ‘키스’만큼 그런 큰 상징적인 의미는 없다는 뜻?”
“그래. 근데 달콤한 키스는 커피숍 이름으로 좀 낯 간지럽잖아. 그래서 맛있는으로 했어.”
일행은 갸우뚱했다. '달콤한 키스'나 '맛있는 키스'나 낯 간지럽긴 별 다를 바 없는 듯한데. 뭐든 사장 마음대로 하면 되지.
혜연이 재준을 보며 물었다.
“재준 오빠는 아직 강의하세요?”
“응. 건축 사무소는 계속 나가고 강의는 일 년에 한 학기만 하고 있어. 난 사실 1층 커피숍은 손님처럼 혼자 조용히 앉아서 쉬다 가는지라 현준이가 고생 많았지.”
“왜 그러세요. 좀 사람들하고도 어울리지.”
혜연이 안타까워 물었다.
“알다시피 난 사람을 좋아했지.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위한 거주지를 설계하는 게 즐거웠어.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겪다가 중년이 되니 사람에 지치고 가끔 싫어질 때가 있더라고.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은 남아서 이렇게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나도 그들 속에 끼어 살고 있지만, 그 와중에 또 나를 스스로 분리시켰네. 각 테이블 간 거리도 아마 그런 개인적인 최소한의 공간을 남겨두고 싶었던 거 같아.”
재준은 아내와 사별한 지 몇 년 되었다. 그 후 재준은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지 못했다. 대신 그 허전함을 달래고자 동생과 함께 3년 전 이 작업실 겸 카페를 구상해서 지었던 거다.
“오빠 아직 여친 없죠?”
혜연은 슬그머니 재준과 세희를 번갈아 봤다.
“난 어쩐지 이 두 사람이 잘 어울릴 거 같네. 왜 진작 그 생각 못했지? ”
세희는 갑작스러운 소개팅 분위기에 놀라 눈만 껌뻑였다. 재준은 싫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때 현준이 네 개의 작은 박스를 가져왔다. 혜연과 썰 리의 우정 팔찌 박스처럼 작은 나무 상자에 벨벳으로 내부가 마무리되어 있었다. 네 명의 멤버는 박스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 반짝이는 반지가 들어 있었다. 각 반지에는 작은 입술 모양의 문양이 있었다.
“내가 지난 3년 봐온 우리 단골 동생들인데, 선물 하나 준비했어. 직접 디자인한 반지야. 박스는 형이 디자인했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
그때 혜연의 코가 찡 했다. 어쩌면 그녀는 저 반지를 오래도록 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혈액암이 완치되는 경우가 많아 살 희망은 있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법.
“오빠, 혹시 이거 하나 더 만들 수 있어요?”
“?”
“제 거는 오늘 오빠한테 드릴게요. 얘들아 현준오빠를 우리 다섯 번째 <맛키> 멤버로 영입하는 거 어때?”
“현준 오빠는 대찬성이지!”
모두가 환영했다.
“그럼 이제부터 현준오빠는 우리의 다섯 번째 멤버로 환영합니다! 아 재준오빠는 자격이 안돼서 미안해요. 여성들의 수다모임이라.”
혜연이 웃으며 재준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현준 오빠, 이 반지 끼고 우리 친구들 잘 부탁드릴게요.”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런데, 너 어디 가?”
“그러게 아까부터 언니 분위기 이상해.”
혜연은 침착하려 노력했다.
“ 오늘 마지막 발표는요,,, 사실 저 병원에 입원할 거예요. 그래서 당분간 못 볼지도 모른다고."
모두 영문을 몰라 귀 기울였다.
"암 이래. 혈액암. 사실 치료는 이미 시작했는데 알릴 타이밍을 놓쳤어. 놀랐지? 요즘은 혈액암 치료 확률이 높데. 낫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껏 잘 참고 있던 혜연인데 순간 그녀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모두가 머리를 쇠망치로 얻어맞은 거 같았다. 그럼 오늘은 혜연이 만일에 모를 이별을 위한 만남이었던 건가.
“그럴 일 없겠지만, 제가 혹 못 돌아오면 오빠가 제자리 잘 지켜주세요.”
“ 그럴 일 절대 없을 거야. 네가 너 친구들 보살펴야지 건강한 모습으로. 응?”
이 모든 일이 장난인 것만 같았다. 상황이 인지되지 못해 처음에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비보라 친구들은 무슨 말을 할 수도 없이 함께 껴안고 울기만 했다. 중년은 그럴 나이다. 하나씩 하나씩 아픈 곳이 생긴다더니. 정말 그랬다.
혜연이 걱정되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진철이 커피숍으로 들어와 혜연을 보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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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실제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부분은 있으나 허구로 구성된 소설입니다. 실제 직업, 인물, 장소, 기관등과 전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